한번 엎질러진 물이 막말이라면…

한번 엎질러진 물이 막말이라면…

<박상신 소설가>
 

춘추전국시대 태공망(太公望)이란 어진 인물이 떠오른다. 그는 초로(初老)가 넘은 나이에 주나라 문왕을 도와 은나라를 정벌하였고, 그 후광을 입어 제나라 건국 시조가 된 인물이다. 오랜 세월, 그는 출사(出仕)의 때를 기다리며 낚시로 소일거리 삼고 있었다. 그런 남편을 못마땅하게 여긴 아내는 그를 내팽개치고 친정으로 떠나버렸다. 훗날 그가 왕이 되어 금의환향하자, 그녀는 비렁뱅이가 된 채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다시 받아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그러자 그는 “한번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라는 속담을 남겼고, 그녀의 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그는 우리에겐 강태공(姜太公)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며 그 속담은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교훈적 의미로 회자되기도 한다.

얼마 전 SBS 기자와 통화에서 국민의 당 이언주 의원은 “그냥 동네 아줌마다. 옛날 같으면 조금만 교육시키면 되는 거다. 미친×들이다”라고 어깃장을 놓으며 비정규직 급식노동자들을 폄훼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내뱉었다. 국민이 뽑은 선출직 국회의원이, 그것도 공당의 원내수석부대표라는 중요한 직책의 사람이 사견(私見)임을 전제로, 일반인도 차마 입에 오르내리지 못할 거친 막말을 쏟아내며 정가에 회오리바람을 일으켰다. 이 사건이 일파만파로 번지자, 기자회견장에서 이 의원은 “아줌마는 제 마음속 또 다른 어머니와 같은 뜻입니다”고 해명했고 자기변명인지, 유감 섞인 사과인지 모를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며 어머니의 의미를 폄하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이 의원의 부적절한 비유, 그리고 남 탓으로 돌리는 변명에는 개운치 않은 사족(蛇足)이 달려 있었다. 사과의 자리에서 사족은 왜 다는가. 사견임을 전제로 기자에게 통화한 내용상 “정치적 노림수가 담긴 포털의 꼼수”로 치부해버리기엔 이 의원의 사과는 진정성이 결여된 꼬리자르기며 어딘가 뒷맛이 개운치 않아 보인다. 마치 포털이, 기자가, 터뜨리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비루한 언행이 정당한 것이 된다는 말인가. 이는 평소에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라고는 눈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는, 마치 비정규직 급식노동자는 하대(下待)해도 된다는 인식이 이 의원의 마음속 밑바탕에 깊게 깔렸다는 의구심마저 드는 대목이다. 이 의원을 뽑은 국민의 소중한 표심은 온데간데 없고 오직 오만과 독선에 사로잡힌 위정자와 뭐가 다른 것인가.

사과의 기자회견장에서 맞닥뜨린 비정규직 급식노동자들의 “우리를 개·돼지로 아는가”라는 일성이 더 가슴 아프게 들리는 건 무엇이란 말인가.

그 옛날, 아침이 되면 부엌 아궁이 앞엔 머릿수건을 뒤집어쓴 채 군불을 지핀 어머니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를 때가 있다. 분주해진 아침이면 일상의 풍경처럼 가족의 아침 한 끼를 위해, 그리고 아이들의 도시락 준비를 위해 풍족하지는 않지만 정성이 담긴 마음이, 사랑이, 손맛이, 아스라이 추억처럼 피어오른다. 당신 자신은 먹지도, 입지도, 않은 채 아이들 입속으로 따듯한 밥숟갈이 들어갈 때면 흐뭇해하고, 행복해하는 위대한 어머니가 그리워진다. 지금 기억 속, 그 어머니의 양은도시락은 사라졌지만, 학교에서 내 아들이, 내 딸이, 먹는 급식을 책임지는 급식노동자들, 그 어머니들은 오늘도 현장에서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시대는 변했지만, 밥 짓는 어머니의 마음은 변함이 없으리라. 자식의 밥상이란 사명감에 비록 열악한 근무환경이지만 구슬땀을 흘리며 흐뭇해하는 급식 노동자들….

그들이 왜 비정규직이며 헌법상 부여한 파업권을 행사했어야만 했는지, 국민의 국회는 귀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국회의원인 이언주 의원의 막말은 금도를 지나 그들의 마음에 생채기만 남겼다. 이제 그녀는 사족을 없앤 진정성 있는 사과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어떤 정치적 술수도, 노림수도 없는 진정한 사죄와 책임지는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

“관 속에 들어가도 막말은 하지 말라”는 우리네 속담이 있듯이 이는 어떤 경우에도 말조심하라는 뜻이다. 그만큼 세 치 혀의 경솔함을 꾸짖는 속담이기도 하다. 해서 강태공의 ‘한번 엎질러진 물’이 막말이라면 부부지간이라도, 친구 간에도, 직장동료 간에도, 그 누구에게도, 서로 용서와 화해를 주고받은들…. 상처 자국은 남을 수밖에 없다.

세월이 흘러도, 그 막말은 관 속에 들어갈 때까지 그들의 영혼 속 흉터로 남아 기억될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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