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전라도 농업을 빛낸 선구자>

④ ‘청정 종돈장’ 순천의 황금영 대표

“건강한 씨돼지 생산이 인생의 가장 큰 사명”

안전한 돈육 제공…“일생의 업으로 여기고 살아”

8천두 규모 종돈장 운영…시설 현대화·자동화 ‘앞장’

80여년간 ‘전남 구제역 청정지역’ 명성 지렛대 역할
 

순천종돈장 황금영(73) 대표는 건강한 종돈을 생산하고 안전한 돈육을 제공하는 것을 일생의 업으로 여기고 살아왔다. 그는 고희(古稀)가 넘은 나이에도 양돈에 대한 신념과 열정으로 국민의 먹거리와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전남도 제공
순천시 낙안면 목촌리에 위치한 순천종돈장은 반경 10km 이내에 어떠한 농장도 위치해 있지 않아 위생적이고, 건강한 돼지를 생산할 수 있는 좋은 입지 조건을 가지고 있다. 사진은 순천종돈장 전경. /전남도 제공
황금영 대표는 자신의 성공을 뒤에서 묵묵히 내조해준 아내 김수자씨<왼쪽>의 공으로 돌린다. /전남도 제공

전남은 ‘구제역 청정지역’이다. 현재 전남에서는 소 48만6천여 마리와 돼지 111만2천900여 마리를 키우고 있다. 사육 규모로 따지면 전국에서 소 2위, 돼지 5위 수준이다. 대량 사육지역이면서도 1934년 구제역 관측 이래 발생 기록이 없다.

전국은 지난 2010년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발생한 구제역으로 역대 최대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전국을 휩쓴 구제역으로 347만8천862마리의 돼지, 소 등 우제류 가축이 살처분되는 등 2조7천383억원의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올해도 충북에서 구제역으로 소 953마리가 매몰 처분되는 등 악성 가축전염병이 거의 매년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전남은 살처분한 가축 한마리 없이 80여년간 구제역 청정지역의 명성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명성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긍지를 잃지 않고 돼지, 소 등 가축을 키워온 축산인들의 노력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건강한 종돈을 생산하고 안전한 돈육을 제공하는 것을 일생의 업으로 여기고 살아 온 순천종돈장 황금영(73) 대표도 그중 한명이다. 그는 고희(古稀)가 넘은 나이에도 양돈에 대한 신념과 열정으로 국민의 먹거리와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건국대학교 축산대학을 나와 ROCT 해병 중위로 복무한 후 농사를 짓겠다는 그를 아버지부터 반대하고 나섰다. 함께 제대한 동기들은 교사로 임용되는 경우도 있었고, 그도 교사의 길을 선택할 수 있었던 때였다. 오래 전부터 들어 온 할머니의 치성 기도는 그를 끝내 농사꾼으로 이끌었다.

그는 자신이 농사꾼이 된 배경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림이 어린 시절 정화수를 떠 놓고 농사를 위해 기도하던 할머니의 모습이라고 한다. 그의 할머니는 “올 해 농사 풍년들게 해주시고, 저희 일하는 사람들 모두 잘 살게 해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를 올렸다. 그는 “새벽에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면, 부엌 옆에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하시는 할머니를 어김없이 복 수 있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를 올리셨고,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믿는 분이셨다”고 말했다.

할머니의 기도가 손자를 농사꾼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맨손으로 뛰어 든 양돈사업=농촌을 부흥시키겠다는 마을을 먹고 터를 잡은 곳이 순천 서면 금평마을이다. 밤나무도 심고, 닭도 키웠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돼지를 키워보기로 맘먹은 것은 서면에 터를 잡은 지 2년 후인 1973년, 우선 6마리로 시작했다. 냇가에서 주워온 돌로 기초를 다지고, 냇가 모래를 섞어 ‘멍청이 벽돌’ 이라는 벽돌도 직접 찍어 축사를 지었다. 서까래는 산에서 나무를 네어다 올렸다.

비나 눈이 오면 가마니를 쳐 주고, 분만 모돈 옆에 벌려둔 가마니 사이로 갓난 새끼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면 세상이 다 내 것 같았다고 그는 회상했다.

그는 그렇게 양돈업에 뛰어들었다. 제법 돼지가 늘어나자 주변에 분양도 해줬다. 어느덧 금평마을은 새마을선진지 견학처가 될 정도로 분주해졌다. 그러나 한창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 청천벽력과 같은 위기가 찾아 왔다. 돼지콜레라가 발병해 키우던 돼지 절반이 죽었다. 그는 “애지중지 키워온 돼지를 내 손으로 묻는 큰 슬픔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은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재기를 위해 더욱 노력했다. 돼지가 갑자기 불어났다. 감당하기는 어려웠지만 힘들게 일으킨 사업인지라 욕심을 부렸다. 그러다보니 돈에 쪼들리기 시작했다. 돼지즌 늘고 사료 값은 없고, 결국 사채를 써야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이자로 엄청난 고생을 했다. 그는 사채를 얻었던 집 근처를 지날 때마다 힘들었던 시절의 기억이 떠올라 멀리 돌아가기도 했다.

■“냄새 피우려면 아예 양돈하지 마라”=이처럼 위기를 넘기고 양돈업이 자리를 잡자 종돈장도 일궜다. 1974년 종돈장 사업 인가를 받고 모든 20두로 시작해 1996년 번식전문농장과 비육전문농장을 구분해 운영하는 시스템을 남부지역 최초로 도입하고 철저한 면역체계를 갖췄다.

이는 종돈(모돈)과 분리해 비육돈을 사육하는 것으로 돈사의 거리를 띄워 질병의 원인 제공을 차단하고, 위생적 사육환경 조성으로 건강하고 안전한 종돈 및 돈육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순천시 낙안면 목촌리에 위치한 순천종돈장 반경 10km 이내에는 다른 농장이 없다. 전염병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위생적이고, 건강한 돼지를 생산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다. 현재 8천두 규모로 성장했다.

그는 “돼지사육은 목표관리시스템을 갖추지 않으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우리 종돈장은 냄새가 거의 안 난다”며 “양돈은 청결과 방역이 생명이다. 그런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고 밝혔다.

그는 양돈시설의 현대화 및 자동화 시설 추진으로 전업농가 육성에 선도적 역할을 해온 점을 높이 평가받아 2006년 제7회 한국양돈대상을 수상했다. 2007년에는 농림축산식품부 HACCP인증을 받았다. 순천종돈장은 생산 효율이 높기로도 유명하다. 2012년 종돈장의 생산효율 지표인 MSY(어미돼지 1마리가 1년에 출산하는 새끼돼지의 수)가 27.1두였다. 이는 유럽 양돈 선국국들의 평균 성적에 근접해 어깨를 나한히 하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묵묵히 내조해준 아내의 힘=그는 1990년 순천축협조합장으로 취임해 예수금 45억원에 자본금 잠식상채이던 조합을 2007년 예수금 1천739억원, 자기자본 102억원에 총 자산 1천367억원인 튼실한 조합으로 일궈냈다. 2006년에는 광양축협을 합병해 순천광양축협으로 키워냈다. 이 일로 2011년에는 한국농촌경제원이 발행한 ‘성공적인 협동조합의 리더십 조합장 9인’ 사례가 발표됐다. 그 배경에는 조합장 임기 18년 동안 이어진 공부가 있었다. 그는 “임기 내내 서울대, 고려대, 전남대 등 17개 대학에서 경영대학원 수업을 들었다. 조합을 살찌우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성공을 뒤에서 묵묵히 내조해준 아내의 공으로 돌린다. 2008년 조합장을 그만둘 때까지 18년 동안 월급봉투를 단 한 번도 가져다 준 적이 없었다. 월급을 고스란히 업무추진비로 써버린 것이다. 아내 김수자 씨는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라며 웃는다. 김수자씨는 중견 수필가 중 한사람으로 1974년 그와 함께 부부의 연을 맺은 후 지금껏 돼지를 키우며 함께 울고 함께 웃어 왔다.

후배들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땀으로 가축을 키우던 시대는 끝났다. 전문적인 지식과 경영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자동화 등을 통한 국제 경쟁력도 갖춰야하고, 더불어 친환경 축산과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책임 의식도 가졌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안세훈 기자 ash@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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