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존중 정권교체 이뤘으니 나는 성공한 정치인”

<민주당 이개호 의원 남도일보 와이드 인터뷰>
“호남존중 정권교체 이뤘으니 나는 성공한 정치인”
광주·전남발전기여와 도지사 선거 출마 놓고 고민 중
문 대통령, 자기관리 엄격해 성공한 정권될 가능성 커
도백되려면 전남발전에 대한 분명한 비전과 소신 지녀야
 

 

기자가 이개호 의원을 처음 만난 해는 1988년이다. 30년 전 그는 전남도 기획실의 기획계장이었다. 행정고시 출신의 그는 패기만만했다. 그렇지만 솔직하고 겸손했다. 몇 차례 그를 만나면서 그가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력도 있고 사람을 끄는 매력도 있는 공무원. 기자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공무원 이개호’를 그렇게 생각했다.

30년 뒤 이개호는 정말 ‘물건’이 돼 있었다. 재선 국회의원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전남도당위원장.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장 직무대행 겸 민주당간사, 더민주당 제4정책조정위원회 위원장, 더민주당 조직강화특위위원을 맡고 있으니 상당한 위치다. 광주·전남 유일의 더민주당 의원인 탓도 있겠지만 출중한 능력이 없으면 그런 자리들을 꿰차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어느 저녁시간 광주 충장로에 있는 한 식당에서 그를 만났다. 모처럼만에 만나는 자리였다. 오래 이야기를 나눴다. 헤어졌을 때 시간이 밤 10시였으니 4시간동안의 대화였나 보다. 그동안 그를 찾는 전화가 수차례 걸려왔다. 이런저런 모임이 다른 곳에서 있었던 듯싶다. 그는 “이곳에서 이야기가 길어져 아무래도 가지 못하겠다. 미안하다”며 전화를 끊곤 했다.

당초는 그냥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었다. 그런데 직업이 기자인지라, “오늘 나눴던 이야기, 인터뷰 기사로 정리해 내보내죠?”라고 물었다. 이 의원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럽시다” 그가 흔쾌히 대답했다. 막상 인터뷰자리가 되고 보니 식사는 뒷전이고 말하고 적느라 제대로 밥을 먹지 못했다.

기자가 물었다.

-많이 바쁘시죠?

“아이고~정말 바쁘네요. 오늘 오전에만 회의가 3개 있었어요.(그날은 금요일이었다) 오전 7시에 청와대에서 당정청 조정위원회 회의가 있었고, 오전 10시에는 정조위원장 자격으로 당정협의회를 했어요. 그 뒤 11시30분에는 더민주당 농림해양수산위원회 회의를 끝냈어요. 오후 2시에 열차타고 광주에 왔네요.”

-바쁘지만 지역에 자주 내려오는 편이죠? 아무리 바빠도 지역구 관리는 해야하니까~(웃음)

“전남도당을 맡고 있으니 공식적인 행사가 많죠. 일주일에 3~4번은 서울과 광주를 들락날락 하나 봐요. 국정기획위 경제2분과위를 맡으면서 챙겨야할 일이 많았어요. 이쪽에서 유일한 여당의원이다 보니 풀어야할 지역일도 많고요.”

이개호 의원이 지난 6월 목포신항을 찾아 세월호 수색 작업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뉴시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년 지방선거로 화제가 옮겨졌다. 이번 인터뷰 핵심이 될 이야기였다. 이 의원에게 전남지사 출마여부를 물었다. 그의 출마 여부는 내년도에 치러질 광주·전남 지방선거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요인이다. 현재처럼 더민주당의 지지도가 높고, 이 의원 개인의 인기도 높은 상황이라면 그의 출마는 다른 후보자들에게는 악재일 수밖에 없다.

“사실 고민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전남지사 출마를 하기에는) 이렇게 좋은 기회가 어디 있겠느냐 싶어요. 저에게는 모두 우호적인 분위기입니다. 그렇지만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서 본다면 골치 아픈 상황입니다.”

-뭐가 골치가 아픈데요?

“지금 제가 지역의 문제를 중앙에 알리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잖습니까?

지금 문재인 정부는 친 호남 정권입니다. 이 지역의 유일한 현역의원인 저에게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부과된 책임이 있습니다. 지역의 발전과 관련해 저에게 주어진 역할을 잘 해야할 상황이죠. 선거에 나간다면 현재 제가 지역발전을 위해서 하고 있는 역할은 모두 포기해야 합니다. 부담스런 상황이죠.”

-그렇다고 이렇게 좋은 기회를 지나쳐 보내기에는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드네요.

“선수가 심판까지 할 수 없다는 생각도 있어요. 선수는 심판을 할 수 있지만 심판은 선수를 하기가 힘들잖아요. 이 지역의 유일한 의원이기에 심판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저마저 선수로 나간다면, 골치 아프죠. 그래서 현재로서는 나간다는 소리를 하기 힘듭니다.”

지난 2일 국회 정론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전남도당 위원장인 이개호 의원이 김종식 광주광역시 경제부시장 등과 함께 금호타이어 해외 매각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그래도 오랫동안 전남도에서 공직 생활을 하면서 만약 내가 도지사가 된다면 이렇게 한번 해볼건 데, 라는 그런 생각을 했을 것 같은데요. 도백으로서의 비전이랄까?

“당연하죠. 도지사를 하려면 전남을 어떻게 바꿔가야겠다는 분명한 청사진과 소신이 있어야 합니다. 도지사 자리가 탐나서, 정치적 목적으로 접근하면 그것은 지역민들에 실례가 되는 일입니다.”

내년 총선 출마여부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얻기 힘들었다. 이 의원 본인도 뚜렷한 결심을 내리지 못하고 여러 가지 상황을 관망중인데 “나간다, 안 나간다”라는 식의 똑 부러진 소리를 듣기는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와 그의 역할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문재인 정부에서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정치입문 초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지만 지금의 이 의원은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호남과 함께 할 수 있는 정권교체를 이뤄냈기 때문에 정치인으로서 여한이 없습니다. 지난 대선 때는 이번에 정권교체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정치입문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정말 열심히 뛰었습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만 54번의 지원유세를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개호가 뭐를 노리고 저렇게 열심이지? 하며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닙니다. 호남과 함께 할 수 있는 민주정권을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는 그 전에 사적인 인연이 있었나요?

“아뇨…그보다는 사실 제가 좀 껄끄럽게 굴었습니다. 지난 총선이 끝난 뒤 정치인은 자신의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며 (문재인 전 대표가 호남이 지지하지 않으면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발언한 사실) 문 전 대표에게 은퇴하던지, 아니면 은퇴를 할 수 없는 이유를 명확히 밝히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했죠.

문 대표가 만나자더니, 그러더군요. 그때는 상황이 그랬다. 광주가 너무 중요해서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랬죠. 다음에 그런 질문이나 요구가 나오면 저에게 말한 것처럼 그렇게 말씀하시라고. 저는 그때 문 전 대표의 마음을 읽고 그를 이해하게 됐습니다.”

-문 대통령이 취임 후 친 호남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호남출신들을 중용하고 있고요. 어떻습니까?

“문 대통령을 몇 차례 대한 뒤 진실하고 가슴이 따뜻한 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호남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다는 것도 깨닫구요. 문 대통령은 광주항쟁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부산에 알려 구속된 분 아닙니까? 김대중 후보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부산에서 왕따도 당하구요. 제가 지난 대선 당시 문 후보에게 DJ정신의 계승자라고 자처할 것을 건의했습니다. 그랬더니 ‘제가 어떻게 DJ후계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분은 높고도 먼 곳에 계신분입니다.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더군요. 그때 저는 문재인을 다시 봤습니다. 그리고 아~이 사람은 대통령에 당선되면 호남을 존중하고 버리지 않겠구나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문 대통령이 재임기간 내내 호남을 중시할까요?

“그럴 것입니다. 문 대통령의 호남에 대한 애정은 각별합니다. 문 대통령이 광주에 대해 여러 가지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윤장현 시장이 내놓은 광주형 일자리 창출입니다. 대단히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많은 관심을 보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습니다. 임기후반까지 이어질까요?

“저는 문재인 정부가 실패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정권이라 생각합니다.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자기관리를 하지 못하면 실패할 정권이 될 가능성이 큰데, 문 대통령은 자신에게 매우 엄격한 분입니다. 오너리스크(OWNER RISK)가 적다고 해야죠. 사려가 깊고 인내심이 대단한 분이니 설령 어려운 일이 있다하더라도 잘 극복하실 겁니다. 실패할 가능성이 적은 정부, 현재로서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인터뷰 도중 이 의원에게 전화가 걸려왔는데 일정을 확인하느라 펼쳐든 이 의원의 수첩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매일 매일의 약속과 행사가 촘촘히 적혀 있었다.

-바쁜 줄은 알았지만, 매일 그렇게 빡빡한 일정입니까?

“어떻게 바쁘던지 대선이 끝난 지 3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대선 유공자표창도 못하고 있습니다. 전남도당 관계자들이 난리에요. 지구당에서 불만이 많다구요. 얼른 좀 돌아다니면서 고생한 분들 위로해드려야 하는데…”

이 의원은 기자와의 인터뷰 며칠 뒤부터 전남도당 위원장 자격으로 전남지역을 돌며 19대 대선 승리 유공자 표창장 수여식을 갖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를 놓고 ‘도지사 선거 출마 분위기 띄우기’로 보고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동안 지켜본 바에 따르면 이개호라는 사람이 그렇게 잔머리 쓰는 사람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인터뷰 말미에는 이 의원과 역사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전남의 산하 곳곳에 스며있는 질곡의 역사에서 교훈을 찾아내 이를 널리 알리는 게 중요하다며 맞장구를 치기도 했다. 이 의원의 조상들은 원래 전북 완주사람들이었다. 동학농민혁명 때 항쟁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해 광양으로 이사를 왔고, 증조부 때 담양과 장성 경계에 와서 뿌리를 내렸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알았다.

이 의원과는 굳은 악수를 나누며 헤어졌다. 내년, 그리고 수년 후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이 돼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지금보다는 더 큰 인물이 돼 있을게다. 가슴이 따뜻하니, 정치도 따뜻하게 할 것이다. 자리가 높아지면 사람이 변한다고들 하지만 이 의원은 그렇지 않았다. 차에 오르면서 그가 지은 웃음은 도청계장시절 보였던, 그 사람 좋아 보이던 웃음이었다. 정치를 하고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사람은 여전했다.

/최혁 기자 kjchoi@namdonews.com

▶이개호가 걸어온 길

한재국민학교 → 효동국민학교 졸업
광주동성중학교 졸업
금호고등학교 졸업
전남대학교 상과대학 경영학 학사

1980: 제24회 행정고시 합격(만21세)
1981 ~ 1992: 전남도 행정사무관
1992~1996: 전남도청 어정과장, 농업정책과장, 총무과장, 기획관
1997: 내무부 지방자치기획단 운영담당관
1998. 1: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행정관
1998.7: 전라남도 광양시 부시장
2000: 전라남도 목포시 부시장(부이사관)
2003: 전라남도 여수시 부시장
2004~5: 전남도 자치행정국장, 기획관리실장(이사관)
2008: 행정안전부 기업협력지원관
2009.7~ 2011.10: 전남도 제35대 행정부지사
2012.12 ~ 2014.07: F1국제자동차경주대회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2014.07 ~ 2016.05?: 제19대 국회의원(전남 담양군/함평군/영광군/장성군,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2016.05 ~ 2020.05?: 제20대 국회의원(전남 담양군/함평군/영광군/장성군, 더불어민주당)
- 2016.06 ~ 2017.06 제20대 국회 전반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간사
- 2016.06 ~ 2017.05 제20대 국회 전반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 2017.06 ~ 제20대 국회 전반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장 직무대리
2016.08 ~ 더불어민주당 전라남도당 위원장
2017.05 ~ 2017.06 더불어민주당 제3정책조정위원회 위원장
2017.06 ~ 더불어민주당 제4정책조정위원회 위원장

수상
1988년: 대통령표창
2003년: 홍조근정훈장
2010년: 전남대학교 자랑스런 용봉인상
2011년: 대한매일신문 대한민국 지도자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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