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처럼 소중하게 기른 배를 땅속에 묻어야 하는 심정을 누가 알겄소. 일주일전까지만 해도 올 추석에 목돈을 손에 쥐게 해줄 ‘효자’로 생각하며 아침 저녁으로 정성껏 돌봤는디….”
태풍 ‘올가’피해 복구 작업이 시작된지 엿새로 접어든 9일 오후 나주시 봉황면 오림리 이옥균씨(66)의 배 과수원.
이씨는 모처럼 내리쬔 뙤약볕아래서 태풍이 몰고온 살인적인 강풍에 힘없이 떨어진 배들을 땅속에 묻었다. 이제 ‘애물단지’로 변해 땅에 나뒹굴고 있는 배를 더이상 내버려 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5천300평의 과수밭에 주렁주렁 열렸던 배 가운데 무려 70%가 떨어져 4천만원의 손해를 본 이씨. 혹시 한푼이라도 건질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하는 기대감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태풍으로 떨어진 배들은 아직 맛이 들지 않아 아무 쓸모가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또 땅에 널부러진 배를 보면 볼수록 울화통과 설움이 더욱 복받쳐 아예 눈에 보이지 않게 땅을 파고 묻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주에서 이번 낙과 피해를 입고 배를 묻어야 하는 농가는 이씨뿐만이 아니다. 태풍 피해를 본 3천476농가 대부분이 먼저간 자식을 보내는 심정으로 배를 흙구덩이속으로 묻고 있다.
이에 따라 전체 재배면적 3천㏊의 88%인 2천650㏊에서 낙과(落果) 및 과목 피해를 본 나주지역 배과수 농가들은 이번 태풍으로 줄잡아 1천억원가량을 날려버린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밖에 도내에서 3천645㏊의 피해가 발생한 단감과 참다래 등 나머지 과수들도 열매가 익기 전에 강풍을 맞는 바람에 상품가치를 잃어 버려지거나 땅속에 묻혀져야 할 형편이어서 재배 농민들을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반면 복숭아는 익은 뒤에 떨어져 일부가 통조림 가공공장으로 팔려 나가 어느 정도 손해를 덜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농협 광주·전남지역본부는 9일 광주시 동구 대의동 농협하나로마트에서 태풍으로 떨어진 곡성 옥과산 조생종 사과가운데 상품성이 있는 것을 골라 상자당(15㎏기준) 5천원~1만원에 모두 200상자를 팔아주기도 했다.
한편 전남도는 9일 태풍과 집중호우 영향으로 발생한 피해보상과 관련, 농작물 피해보상을 명시한 ‘재해보험법’을 제정해 줄 것을 정부에 건의키로 했다.
도는 현행 재해대책법이 태풍이나 집중호우때 발생한 각종 피해를 보상하는 차원이 아니라 생계지원수준에 그쳐 실효성이 없다고 보고 ‘재해 보험법’을 제정하는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주도록 관계부처에 건의할 계획이다.
도는 우선 이번 제7호 태풍‘올가’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본 나주배의 낙과 피해와 비닐하우스 등의 피해에 대해 피해액의 최고 70%까지 지원해줄 것을 요청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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