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엔 맘 놓고 시인(詩人)이 되고 싶다

9월엔 맘 놓고 시인(詩人)이 되고 싶다
<나선희스피치커뮤니케이션즈 대표>
 

꽃을 가슴에 담지 않고 사진에 담으면 아재·아짐이란다. 누군가 뱉은 말에 찔려서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맞다. 젊은이가 꽃에 취해 지극정성 사진 찍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인스타그램(Instagram)이나 페이스북(Facebook) 같은 SNS에 꽃 사진을 올리는 사람은 거의 중년층이다. 그렇다고 ‘아니, 예뻐서 두고두고 보려고 찍은 건데, 그게 뭐가 어쨌다는 거냐?’ 발끈하지 마시라. 나는 아재·아짐 감성 예찬론자다.

아름다운 꽃을 가슴에 담지 않고 사진에 담는 이들은 시인이 되고 싶은 거다. 시를 쓰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 냅다 찍어버리는 거다. 붉게 군락을 이룬 꽃 무릇 절경에 “오메! 오메!”만 연발하다, 말로 다 표현해내지 못한 답답함을 ‘에라, 모르겠다, 사진에 담고 보자’ 한 거다. 아재·아짐들은 그렇게 찰칵 찰칵대며 시를 쓴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이야기를 담은 꽃 상사화를 보고도 “꽃이 피었네” 덤덤하게 데이터만 날리고 마는 감성 제로인 사람과는 차원이 다르다. “어쩜! 너 참 예쁘구나” 감탄하며 찰칵! 찍은 사진 들여다보고 성에 차지 않아 다시 한 번 찰칵! 갸웃하고 또 다시 찰칵! 수차례의 갸웃거림을 거쳐 비로소 사진은 한 편의 시처럼 완성된다. 그리고는 “아내와 다시 찾은 선운사의 꽃 무릇” 몇 줄의 소회와 더불어 카톡으로 SNS로 전송하며 뿌듯해한다. 이것이 요맘때 아재·아짐 감성이다.

큰오빠도 요즘 부쩍 SNS에 매달린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업로드를 한다. 자식들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자꾸만 꽃을 올린다. 유행지난 음악도 공유한다. 처음엔 퇴직한 오빠가 할 일이 없으시구나 싶다가, 그 다음엔 오빠가 이상해지네 했다가, 마침내 오빠가 외롭구나, 녀석들아 아빠 좀 챙겨드려라, 괜히 조카들에게 싫은 소리 한 번 지르고는 계절 탓임을 깨닫는다. 막 환갑이 된 오빠도 가을을 타나보다. 허기야 큰오빠는 오래전부터 꽤나 분위기 있는 남자였다. 어린 내 눈에 오빠는 시인이고 가수였다. 늘 책을 읽거나 기타를 치는 오빠는 멋졌다. 오빠는 이제 시를 쓰지 않는다. 기타도 치지 않는다. 그렇다고 예전의 감성까지 사라지진 않았을 거다. 오빠의 감성 시절을 봐왔던 나는 안다. 그러니 오빠에게 ‘폭풍업뎃’을 막지 말아야 한다. 오빠에게 SNS는 시(詩) 대신이다. 오빠가 올린 것들은 그냥 꽃이고 노래가 아니다. 시(詩)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들 한다. 이 말은 무딘 남자들도 가을바람은 어쩌지 못한다는 뜻이 아닐까? 평소 지독히 업무 중심적인 남자·청년·동료가 있다. 마치 감성이 없는 사람처럼 일만 하는 이다. 그런데 그에게도 가을바람이 부는 모양이다. 틈만 나면 하늘을 보고, 바다로 달려가고, 이어폰 꽂고 살며, 책방을 찾곤 하더니 급기야 파리 행 비행기 표를 티케팅하고 말았다. 아마도 파리에서 내내 시를 써 올 것 같다.

9월 감성엔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여든 다섯 노모도 엄마가 보고 싶단다. 조금 전 일도 깜빡깜빡하는 노인이 엄마타령이라니…. 일주일 만에 어머니를 뵈러 간 나는 신발도 벗기 전에 엄마를 안고 뽀뽀부터 했다. 간만에 딸이 차린 밥 한 술 뜨다 말고 “선희야, 나도 울엄마가 보고싶어야…”하신다. 죽일 놈의 가을바람이 노모의 가슴까지 쳐들어 왔다.

오늘 아침 벗으로부터 전송된 사진 한 장. 푸릇푸릇한 잔디에 살포시 앉은 붉은 단풍잎 사진이다. 산책 하다 찍었다는데 초록과 빨강의 대조가 강렬하다. 여름과 가을이 교차 중인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빛깔 고운 이파리 귀퉁이가 처참하게 날아갔다. 한 쪽이 잘려나간 온전치 못한 이파리는 <대추 한 알>이라는 시를 떠올리게 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너도 대추처럼 태풍과 천둥과 벼락을 감내하느라 애썼구나 싶었다. 내가 귀퉁이 날린 이파리마냥 아팠다.

어느새 시인 감성이 된 나는 수업 중에 사진을 끌어들였다. 시인 깨나 나오겠다 싶어 사진을 본 느낌을 발표시켰다. 결과는 참혹했다. 단풍잎, 잔디만 외칠 뿐 도무지 느낌 따윈 없는 그들은 모두 취업 준비생들이다. 감성이고 뭐고 발등에 떨어진 자기소개서와 면접밖엔 보이지 않는 그들이다.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꽃은 꽃이 아니다. 시 따위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일 뿐이다. 감성을 잃어버린 청년들. 모두가 사는 문제에 나몰라하지 않는다면 그들도 시인이 될 수 있다. 취업문제로 지친 청년들의 분노에 귀 기울이고, 사드 문제에 목소리를 내며, 가난한 이웃의 대문을 노크해보자. 그들도 찢겨진 이파리와 대추 한 알에서 태풍과 천둥과 벼락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감성 터지는 9월엔 맘 놓고 시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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