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에도 이순신 장군의 자취가 있다

<최상윤 前 광주광역시의회 총무담당관>
 

최상윤

내 고향은 보성이다. 단순히 태어나서 어린 뼈를 굵게 키우고 자란 곳만이 아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자잘한 고민거리라도 있을라치면 으레 찾아가는 피난처이자 안식처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대부분 보성하면 차밭, 일림산 철쭉, 제암산 자연휴양림, 율포 해수녹차탕 등 널리 알려진 곳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내가 고향 보성에 가면 자주 찾는 곳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무너진 수군을 재건하고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 율포해변으로 향할 때 새벽을 헤치며 결연히 걸었던 길이다. 오로지 우국충정의 일념으로 승전만을 생각하고 다짐하면서 나아간 숭경(崇敬)과 숭모(崇慕)의 길이다. 그래서 나는 그 길을 감히 ‘충무공의 길’이라 이름 지었다.

충무공과 보성의 인연은 이렇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전선이 남아있습니다.(今臣戰船 尙有十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서기 1597년 8월 15일 선조임금께 올린 장계 가운데 한 구절이다. 난중일기에 기록된 이 장계와 저 유명한 한산도가(閑山島歌)도 보성관아 인근에 있었던 열선루(列仙樓, 지금의 보성읍 보성리)에서 지어졌으나 이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선조 30년 정유재란으로 삼도수군통제사에 재임용된 충무공이 무너진 군사를 수습해 조선수군을 재건한 곳이 보성이다. 조양창(지금의 보성군 조성면)과 해창(지금의 보성군 득량면) 등에서 군량을, 보성관아에서 병장기를 모으고 하동과 발포만의 12척 군선을 점고했다.

충무공이 보성에서 10여 일 동안에 걸쳐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 새벽길을 나선다. 보성관아를 벗어나 활성산성으로 난 길을 따라 봇재를 넘어 밤개(지금의 보성군 회천면 율포리) 해변으로 향한다.

그 결과 명량해전에서 빈약한 120여 명의 군사와 12척 전선으로 133척의 왜군과 대적해 단 한 척의 피해도 없이 적선 31척을 부순 대첩을 거둠으로써 무너졌던 제해권을 되찾았다.

보성은 충무공이 재기를 다지고 조선수군을 부활시킨 큰 인연을 가진 고을이다. 충무공이 보성과 인연을 맺은 것은 아무래도 장인(丈人) 방진(方震)이 당시 보성군수로 재임했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나는 고향에 내려 갈 때마다 일부러 시간을 내 충무공의 길을 걷는다. 수령 30년은 족히 넘었을 삼나무가 숲으로 잘 조성된 임도를 따라 걷다보면 활기가 저절로 솟는다. 특히 마음이 어지러울 때 호젓한 그 길은 안성맞춤이다. 복잡하고 심란했던 마음도 충무공의 의지를 떠올리며 걷다보면 어느새 안정되고 상쾌한 기분에 잃었던 원기까지 회복하는 것을 느낀다.

어쩌다 주변의 지인들과 함께 걷게 될 때도 있었다. 모두가 가정사며 직장일 등으로 숨 돌릴 여유조차 없을 만큼 지쳐 있는 사람들이다. 어렵고 힘들었을 때 충무공의 마음과 의지를 서로 이야기 하다 보면 어느 새 사색과 자기 성찰을 하게 된다. 서로 응원하고 격려하는 사이에 마음의 여유를 찾아 헤어졌다. 언젠가 함께 걸었던 지인은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가족과 함께 다시 걸었다면서 고맙다고 알려오기도 했다.

충무공의 길을 걷기에는 네 경로가 있다. 먼저 한국차박물관에서 오르는 길, 보성읍 쾌상리에 있는 임병문다원에서 가는 길, 보성읍 봉산리 차향기 가득한 집에서 오르는 길, 보성읍 우산리 보향다원에 주차를 하고 동암마을을 거치는 길이 있다.

한국차박물관에서 오르는 길은 충무공이 걸었던 길을 역방향으로 걷는 길이다. 편하게 갈 수 있는 거리를 걷다가 되돌아오면 그만이다. 이 외의 세 경로의 길에서 굳이 거리를 따진다면 활성산전망대까지 보향다원에서 8㎞, 임병문다원에서 왕복 6㎞, 차향기 가득한집에서 5㎞ 정도이다.

산길이라고 해보아야 보통의 등산로와는 달리 잘 닦인 임도를 걷는 일이기에 평소 잘 등산을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라도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활성산전망대에서 활성산성을 따라 올라도 그만이고, 대한다원 차밭 산마루에서 내려다보는 경관도 매우 좋다.

산길을 내려가 마주하게 되는 한국차박물관 3층의 차(茶) 체험실에서 차를 우리고 마시는 다례체험이나 임병문다원에서 말차(抹茶, 가루차)를 체험하는 것도 괜찮다. 가족들과 함께라면 보향다원에서 황금차를 마시고 차만들기 체험을 하는 것도 바람직하고 권할 만한 일이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