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아랑곳을 하는’ 그런 사회

모두가 ‘아랑곳을 하는’ 그런 사회

<최혁 남도일보 주필>
 

지난 15일 경북 포항 일대에 지진이 일어났다. 규모 5.4의 큰 지진이었다. 16일은 수능 시험일이었다. 교육부는 고심 끝에 수능시험을 1주일 연기키로 했다. 수험생들은 혼란에 빠졌다. 내일 시험치를 것을 대비해 모든 것을 정리하고, 컨디션도 겨우 조절해 놓은 상태였는데 연기라니~. ‘멘붕’이라 표현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많았다. 그러나 대다수는 수긍했다. 포항 쪽 학생들이 제대로 시험을 치를 수 없다는데…, 도리가 없는 일이라 여겼다.

그러나 SNS상에는 ‘포항학생’들을 ‘수능시험연기의 원흉’으로 적시하는 글들이 수없이 올라왔다. “니들 때문에 수능보지 못했다”며 원망하는 글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그런 글들을 보면서 우리가 아이들 교육을 많이도 잘못시켰다는 자책이 들었다. 저런 아이들이 수능을 봐 좋은 대학에 가 좋은 자리에 앉으면, 우리 사회는 참으로 거친 사회가 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저런 이들의 사회’는 삿대질하는 사회, 원망하는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공동체에 좋지 않을 일이 일어났을 때 그 문제를 바라보는 유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타적(利他的)시각이다. 상황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면서 풀어가는 유형이다. 문제의 원인과 책임을 우리의 것으로 여긴다. 본인도 고통스럽지만 상대, 혹은 우리의 처지를 헤아리며 인내한다. 그러나 이기적(利己的)시각은 그렇지 않다. 원망의 대상을 찾아내 비난하고 책임을 덮어씌운다. 그리고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간다. 결국은 사회를 거칠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어떤 사고를 갖느냐가 중요하다. 따뜻한 세상과 냉정한 세상의 분기점이다. 관건은 교육이다. 집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긍정적이고 공동체적인 교육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이 공부하는 것은 이 세상을 더 살만한 세상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지, 편한 세상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공부하고 애쓰는 것이지 혼자만 잘 살려고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배가 가라앉아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계엄군의 총칼에 광주시민들이 가족과 생이별을 했는데도, 그 억울한 시신을 ‘어묵’ ‘택배’라 조롱하는 이들은 결코 정상이 아니다. 그런 파괴적이고 반사회적인 언어와 충동질이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아래 포털에 올려지고, 읽혀지고, 악의적 동조자들이 늘어나는, 이 사회도 정상이 아니다. 지진으로 고통 받는 또래의 수험생들을 향해 악담이 쏟아지는 이 사회는 정상궤도를 벗어난 사회다.

사람을 사람답게 여기지 않고, 불의의 사고로 떠난 이들을 안타깝게 여기지 않고, 지진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이 몰상식과 인간성 상실을 바로잡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희망이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의 죽음을 애도할 줄 모르고, 어떻게든 나만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하고, 상대의 아픔을 아파할 줄 모르는 ‘괴물들’의 수는 더 늘어갈 것으로 보인다. 왜냐면 집과 학교에서, 사람을 사람답게 가르치는 교육이 없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의 일터가 있는 빌딩 중간층에는 컴퓨터 관련 학원이 있다. 컴퓨터 디자인과 프로그램 개발을 배우려는 학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당연히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학생들이 많다. 그러나 제대로 된 인성을 갖춘 학생들은 드물다. 엘리베이터 안 사람들과 목례를 주고받으며 타고 내리는 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대부분은 안하무인이다. 큰 목소리로 전화를 하고, 누가 있든 상관없이 좁은 공간에서 친구들과 할 이야기 다 한다.

버스나 전철에서도 나이든 분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도 이제는 보기 드문 장면이 돼 버렸다. 사람대신 가방이 놓여있는 버스좌석에 앉을라치면 가방을 치우며 귀찮아하는 표정을 짓는 청소년들이 많다. 버스 안에서 옆 사람의 발을 밟아도, 버스에서 내리려 몸을 헤집으면서도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는 이가 거의 없다. 잘못하는 아이들에게 뭐라 한마디 할라치면 눈을 치켜뜨고, 고개를 쳐들어대니 그러기도 힘들다.

이러다보니 우리 사회는 어느 사이에 ‘아랑곳을 하지 않는’ 사회가 돼 버렸다. ‘아랑’이라는 단어의 뜻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여러 가지다. ‘소주를 곤 뒤에 남은 찌꺼기’, ‘굶주린 이리(餓狼)라는 뜻으로 무엇에나 탐을 내는 사람’, ‘여인이 남편이나 애인을 친근하게 일컫는 애칭(阿郞)’ 등이다. ‘아랑곳하다’는 ‘일에 나서서 참견하거나 관심을 두다’라는 뜻으로 나와 있다. ‘이웃을 해치는 아랑’보다 ‘옆 사람을 친근하게 대하는 아랑’을 해야 따뜻한 사회가 될 듯싶다. 따뜻한 사회를 위해 ‘모두가 좋은 말로만 참견하고 관심을 주는’, 아랑곳을 하는 그런 사회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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