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명명 천년 기념사업이 가야할 방향

전라도 명명 천년 기념사업이 가야할 방향

<최혁 남도일보 주필>
 

올해, 2018년은 전라도(全羅道)라는 말이 생겨난 지 꼭 천년이 되는 해이다. 이에 ‘과거 전라도’의 행정구역에 해당되는 ‘현재의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광주광역시’는 전라도 명명 천년 기념사업을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다. ‘전라도 천년 기념사업’은 전라도 천년의 역사에 담겨 있는 정신과 문화를 현시점에서 재정립해 전라도의 미래를 열어가는 가치로 삼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점이 있다. 지난 ‘천년 세월의 전라도’는 과연 무엇이었느냐는 것이다. 전라도라는 말이 생겨난 고려 현종 이후 조선, 대한제국,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틀 속에서 전라도는 어떤 역할을 했으며 어떤 위상을 차지했었는지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전라도가 지니고 있는 문화와 풍습은 우리문화의 형성과 전승에 어떤 기여를 했으며 그 특성과 차별성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냉정한 분석도 요청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전라도 해부’는 거시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전라도라는 지역만을 뚝 떼 내어서 미시적으로 살펴볼 일이 아니다. 과거 우리나라 전체의 역사를 놓고 전라도가 어떤 역할을 해냈는지에 대한 통시적(通時的)이고 객관적인 관찰이 필요하다. 자의적 해석이나 필요이상의 확대해석은 자제하는 것이 옳다. 그래야 기념사업추진의 의도 중의 하나인 ‘전라도를 제대로 알려 전라도에 대한 편견을 없애자’라는 취지에도 부합된다.

과거 우리가 겪어야 했던 질곡의 역사, 특히 외세의 침략에 맞서 전라도 사람들이 보여줬던 불굴의 용기와 항거는 대단했다. 그러나 ‘전라도 사람들이 더 그러했다’는 식의 평가나 자화자찬은 자칫하면 비난과 ‘전라도 고립’을 자초할 수 있다. 전라도의 전통문화와 예술 역시 마찬가지다. 뛰어난 문화·예술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어디까지나 제한적이어야 하며 부분으로서의 자리매김이여야 한다.

전라도의 문화·예술이 타 지역의 예술보다 상대적 우위에 있다는 식의 간접적 평가나 홍보는 바람직하지 않다. 어디까지나 지역적 특성을 강조하는 범위 내에서 전라도 문화·예술에 대한 평가와 발전방향이 모색돼야 한다. 모든 역사에는 오욕이 있다. 또 모든 문화에는 장단점이 있다. 과거 전라도 역사에 담겨 있는 영광과 오욕을 모두 아우르는 평가와 정립이 필요하다. 문화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정수(精髓)와 잡스러움을 골라내는 지혜도 요구된다.

그렇지만 지금의 ‘전라도 천년 기념사업’은 전라도 내륙사람들의 기상이나 전라도 문화의 우수성을 보다 부각시키는 방향으로만 전개되고 있는 양상이다. 위험스러우면서도 편협한 일이다. 자랑스러운 것만 내세울 일이 아니다. 감추고 싶고, 참으로 부끄러운 일들까지도 모두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과거의 실수가 미래의 교훈이 된다. ‘전라도 천년 기념사업’은 육지와 바다를 무대로 살았던 전라도 사람들의 긍지를 모두 높이는 동시에 반면교사(反面敎師)의 사업이 돼야 한다.

그래야 보편타당성을 지니게 된다. 인물에 대한 평가에 공과(功過)가 있듯이 전라도 역사에도 양지와 음지가 있다.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켜냈던 인물도 많았지만 외세에 빌붙어 호의호식했던 부끄러운 전라도 사람들도 많았다. 또 우리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전라도 문화 속에는 우리를 오래 지배했던 외세의 전통문화가 토착화한 경우도 숱하게 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진솔한 자기고백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전라도 땅 곳곳에 스며있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재평가와 의미부여가 절실하다. 특히 항몽(抗蒙)유적지를 비롯 임진·정유재란 전적지, 일제의 조선 침탈기에 있었던 동학농민혁명유적지, 일제강점기의 항일의병 전적지, 6·25전쟁 당시의 군경희생과 그 와중에 벌어졌던 양민학살 등에 대한 역사적 조명이 새롭게 이뤄져야 한다. 동해바다를 개척해 독도와 울릉도를 지켜냈던, 여수·고흥 일대 전라도 바다사나이들의 호연지기와 기상에 대한 조명도 절실하다.

그래야 ‘전라도 천년 기념사업’이 전라도만의 기념사업이 아니라 국민적 공감을 받는 대한민국의 기념사업이 될 수 있다. 대한민국의 부분적 역사와 문화·예술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전라도가 한국을 대표한다’는 식의 겸손함이 전제돼야 수용력이 생긴다. 그런 성찰과 자제를 통해서 ‘2018년의 전라도가 대한민국에 어떤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진정한 전라도 찾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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