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기상청 날씨와 생활

눈(雪)의 전설

<김재영 광주지방기상청 기후서비스과장>
 

새해 초반 아프리카 북부지역에 있는 사하라사막에서 38㎝의 눈이 내렸다고 한다. 모래 위에 쌓인 눈 위에서 미끄럼을 마냥 즐기는 현지 사람들의 모습에서 눈은 추운 날씨가 주는 선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춥지 않아 그냥 비로 내린다면 그저 평범한 회색의 모습이겠지만 추위의 도움(?)으로 내리는 곱고 하얀 눈은 우리의 감성과 발걸음의 속도를 일상의 알레그로에서 낭만의 안단테로 바뀌게 한다. 지구촌 어디인가에서는 소망이 될 수도 있는 ‘눈 내림’을 볼 수 있는 추운 계절이 있는 곳에 태어난 것도 복이라고 여긴다면 그나마 팍팍한 현실을 잠시나마 희석시킬 수 있지 않을까.

얼마 전 광주와 전남지역에는 비교적 많은 양의 눈이 내렸다. 이 지역에서 겨울에 내리는 눈은 서해바다 해수면의 온도와 상층대기의 온도의 차(해기차)에 의해서 발생된 눈구름이 내륙으로 밀려들어오면서 내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눈구름들은 덩어리 형태로 이루어져 있어 한 덩어리의 눈구름이 눈을 뿌리고 지나가면 날씨가 갠 듯 잠깐 좋아지다가 다음 구름덩어리가 오면서 흐려져 눈을 뿌리는 식의 간헐적인 강설형태를 보인다. 이런 이유로 바다 쪽에 가까이 있는 지역에서는 내륙보다 더 많은 눈이 내린다.

기상관측 이래 광주에 하루 중에 가장 많이 쌓였던 눈의 높이는 2005년 12월에 내렸던 35.2㎝의 적설이다. 빗물로 환산하면 평균하여 10분의 1정도인 35㎜가 된다. 적설 1㎝는 대략 강우량 1㎜ 정도에 해당하지만, 이는 눈의 축축한 정도에 따라 다르다. 함박눈은 대기상층의 기온이 그리 낮지 않아 습기를 많이 머금은 눈송이들이 내려오면서 서로 달아 붙으면서 커지는 반면 기온이 매우 낮은 상층에서 내리는 눈은 습기가 많지 않아서 내리는 도중에 서로 부딪혀 깨지면서 가루눈으로 내리게 된다. 그래서 함박눈이 내리는 날은 가루눈이 내리는 날보다 더 푸근하게 느껴진다. 습기가 많은 눈은 나뭇가지에 잘 달라붙어 겨울풍경을 멋있게 만들지만 비닐하우스 농가에게는 무척이나 신경쓰이는 불청객이다.

겨울(12월~2월)의 강수량은 연중 내리는 강수량 중 약 5~8%에 불과해 다른 계절에 비해 매우 적게 내린다. 어딘가로 즉시 흘러가버리는 빗물과는 달리 겨울에는 대부분 눈이라는 고체성 강수로 내리기 때문에 바로 사라지지 않고 서서히 녹으면서 지면에 수분을 공급해 주기 때문에 가뭄 완화 역할을 한다. 또한 쌓여 있는 눈은 지열을 대기 중에 빼앗기는 복사냉각을 더디게 하는 땅의 이불 역할을 하면서 겨울을 나는 초본식물의 생존에도 도움을 준다.

사하라사막의 강설이라는 극단적 기상현상을 두고 일각에서는 서유럽 국가들의 홍수와 러시아의 따뜻한 날씨까지 예를 들면서 지구온난화의 재앙이라며 기상이변을 걱정하고 있다. 지구온난화가 계속된다면 우리나라의 겨울도 짧아지면서 눈이 오는 날도 줄어들 것이다. 그러면 우리나라도 언젠가는 겨울에 눈 내리는 것이 특별해지는 시기가 올 것이다. 당장 출퇴근이 불편해지는 폭설도 먼 미래세대에게는 전설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갑자기 눈(雪)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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