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녘 능선(稜線)을 바라보며…

해질녘 능선(稜線)을 바라보며…

<박상신 소설가>
 

‘개와 늑대의 시간’은 프랑스 사람들이 자신이 기르던 개가 늑대인지, 개인지, 분간하기가 힘든 낯선 시간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이는 빛과 어둠이 뒤바뀐 채 공존하고, 사물의 윤곽이 왠지 낯설어지는 시공간을 의미한다. 몇 년 전부터인가 ‘개와 늑대의 시간’이 다가오면 내 관심거리와 시선(視線)은 어느 한 곳을 향해 습관처럼 머물러 있었다.

그 시선 머문 공간에는 석양이 있고, 땅거미가 내려앉고. 난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철없는 아이가 되어야만 했다. 하루, 또 하루, 수많은 하루가 스치듯 지나치다 보니 이젠 제법 기다림에 익숙해진 나 자신을 발견하곤 가끔 혼자 쓴웃음을 지을 때도 있었다. 그리고는 뭐가 아쉬운 것인지 사뭇 진지한 태도로 무작정 시선(視線)이 머무르는 그곳으로 온 신경을 집중하고 만다. 그리고는 숨죽인 채 마음속 귀한 손님을 맞이할 설렘에 그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고, 그 버릇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무엇에 반한 것인가. 시선이 멈춘 그 순간, 눈앞에 스멀스멀 피어오른 어둠은 대지와 산하를 검게 물들이고 그 위에 머문 하늘은 마지막 석양빛을 발산하는 것도 모자라, ‘개와 늑대의 시간’을 빌미 삼은 채 무 자르듯 하늘과 대지를 순식간 갈라놓고 만다. 시선이 머문 풍광(風光) 속 사물은 어느새 붉게, 검게 두 갈래 물감을 뿌리며 그리움을 조롱하듯 사람들의 마음을 강하게 흔들어놓는다. 그뿐인가. 그 실루엣은 대지와 하늘의 넘지 말아야 할 경계를 긋고 그들은 그 경계선을 능선(稜線)이라 부르길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인간과 신의 영역을 구분하며 때론 선(善)과 악(惡)을 구분하는 잣대로 삼았고 그들은 그곳의 정상에 오르길 간절히 원했다. 사람들이 바라본 그 능선이야말로 하늘과 땅을 구분 짓는 지평(地平)의 신(神)이요, 생과 사를 가르는 금도(襟度)처럼 여겨졌다.

시선 안으로 들어온 능선이야말로 인간이 걸어온 굴곡의 발자취이기도 하다. 해질녘 능선은 바라다볼 때면 그 굴곡진 곡선의 유형들은 마치 사람들의 인생살이와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그 능선과의 대화는 어느 교수님의 명강연보다 강렬한 가르침이요, 자연이 준 무언의 스승이라 밖에는 표현되지 않는다.

해질녘 ‘능선과 맞닥뜨리는 시간’ 시야에 머문 그 능선이야말로 내 마음속 허영 가득한 이기심을 깊은 수면 아래로 잠재워놓고 말았다. 마치 아침 호수 위에 맑게 내려앉은 물안개처럼 마음속 순수를 일깨우듯이 말이다. 해질녘 맞닥뜨린 능선의 풍광들은 인간의 그릇된 욕심과 이기심을 박살내고는 어느새 어둠 속으로 홀연히 사라져버린다. 그래서인지 해질녘 능선이야말로 지란지교를 꿈꾸는 평생의 벗으로 내 안에 성큼 다가와 버렸다.

일전에 어느 후배의 질문이 귓전에 맴돌았다.

“선배. 선배는 왜 능선을 좋아해?”

그 후배의 질문에 말주변이라고는 없는 난 거침없는 대답을 쏟아내고 말았다.

“난 해질녘 하늘과 맞닿은 능선을 보면 사람들이 말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걸어간다는 생각이 들곤 해!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한편으로는 인간의 욕망이 어디쯤인지 가늠할 수 없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하지. 결국, 인간의 출발점과 마지막은 능선의 평지바닥과 같기 때문이야….”

결국, 능선과 인간의 출발점은 평지바닥이다. 높낮이도 없고, 그저 평등한 바닥일 뿐이다. 인생 또한, 마찬가지다. 그 능선의 오르막길도, 내리막길도, 사람들의 인생살이 속 오르막과 내리막도, 매한가지란 생각, 인간 또한 해질녘 능선처럼 인생의 여정 속에 오르막과 내리막을 무한 반복하다가 결국 끝맺음은 평지바닥으로 되돌아오고 만다. 어쩌면 인간의 욕망과 허상이 결국 그들을 능선의 정상으로 떠밀고 부추긴 것이다. 그 인과관계의 결과로 약자를 짓밟고 정상에 올라서려는 그들의 이기심과 폐단들이 산처럼 쌓인 것이다. 하물며 인생의 끝마무리가 산 정상이 아닌 평지바닥이란 사실도 모른 채 말이다.

요즘의 현실은 녹록치 않다. 연일 방송에서는 기득권세력의 적폐(입법, 사법, 행정부 등)들이 지켜야 할 금도를 넘었다. 마치 그들의 불법과 부정이 능선의 정상을 향해 달려드는 이리떼처럼 잔인하였고 그 악행이 기운이 하늘에 다다랐다. 그로인해 국민들의 고통은 겹겹이 쌓여 그들이 흘린 혈루(血淚)는 바다를 이루고 말았다. 감히 제안하고 싶다. 이젠 지난날의 반성과 죗값을 치르고 더불어 가기를 제안하고 싶다. 그리고 가끔은 ‘능선과 맞닥뜨리는 시간’을 가져보자. 남을 짓밟아 걸어온 그 길이 결코 올바른 길이 아님을…. 그리고 그 끝이 능선의 정상이 아니라 출발점과 같은 초심의 평지란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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