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계절, 처칠의 유머가 그립다

정치의 계절, 처칠의 유머가 그립다

<김성식 조선이공대학교 교수>
 

지난 번 광주 교육감 선거 TV 토론회에서 어떤 후보가 상대 후보들에게 “눈이 녹으면 무엇이 됩니까?”란 질문을 했을 때 후보자들 모두 한결같이 “물이 된다”고 대답했던 것을 본 적이 있다. 맞는 말이다. 눈이 녹으면 물이 된다. 눈이 녹으면 물이 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세상에 한 사람도 없다. 그러자 질문자는 “눈이 녹으면 봄이 온다”고 말하며, 학생들에게 이런 감성교육을 시키는 교육감이 되고 싶다 했다.

정책이 대동소이하다고 할 때 어떤 후보를 선택할 것인가 고민하게 될 것이다. 영리한 학생은 많아지고 있는데 가슴 따뜻한 학생이 적어지고 있는 교육 현실에서 이 질문 하나로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고민을 줄일 수 있었다.

지난 2월 13일 예비후보 등록을 시작으로 드디어 정치의 계절이 도래하였다. 정치인들에는 피 말리는 잔인한 계절이 시작되었고, 유권자들에게는 잠시나마 사람대접 받을 수 있는 기회의 순간이 찾아왔다. 눈과 귀를 크게 뜨고 제대로 된 사람을 찾아야 한다. 최선이 아닌 차선이 통하는 게 정치다. 쓸만한 후보가 없다고 정치를 외면하게 되면 가장 추악한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작금의 정치판을 보면 삭막함을 넘어 살벌해진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치인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국민을 전혀 안중에도 두지 않은 채 입에서 나오는 말 그대로 뱉는 작태는 인간의 격은 물론 국가의 격까지 떨어트리고 있는 현실이다. 정치인들에게 여유와 재치의 상징인 유머가 사라지고 있다. 위대한 지도자는 유머를 즐겨 사용했던 것을 역사를 통해 잘 알 수 있다. 유머가 없는 정치가는 튀지 않는 공과 같다.

우리는 유머를 흔히 코미디 정도로 생각하는데 코미디와는 다르다. 유머는 대화의 분위기를 부드럽고 따뜻하게 해주는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하고, 나아가 화자의 의도를 청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유머감각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것 같이 생긴 처칠이지만 그는 유머를 적재적소에 사용한 노련한 정치가로 잘 알려져 있다. 대륙이 히틀러에게 점령당하고 영국만이 버티고 있던 상황에서 영국의 마지막 희망은 미국의 참전이었다. 당시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정세를 주시하며 참전 결정을 미루고 있었다. 처칠은 워싱턴으로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나러 갔다. 처칠의 방으로 찾아온 루즈벨트는 욕실 문을 벌컥 열었고 그만 알몸의 처칠과 딱 마주치고 말았다. 당황한 루즈벨트에게 처칠은 오히려 주요 부위를 가리고 있던 수건마저 치우고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 각하, 보시다시피 영국은 미국에게 아무 것도 숨기는 것이 없습니다.” 루즈벨트는 처칠의 이런 솔직한 모습에 반했다. 그리고 협상은 긍정적으로 진행되어 미국은 참전을 결정하게 되었다.

또한 처칠은 정적이 많기로 유명했다. 그의 잦은 당적 변경, 고집스럽고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불 같은 성격 탓에 평생 처칠은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심각한 토론을 넘어 인신공격성 발언에도 순간의 기지로 유머를 구사하였다. 의회에서 상대당의 여성 의원이 “만약 당신과 결혼해 당신이 내 남편이 된다면 난 차라리 독약을 마시겠다”고 처칠에게 독설을 퍼붓자 그는 여성 의원을 응시하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저 역시 의원님의 남편이라면 그 독약을 마셔버리겠습니다.”

어느 날 대기업 국유화를 놓고 설전을 벌이던 의회가 잠시 정회된 사이 처칠이 화장실에 들렀다. 의원들로 만원이 된 화장실에는 빈자리가 하나 있었는데 그곳은 바로 국유화를 강력히 주장하는 노동당의 당수 애틀리 옆자리였다. 하지만 처칠은 그곳으로 가지 않고 굳이 다른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렸다. 이를 본 애틀리가 말했다. “제 옆에 빈자리가 있는데 왜 안 쓰는 거요?” 처칠은 대답했다. “겁이 나서 그럽니다. 당신은 뭐든 큰 것만 보면 국유화 하자고 주장하는데, 혹시 제 것을 보고 국유화하자고 달려들면 큰일 아닙니까?”

정치인은 매일 어려운 일을 만나고 참기 힘든 일도 겪게 된다. 그럴 때마다 인내하는 훈련과 절제된 언어가 필요하다. 거기에 한 가지 더 유머를 구사해 유권자에게 사랑 받을 수 있다면 눈 녹은 뒤 찾아오는 봄과 같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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