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

충무공 정충신 장군<28>-제3장 의주로 가는 길

“나는 지리산에서 세상의 이치를 익히고 천리, 관상을 배웠다. 그래서 나는 단박에 너를 알아보았던 것이지. 함께 왜놈의 목을 쳤으니 우리는 같은 전우고, 동지가 아니냐.”

“그 점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럼 됐다. 우리는 형제다. 형제란 꼭 혈연으로만 이루어지는 관계가 아니다. 의리로 만들어진 형제도 있고, 세상이 만들어준 가족도 되느니라. 우리는 똑같이 왜놈 목을 땄으니 의리로 뭉친 형제다.”

“당연히 그러하지요.”

“그럼 됐다. 이제부터 너는 내 막내동생이다.”

“광영입니다.” “그럼 천하공물(天下公物)이 무슨 뜻인 줄 알겠느냐.”

“천하공물, 천하공물, 그건 알겠네요. 세상 천지의 물건은 공공의 것이다, 그런 뜻이겠구먼요.”

그는 목영에서 일하며 어느덧 사서삼경을 읽는 중이었기 때문에 그런 정도는 충분히 해석할 수 있었다.

“너는 과연 내가 본대로다. 그렇다. 세상의 만물은 특정 개인의 것이 아니다. 사대부의 것도 아니고 왕의 것도 아니다. 굳이 말한다면 어떤 누구나의 것도 아니면서 누구나의 것이다. 모든 백성의 것이다. 우리 산천, 또는 만물은 공공재니 우리 모두의 것이다.”

“세상의 만물은 공공의 것이다…”

“그렇다. 그런데 누군가가 권력을 이용해 자기 것으로 만들고, 그것을 사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세상의 산천을 어느날 문서로 자기 앞으로 등재하고 사유물로 삼았다. 그것을 무지한 백성들에게 일구게 하고, 노동의 대가 없이 착취해 이문을 취하니 백성은 허리 펼 날이 없다. 그들이 그렇게 착취당하는 줄도 모르고 뼈 빠지게 일하면서 못먹고 못입고 가냘프게 숨쉬면서 살면서도 당연히 그러려니 여기며 여기까지 온 것이다. 무지몽매하니 그런 것이다. 무지몽매한 값을 그렇게 치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흔히 관성이라고도 하고 타성이라고도 한다. 무지의 값을 무망하게 지불하는 것이다.”

“본래 하늘 아래 땅은 모든 이의 것이란 말씀이지요?”

“그것을 못배운 사람들은 깨우치지 못하고 있단 말이다. 알게 모르게 온갖 산천, 하다 못해 남정네 아낙네, 들짐승까지 모두 그들의 소유가 되었다. 노비가 무엇이냐. 하늘 아래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면 모두 똑같은 하늘의 자식인데 노비라니. 배운 자들이 아는 것을 나쁘게 사용하면서 노비가 만들어지고, 가진 자 못가진 자로 구분되었다. 그런 그들이 모든 것을 취하면서 백성은 끝없이 가난하고, 그들은 끝없이 이익을 챙겼다.”

정충신이 생각을 못하긴 했지만 뜯어보니 맞는 말인 것 같았다. 조상 대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것은 누구의 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어떤 누구나의 것도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가진 자와 못가진 자로 구분되고, 힘있는 자와 힘없는 자로 나뉘고, 어떤 사람은 농토에서 실컷 일하고도 허덕이고, 또 누구는 놀면서도 부유하다. 그 땅은 자연의 것이고, 하늘의 것인데, 불공평하게 나뉘어버렸다.

“이게 금성 성님 생각인가요?”

“내 생각이기도 하지만 스승님의 철학이지.”

“스승님이라뇨?”

“조정은 역적으로 몰지만 나는 훌륭한 어르신으로 모시지.”

“그가 도사님인가요?”

“난세에 낳은 선각자시다.”

“그분 저도 만나볼 수 있나요.”

그가 대답 대신 동이에서 바가지 째 술을 퍼서 다시 벌컥벌컥 마셨다. 대답하기 싫거나 대답하기 답답하면 그렇게 바가지 술부터 떠마시는 것이었다. 그것이 습관처럼 보였다. 그는 갈수록 신비스러웠다. 그가 엉뚱하게 말했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