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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3>-제3장 의주로 가는 길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

충무공 정충신 장군<43>-제3장 의주로 가는 길

“가자.”

“성님 완력이 무작스럽소야.”

“그런 소리 하덜 말어. 저놈들에 비하면 이건 소꿉놀이여. 너도 이제부텀 완력과 배포를 배워라. 정의 앞에서는 물러서는 것이 아닝개. 암만, 당당해야제.”

“그렇지요. 우리 고향 말을 항개 나도 조금은 속이 편하요야. 관아에서 녹봉 먹니라고 억지로 서울 말을 쓰는디 속이 영 지랄같습디다.”

“그래도 잘 배워둬야 써. 너는 항차 인물이 될 것잉개. 범상한 얼굴이 아니다.”

“그 말씀대로 열심히 살아볼랍니다.”

“그래야제. 청춘은 야망이여.”

“헌디 성님 정체가 무엇인지, 그것이 궁금하요야. 성님이 쪼까 무섭기도 하고요.”

“무서워할 거 없다. 그리고 알 것도 없느니라. 다만 너는 너의 길을 충실히 가거라. 그것이 니가 사는 길잉개.”

“암만요. 성님 말씀대로 나도 야망이 있승개요.”

그들은 초분골로 들어섰다. 여인은 누워있었으나 귀를 밖에 대고 있었던지 인기척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편히 쉬고 계셨소?”

여인은 두 사람을 어둠 속에서 가려보느라 한동안 말이 없었다. 길삼봉이 말했다.

“걱정했던개비요이? 하지만 걱정하들 마쇼. 아짐씨 속이 박속 모냥으로 시원하게 풀어드릴 일을 저지르고 왔승개요. 원수를 대신 갚았소.”

“어떻게요?”

그러자 길삼봉이 허리 춤에서 부시럭거리며 무언가를 꺼냈다.

“두 놈 귀를 잘라왔소. 아짐씨를 욕보인 그놈들인지 모르지만, 사실은 모두가 그놈이 그놈들잉개 상관없소. 복수의 증거물이요.”

길삼봉이 그녀에게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흉측한 귀떼기를 내보였다. 정충신은 그가 어떻게 순식간에 왜 병사들 시신의 귀를 잘라왔는지 믿어지지가 않아서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길삼봉의 손을 한참 내려다보던 여인이 그의 손에 쥔 것을 재빨리 낚아채 그중 하나를 입에 넣어 으적으적 씹기 시작했다.

“내 이놈들을 갈아먹어도 분이 안풀리지.”

귀가 씹히는 소리가 오도독오도독 났다. 그녀는 나머지 하나도 씹어먹었다. 길삼봉과 정충신은 어둠 속에서 이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며 할 말을 잊었다. 오죽 분이 났으면 저럴까, 하는 표현도 사실은 여인의 행동을 다 설명하기엔 부족한 것 같았다. 한참 후 길삼봉이 위로하듯 말했다.

“시원하고 개차분(개운)하요? 그렇게 해서 분이 풀리면 좋겠소.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요. 모두가 정신차려야 합니다이.”

그래도 그녀는 여전히 말없이 오도독오도독 씹고만 있었다. 어쩌면 그녀 스스로도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복수심과 저주와 증오의 눈빛만을 어두운 허공에 내쏘며 씹고 있을 뿐이다.

“정충신, 너는 시방 떠나거라. 여기 아짐씨는 내가 돌볼 거이다. 육십리 밖 산중에 동국사란 절이 있다. 그곳에 아짐씨 모셔얄랑개비다. 근동에선 명찰이다. 그런 다음 나도 떠날 거이다.”

정충신 스스로 생각해보아도 날짜를 지체한 것 같았다. 꿈만 같은 현실에 젖어 정신줄 놓다 보니 갈 길만 멀어지고 말았다.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이럴 때가 아니지…

“가다 보면 이보다 더 험한 꼴을 당할 것이여. 그럴수록 의연하고 대범하고, 때로는 쥐새끼보다 교활하게 세상을 살펴야 할 거이다. 알겄냐?”

“알겠습니다. 삼봉 성님이 늘 곁에 계싱개 나는 힘이 솟구만요.”

“나는 너의 곁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착각하덜 말어라. 나는 더 험한 곳에 가있을 거이다. 그러니 니 몸은 니가 보호해야제. 너는 너 스스로를 보호해야 혀. 지체 말고 어서 떠나거라.”

길삼봉이 한쪽에 세워둔 걸망을 내주었다. 그제서야 그는 망태기의 존재감을 깨닫고 그것을 재빨리 받아 어깨에 맸다. 그는 깊은 밤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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