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농업선구자

29.‘기능성 보리’ 해남 최병남씨

농민 위해 씨받이밭 만든 ‘종자 은행장’

벼·보리·밀, 기능성 농작물로 탈바꿈

국가기관과 협업…연구·증식사업 앞장
 

전남 해남군 최병남씨는 자신의 땅에서 종자 증식하고 현장시험을 벌여 ‘바탕 농사’를 짓는 농업인이다. /전남도 제공

전남 해남군 최병남(70)씨의 농업은 ‘농업의 농업’이다. 농업을 위한 농업, 농업 중의 농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말이야 어떻든 그가 짓는 농사는 매우 특별하고, 그만큼 중요하다.

그는 벼·보리·밀의 종자를 증식하는 농사를 한다. 그가 심은 수 십 ㎏의 (원)종자가 수 십 t의 (보급)종자가 돼 농민들에게 보급되는 것이다. ‘종자증식 농사’라고 할 수 있겠다. 씨 곧 종자는 농사의 바탕이다. 최씨는 ‘바탕 농사’를 짓는 농업인인 것이다.

그의 이력은 참 단순하다. 새마을지도자 3년 역임, 마을이장 18년 이임, 해남미맥연구회장 7년 역임, 조선대학교 정책대학원 수료, 농촌진흥청 식량과학원 현장명예연구관(현재) 등 5개 항목이 전부다. ‘농사만 지어온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그런데 농진청 식량과학원 현장명예연구관, 이 항목이 특별하다. ‘명예’란 말이 붙긴 했지만 현장연구관이라는 직명이 심상치 않다. 곁에서 어떤 지인은 “농촌진흥청 박사님도 그의 논에서 배운다”며 말 거드는 데 최씨는 “에이, 그런 말이 어디었어!”하며 입막음을 한다. 말하자면 국가의 연구기관과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연구와 증식사업을 벌인다는 것이겠다.
 

최병남씨가 보리의 성장을 살펴보는 모습. /전남도 제공

■화려하진 않지만 중요한 ‘농사의 뒷손’

그는 농진청과 함께 식량 종자의 증식이나 개량을 위한 과학적 작업을 현장, 즉 자기 논밭에서 벌이는 일을 한다. 그 일은 ‘연구’에 해당하는 중요성을 가진다. 대략 이름을 풀어보면 그가 하는 역할이 짐작된다. 그가 짓는 농사가 ‘농도’ 전남에서도 농업의 중심인 해남의 정교하고 격식 높은 농사 중에서도 으뜸이라는 무언의 인증인 셈이다. 농학박사도 아닌 그가 어떻게 이런 역할을 맡게 됐을까? 자기 말마따나 ‘농사만 지어온 사람’이어서 가능했던 것이다.

그의 논밭은 우리 농촌의 주요한 ‘씨받이밭’ 중 하나다. 종자은행인 셈이다. 파종부터 생육관리, 수확과 선별 등에 보통 농사와는 비길 수 없는 수고가 필요하다. 그가 제대로 씨앗을 만들어야 여러 농가의 수확이 보장되고 살림이 낙낙하다. 저 들판에서 재배되는 벼·보리·밀의 수많은 종자 상당 부분이 그의 씨받이밭에서 (지역)적응시험을 거치고 숫자를 불려 보급된 것이다. 드러나게 깃발 휘두르는 폼 나는 일은 아니되 얼마나 고맙고 든든한가.

여러 번 묻자 그는 한참 미소 짓다 이윽고 ‘사명감’이라는 말 단 한마디를 내놓았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게으름을 부리거나, 판단을 그르쳤을 때 생긴 동료 농업인들의 낭패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화 때의 표정은 단호했다. ‘자신감’으로 읽혔다. 즉, 사명감과 자신감이 이 ‘종자은행장’ 최병남씨의 재산이구나. 해남과 남도 농업의 자긍심을 비로소 알겠다.
 

해남군은 지난해 ㈜하이트진로음료, 전남농업기술원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지역특화작목으로 재배하고 있는 기능성 검정보리를 이용한 차음료 개발에 적극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해남군 제공

■‘기능성’ 검정보리쌀 본격 재배

이런 그의 역할은 ‘기능성이 있다’는 검정보리쌀(흑수정 찰보리)를 재배하기 시작한 지난 2004년부터다. 재배농가가 별로 없는 이 품종을 다루는 최씨에게 농진청이 관심을 가졌다. 식량과학원으로부터 재배기술을 본격적으로 배우고 서로의 경험 등을 나누다보니 어느덧 고수가 됐다.

새로 개발된 품종의 시험과 증식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이 분야 전문가가 된 것이다. 그의 증식포에 늘 식량과학원 박사급 연구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농업 전반에 기여하는 그의 경험도 중요하지만, 해남의 기능성보리(유색보리) 농사가 그와 동료들(해남미맥연구회)의 노력으로 전국적인 명품으로 결실을 맺고 있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식량이 부족했던 시절, 쌀 대신 우리 배를 채워줬던 보리의 ‘가난한 이미지’를 씻고 건강한 밥상을 위한 중요한 자원으로 탈바꿈하도록 한 공로에도 엄지를 척 세워 칭찬해야 할 터다.

같은 뜻을 걸고 해남미맥연구회는 밀과 귀리 등 9개 품목에 대해서도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의 큰 역할에 해남군수, 재정경제부장관(기획재정부), 농림축산식품부, 전남도지사 등이 상을 수여했다. 농업의 뒷손, 화려하지도 않은 업무에 진력해온 그에게 이런 사이 주어진 것은 그의 농사가, 그 사명감과 자신감이, 특별하고 중요해서다.
 

■‘색깔보리’상품화 잰걸음

이런 가운데 해남군은 ‘색깔보리’ 상품화에 나섰다.

군은 지난해 ㈜하이트진로음료, 전남농업기술원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지역특화작목으로 재배하고 있는 기능성 검정보리를 이용한 차음료 개발에 적극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앞으로 해남군은 매년 200t이상 검정보리 원료를 업체에 납품할 계획으로 협약에 따라 검정보리 자체 채종단지를 조성·운영하는 한편 재배농가 지원 및 재배단지 확대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아울러 가공제품의 소비자 홍보를 위한 현지방문과 관광프로그램도 개발해 농업 6차 산업화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하이트진로음료는 해남산 검정보리 음료 개발과 차별화된 마케팅으로 검정보리의 세계화를 추진하는 한편 해남과 인근 관광자원을 연계한 고객 프로모션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협력하기로 했다.

검종보리의 품종 개발과 종자 생산 공급, 재배 농가에 대한 기술 지원 등은 전남도농업기술원에서 추진하게 된다.

해남산 검정보리는 흑수정 찰보리 품종으로 군은 검정보리 품종의 순도유지를 위한 우량종자생산단지 30ha를 조성, 올해 검정보리 400여t을 생산했다.

지난 2011년 농촌진흥청에서 개발된 품종으로 해남을 중심으로 재배되고 있으며, 미맥연구회를 중심으로 2018년산 재배단지 100ha를 조성했다.

검정보리는 일반 보리에 비해 항산화 물질인 안토시아닌을 4배 이상 함유하고 있고 식이섬유도 1.5배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안세훈 기자 ash@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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