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

충무공 정충신 장군<45>-제4장 이치전투

고바야카와 다카가게(小早川隆景)는 6군단을 출동시켜 영동-무주를 거쳐 임진년 6월 23일, 금산성을 함락시키고, 그곳에 제6군사령부를 설치했다. 전주성(全州城) 점령 작전에는 지형지세로 보아 양동 작전을 쓸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제1대는 승려 출신 부장(副將) 안코쿠지 에케이가 2천 병력을 지휘하고, 제2대는 고바야카와 자신이 직접 병력 2천을 차출해 진격작전을 펼치기로 했다. 남은 병력은 금산성 본대에 배치했다.

본진은 병참선 구축에 나섰다. 6군단 대병력이 북상과 남하를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승전보다 더 절박한 후방 병참선 확보였다. 본국에서 군량을 수송해오는 것이 진격 속도만큼 빠르지 못해서 애를 먹었다. 그래서 현지 조달을 해야 하는데 가는 곳마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부대의 이동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육로, 수로와 각종 제원을 확보하려면 인력 징발이 필요하고, 작전 중인 부대와 기지를 연결하여 보급품과 병력이 이동하는 일체의 육상과 해상 수송로 확충에 현지 주민이 필요했지만, 이들은 대부분 도망을 가버렸다.

전투요원을 병참단으로 꾸려서 각 마을로 내려보내는데 주민을 거칠게 다루다 보니 대부분 죽여버린 경우가 많아 징발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물자 또한 제대로 징발되지 않았다. 원동까지 진출했지만 백성들의 참상은 끝없이 이어져서 헌 짚신짝 하나도 가져오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병들은 후방 지대에서의 전투식량과 노무자 확보를 위해 눈에 쌍불을 켜고 마을을 뒤졌다.

정충신은 적병의 이동경로를 세밀히 탐지했다. 적은 한 군데 집결해 전주성을 공략할 것으로 보았는데 웬일인지 부대가 분산 배치되고 있었다.

고바야카와 사령관이 작전 명령을 내린 것은 그때였다.

“안코쿠지 부장(副將)의 제1대는 금산-무주-진안-웅치-전주 방향을 타격하고 진격하라. 나는 제2대를 편성해 금산-진산-이치-전주 방향으로 진격할 것이다.”

정충신은 징발된 사동 행색으로 허술한 한 장수 지휘부에 숨어들어가 왜 부대의 진격 계획표를 확보해 품에 넣고 산으로 튀었다. 정충신은 계획표를 보고 무릎을 쳤다.

“바로 이것이다.”

적들은 전주성 입성을 작은 전쟁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아군 병력 수준을 하찮게 본 기색이 역력했다. 간단없이 밀어붙이면 된다고 본 것이었다. 그래서 본진까지 동원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너무 쉽게 보는 전쟁. 이것을 역으로 이용하는 거다.”

고바야카와의 상식의 허를 찌르는 것이 중요했다.

“우리를 얕잡아 보는 것을 역이용한다.”

고바야카와는 금산에서 전주로 진입하려면 웅치와 이치라는 두 험준한 고갯길을 타고 넘어야 한다고 보고, 2개 부대를 편성해 투입하면 쉽게 승리하리라고 단정했다.

“조선 육군은 두 곳을 다 수비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 실력으로는 한 곳을 지키기도 어려운데, 두군데로 나뉘어서 싸우려니 죽을 맛일 것이다. 그들 병력이 분산되면 우리의 진격은 쉽고, 전주성은 곧 함락될 것이다. 아침에 출진해 점심밥상을 전주성에서 받기로 하자.”

고바야카와는 진물이 아물지 않은 눈을 껌벅이며 막료장에게 명령했다. 그도 육십 나이의 노장수이었다.

“네가 광주 사는 정충신이렸다?”

정충신이 고경명 앞에서 예를 차리고 권율이 써준 밀서를 내밀자 그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고경명이 밀서를 읽고 나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 나는 합류해달라는 요청서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로군.”

“제가 건의드릴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유격전이 필요합니다.”

그에 대답은 하지 않고 고경명이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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