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

충무공 정충신 장군<46>-제4장 이치전투

“왜 유격전이냐.”

“우리가 적병들보다 지형지세에 밝기 때문입니다. 적은 중과부적입니다. 정면대결로는 이기기 힘듭니다. 적을 부수려면 유격전으로 대비해야 합니다.”

“생각보다 어른스럽구나. 지인의 벼슬인데 녹봉을 받아먹을 만하다. 하지만 걱정하덜 말어라. 나가 다 준비가 됐승개. 그러니 너는 너의 진지로 돌아가라. 너희 부대가 잘하면 나를 돕는 것이다.”

고경명 부대는 적병의 진격로를 꿰뚫고 있었다. 고경명은 김제군수 정담, 의병장 황박, 나주판관 이복남이 인솔해온 의병 2천을 규합해 영(嶺)의 요소요소에 배치했다. 종후 인후, 두 아들을 그의 곁에 두었으니 막료였다. 그들은 무기가 부족한 곳, 병력이 달린 곳으로 달려가 병력을 충원하고 무기를 배급했다.

“적이 동시에 쳐들어올 것입니다. 우리 병력을 분산하려는 계략입니다. 그래서 우세한 병력으로 밀어붙이려는 것입니다요.”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니 어서 떠나거라. 한시라도 급히 대비해야 한다. 사또 어른께도 안부 전하고, 밝은 세상에서 만나자고 전해라.”

정충신은 다람쥐처럼 산을 타기 시작했다.

“내 편지는 잘 전달됐느냐?”

권율이 짚신이 산발해진 정충신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산을 타고 오느라 그의 짚신은 너덜너덜했고, 한두 발가락도 까여있었다.

“제가 말씀드리기 전에 그쪽에서 먼저 대비하고 있습니다.”

“그랬을 것이다.”

이치령 골짜기 이곳저곳에 병졸들이 배치돼 함정을 파고 목책을 두르고, 투석전을 대비하는 돌을 쌓고, 독화살을 준비하고 있었다. 진지는 어설프나 하루이틀 지나자 꼴을 갖추었다.

권율 역시 백병전이나 정공법으로는 적을 당해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정충신의 제안은 딱 맞는 전술이었다. 아군이 지세에 밝은 환경조건을 최대한 이용해야 하는 것이었다. 민첩하게 산을 타는 젊은 군졸들이 유격대로 활약하는 것이 수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의 보급대 수비대 전투대 포대의 동태를 살피는 척후 특수임무가 중요했다. 그 역할을 정충신이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왜병들은 골짜기 이곳 저곳에 진을 치고 흡사 긴 타액처럼 군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데, 얼핏 보면 개미떼처럼 우굴거리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일정 간격을 두고 움직이는 행렬들이어서 규율이 잡혀있었다. 오랜 세월 정규 훈련을 통해 얻은 체계적인 군사조직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골짜기마다 수천 명이 진을 치고 있는데 다른 쪽 골짜기엔 화포부대도 갖추고 있었다. 적들은 사기가 오른 듯 이곳 저곳 군영지에서 구령과 군호가 쩌렁쩌렁 골짜기를 울렸다. 그것만으로도 상대방을 제압하고도 남아보였다.

그들은 노획한 군량미를 쌓아놓고, 소를 잡아 구워먹고 있었다. 지글지글 고기 타는 냄새가 골짜기에 진동했다. 그래서인지 적병들의 얼굴들은 하나같이 기름칠을 한 듯 번지르르했다. 군량은 모두 민가 마을에서 훑어 우마차에 실어날라온 것들이었다. 우마차를 끌고 온 소와 말은 그 자리에서 도살해 살과 뼈를 갈라 병사들이 나눠먹었다. 먹는 것은 장수와 부장과 병관과 병졸간에 차이가 없었다.

“우리가 가진 것이라고는 용맹밖에 없다.”

권율이 긴 호흡 끝에 독백했다.

그렇다. 저 농투서니의 농민군을 보라. 그들이 여기 모인 뜻이 무엇이겠는가. 의기만을 생각하고 모였을 것이다. 숫자도 빈약하고 행색이 꾀죄죄한 오합지졸이지만 눈이 파랗게 살아있다. 관병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고, 보이더라도 헛간에 짚을 깔고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그중에 도망가는 관졸이 많았다. 그래서 그는 사기를 고려해 관병 둘을 잡아 즉결처분했다. 그래도 여차하면 도망을 갔다. 절망 가운데 방향을 잃고 있는데 방을 보고 백성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역시 주력은 황토 흙이 묻은 농투서니의 농민복 차림의 의병들이었다. 왜병들이 보기에 이들은 군사들 같지 않았다. 그랬으니 기세가 오를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싸워본대야 칼을 휘두르기 전에 나자빠질 무리들이니, 문자 그대로 질서없이 모인 까마귀 떼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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