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

충무공 정충신 장군<53>-제4장 이치전투

왜의 나오지 막료장의 힐난은 이어졌다.

“그 뿐인가. 경상우수사 원균은 그 많은 전선(戰船)을 갖고 있었음에도, 우리 군이 부산포에 상륙하자마자 얼음이 되어버리고, 부산포 첨사라는 자는 태종대에서 사냥을 하다가 우리 6군이 상륙하자 겁을 먹고 총을 버리고 도망가버렸다는 거야. 총을 가지고 있어야 할 자가 버리고 도망가면 어떻게 되지? 상대가 상대 같아야 우리도 싸울 힘이 생기는데 도대체가 이 모양이니 맥이 빠지더라구. 그놈들 좆빠지게 도망가는 모습 볼 때 내가 도리어 기운이 쏙 빠져버렸다니까.”

병졸들 중 장창병과 조총병 사이에서 와크르 웃음이 쏟아졌다. 그 광경을 맨 선두에서 똑똑히 지켜보았던 것이다. 장창병들이 방패병들 뒤에서 배열을 맞추고 자세를 방어진으로 만들자 조총병들이 재빨리 앞으로 나서 몇방 쏘는데, 적들이 혼비백산 도망을 가버린 것이다.

“그러나 다대포 첨사인 윤흥신은 다르더군. 목숨을 걸고 싸우다 우리 부장(副將)의 총을 맞고 전사했는데, 노비 출신이더라고. 배운 놈은 비겁하게 숨고, 미천한 자가 오히려 나라를 위해 장렬하게 전사하는 모습을 보니 그가 존경스럽더라고. 적이지만 존경할만해. 그래서 묘를 써주고 오려고 했는데 부대가 워낙에 빨리 북상해서 버려두고 왔어. 경황없이 오다 보니 묘를 써주지 못했는데 나중 유골 찾아서 묘를 만들어주자고.”

“독수리 병아리 생각해주는 것인가, 하하하.””동래부사 송상현도 1군단 부장의 칼에 장렬하게 전사했어. 하지만 고작 반나절 성루에서 버티다가 가더군.”

한 이시가루 군병이 받았다.

“용궁 현감 우복룡이란 자는 병마절도사 소속의 군사 수십 명을 반란군이라고 몰아세워서 참수했더군. 군사들은 병마절도사 소속 군인들이라고 패를 보여주었지만, 그것도 위조라면서 모두 죽였다는 거야. 그는 반란군을 처단했다고 조정에 상신해서 도리어 훈장을 받고 안동부사로까지 승진해 갔다는 거야.”

“정말 웃기는 새끼들이군. 왜 조선땅에는 그런 종자들만 있지?”

“아니지. 비난만 할 건 아니지. 우리에겐 그지없이 고마운 일이니까. 우리 대신 자체적으로 청소해주니 우리 북진길이 비단길이 아닌가.”

“그 가족들이 억울해서 관아 앞에서 울부짖으면서 항의하니까 죽은 자들을 대신해 다시 반란을 도모한다고 그자들까지 잡아가두고 두둘겨 팼다는 거야.”

“정말 우리가 할 일을 그자들이 대신 따까리해주니까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우리가 그자들에게 훈장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하하…”

“훈장 줄 놈은 또 있어. 경상순변사 이일은 상주에서, 그리고 조선 육군 총사령관 신립은 충주에서 적군이 근접해오고 있다고 보고하는 척후 군관을 ‘군을 동요시킨다’고 화를 내면서 목을 베어버렸다고 하더군.”

“신립은 전사했잖나. 군졸들도 죽거나 도망가버렸구. 그러니 손 안대고 오줌누는 격이야. 하하하.”

“비유를 해도 왜 꼭 추접스럽게 하나. 손 안대고 코 푼다는 것이 정확한 조선 속담이야.”

그들의 말은 끝없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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