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과 미국 대통령

노벨평화상과 미국 대통령

<최혁 남도일보 주필>
 

세상은 사람들이 많기에 온갖 황당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류(類) 프로그램을 보는 이들은 상식 밖의 일에 놀라고 또 신기해한다. 그런데 미국 대통령 트럼프와 관련해 놀랄 일이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가 노벨상을 받을 만하다”며 여기저기서 이야기가 나돌고 있는 것이다. 명분이야 그럴듯하다. ‘힘을 통한 압박으로 북한으로 하여금 핵을 포기토록 해 한반도에, 더 나아가 세계평화에 기여했다’ 는 것이다.

불과 몇 개월 전, 무력사용을 시사하며 한반도를 전쟁의 공포 속으로 몰아넣던 트럼프에 대한 기억은 찾아볼 길이 없다. ‘화염과 분노’를 들먹이며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리틀 로켓 맨’이라 조롱하며 모욕했던 ‘폭력맹신주의자 트럼프’는 없다. 전쟁의 공포를 불러일으켰던 트럼프의 ‘겁박’은 어느 사이 ‘평화를 가져오기 위한 전략적 수단’으로 미화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트럼프의 강공 때문에 한반도 평화가 가능했다는 논리다.

트럼프의 양해아래 남북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치른 문재인 대통령도 “노벨평화상을 받을 사람은 트럼프 대통령”이라며 은근슬쩍 추임새를 넣었다. 그거야 겸양에서 비롯된 ‘상대에게 공(功)돌리기’로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문 대통령은 ‘다음 노벨평화상 후보는 문재인과 김정은’이라는 주변사람들의 애드벌룬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트럼프에게 공을 돌려야 아무래도 북미정상회담이 잘 풀릴 것이라는 계산도 고려했음직 싶다.

‘트럼프에게 노벨평화상 안겨주기’는 가시화되고 있다. 웃자고 하는 소리가 아닌, 현실이 되고 있다. 단순한 립 서비스에 그치지 않고 있다. 공화당의 루크 메서 하원은 17명의 의원들과 함께 트럼프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 이들은 지난 2일 추천서를 노르웨이 노벨 위원회에 발송했다. 이들은 추천서에 ‘트럼프가 전략적·군사력 우위로 북한을 압박, 평화를 가져왔다’고 적었다. 좋게 말해서 그렇지, ‘협박을 잘했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결과가 좋으면 모든 게 좋은 게’ 세상 사람들의 보편적 생각이다. 트럼프에게 노벨평화상 안겨주기도 비슷하다. 트럼프가 미국의 국익을 위해 7천만 남북한 주민의 생사는 안중에 없이 전쟁을 벌이려 한 것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트럼프는 인권과 거리가 멀다. 수많은 여성을 성적으로 조롱하고, 미국의 보편적 가치에 어긋나는 반(反)이민정책을 펼쳐 수많은 이민자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세상을 평화롭게 만드는 캐릭터가 아니다.

트럼프가 평화와 화합의 사도로 둔갑하는 이 현실이 거대한 코미디 쇼 프로그램 같다. 하기야 조선을 희생양으로 삼아 일본과의 짬짜미에 성공한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도 노벨평화상을 받았으니, 그리 생경한 일만은 아니다. 미국 26대 대통령 루즈벨트는 러시아의 남하와 일본의 필리핀 점령을 막기 위해 조선을 일본에게 넘겼다. 그 대신 미국은 필리핀을 챙겼다. 이런 짬짜미를 한 것이 테프트-카츠라밀약이었다. 이 밀약은 을사늑약의 단초가 됐다.

루즈벨트는 러일전쟁을 중재한 공로로 190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힘을 바탕으로 한 제국주의 정책으로 약소국 민족들을 도탄에 빠지게 한 그가 노벨평화상을 탄 것은 희극이다. 강자들의 논리에서만 가능했던 수상(受賞)이었다. 그가 주창한 ‘민족자결주의’는 러시아와 영국 등 강대국들의 개입을 방지하기 위해 내세운 사탕발림이었다. 다른 강대국들의 간섭이 없어야 미국 혼자서 중남미 약소국들을 짓밟고 미국의 국익을 최대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반도 분단에 원죄가 있다. 그 원죄에 아랑곳하지 않고 루스벨트는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루스벨트는 생전에 “말은 부드럽게 하되 커다란 몽둥이를 들고 다녀라”며 겁박을 통해 약소국을 흔들어댔다. 이번에는 트럼프다. 그는 “전쟁이 나도 저쪽(한반도)에서 나고, 수천 명이 죽어도 저쪽에서 죽는다”며 전쟁불사를 외쳤다. 하도 강력하게 군사력 투입을 호언하기에 결국 김정은 위원장이 생각을 고쳐먹었다. 트럼프는 졸지에 ‘평화의 사도’가 됐다.

하기야 위기가 있는 곳에 기회가 있다고 했다. 한반도가 세계의 화약고이기에 한반도 일만 잘 처리하면 노벨평화상이 건네지곤 했다. 지미카터 대통령은 중동평화에 공이 컸다. 그러나 2002년 노벨평화상 수상은 한반도 문제를 중재한 공로를 인정받아서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전략적 인내’를 통해 한반도 평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지금까지 세 사람의 미국대통령이 한반도 때문에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러나 한반도에는 평화가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사람들의 활약이 그리 실용성이 없었다는 뜻이다. 하기야 히틀러나 스탈린, 심지어 전두환까지도 후보자가 됐었던 노벨평화상이니, 그렇게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삼가는 게 좋겠다. 트럼프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내년에나 가능하다. 후보 추천 기한이 매년 1월 31일까지 여서이다. 트럼프가 ‘뭐 그렇고 그런’ 상을 받으면 어떤가? 노벨상 욕심으로 한반도평화를 잘 일궈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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