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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85>-제6장 불타는 전투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

충무공 정충신 장군<85>-제6장 불타는 전투

어른들은 젊은이들이 어른들을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기존질서를 따르는 자라야만이 성공한다고 했다. 착하게 어른들을 따르는 것이 바른 길이라고 했다. 그리고 창의력과 도전정신은 청춘의 뇌에서 싹 뽑아내버리는 것이 편하다고 했다.

정충신은 여지껏 어른의 복사판이 되어 공맹을 달달 외웠다. 청춘의 시선으로 자신의 잠재력을 주목해보지도 않았고, 마음의 저변으로부터 움터오는 이성에 대한 애틋한 감정, 미지에 대한 그리움,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이상과 꿈을 눌러버렸다.

그런데 소연은 다르다. 기존질서를 거부한다. 가냘픈 몸이지만 자신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산골 소녀 같지 않은 태도가 당돌하지만 당당해보인다.

“열여덟 살이라면 세상 돌아가는 것쯤은 알아요. 여자라고 해서 모르는 줄 아세요?”

정충신은 생각이 어른스러워서 소연이 자신보다 서너 살은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같은 또래라는 것에 반가웠다.

“관기로 가는 것은 반대요.”

“정 총각을 못만나면 그렇게 해서라도 만나고 싶다면요?”

“그런 길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디요?”

“어떻게요?”

“나한티는 용기라는 것이 있승개요. 내가 소연씨 집으로 부지런히 찾아갈랑마요. 소연씨 아버님께 넙죽 인사하고, 소연씨를 저에게 주십시오, 그렇게 할 용기도 있지요.”

“소리 한 대목 같구마요. 하지만 난 출가외인이어요. 친정이 아니라 시가에 가서 살아야 해요. 신랑과 하룻밤 자지도 않았는데 시가에 가서 청상과부로 수절해야 해요.”

“그건 말도 안되지요.”

“나도 안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하네요? 아버님이나 동네 어르신들이나 시가 어르신들이 그 길을 가야 한다고요. 하지만 그건 죽기보다 싫어요. 얼굴 한번 못보고 죽은 신랑 영혼하고 평생 살라고요? 마음에도 없는 혼례였는데두요? 왜놈들이 쳐들어오고, 처녀들을 잡아간다고 하니까 아버님이 서둘러서 혼인을 시킨 거여요. 남자가 병골인데, 그래서 집안에 있었는데, 그런 남자라도 남아있을 때 혼인해야 한다고 부랴부랴 결혼식을 올린 것이어요. 난 그런 남자보다 낭군님같이 당당하고 자신감있고, 다부진 남자를 좋아해요. 날 데리고 가요.”

그녀가 정충신에게 안겼다. 정충신은 마음이 허공에 붕 뜨는 기분이었다.

“와! 와!”

산 아래에서 요란한 함성이 일었다. 왜군 부대가 개미떼처럼 새까맣게 깔려서 나무와 바위를 헤치고 깔딱재를 오르고 있었다.

“저녁에 올 게요.”

전황은 위급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정충신이 돌아서자 소연이 뒤따르며 자신이 찼던 염주를 정충신의 손목에 채워주었다.

“누군가가 보살펴 주실 거여요.”

“어떻게 이런 것을…”

“이것을 가져야 무사할 것이어요.”

“잘 알겠습니다.”

“아무리 급해도 뜻은 알고 가야 해요. 이 단주는 부처님 마음이 담겨있어요. 부처님이 사는 나라에 해마다 적병(敵兵)이 쳐들어와서 백성들의 고통이 컸어요. 그래서 왕이 부처님께 달려가서 물었죠. 적으로부터 나라를 어떻게 구할 수 있느냐고요. 그때 부처님이 보리수 열매를 꿰어서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염불을 외우라고 하셨어요.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이죠. 왜 백팔염주냐 하면 열매가 우연히 백팔개 꿰어져서 백팔염주가 되었을 뿐, 특별한 의미는 없대요. 어쨌든 그렇게 수없이 헤아리면 마음의 산란함이 없어지고, 용기가 날 것이며, 장차 이렇게 백팔만 번을 헤아리면 모든 번뇌가 끊어져서 생사의 흐름에서 벗어나 과보를 얻을 것이라고 했어요.”

골짜기에서 다시 천둥처럼 함성이 몰아치고 있었다. 뒤이어 총소리가 콩볶듯이 나고, 야포소리가 쿵쿵 산을 울렸다. 산이 깊어서 메아리도 컸다. 골짜기 아래 야포가 터뜨려질 때마다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적들은 산골짜기 조선군이 잡입해 있을 곳을 향해 연신 포를 날렸는데, 그래도 조선군의 움직임은 없었다.

“이 단주가 누구 마음이라고 했지요?”

소연이 물었다. 마음이 급했지만 대답을 해주어야 했다.

“그야 부처님 마음이라고 했지요.”

“아니어요. 내 마음이어요.”

“기다려요. 잘 싸우고 올 게요.”

정충신이 소연을 안아주고 다급하게 숲으로 몸을 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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