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다리에 대한 오해와 사실

배고픈 다리에 대한 오해와 사실

<김성식 조선이공대학교 교수>
 

무등산 자락 아래 30여 년을 살며 ‘배고픈 다리’를 매일 지나다니다 보니 그 유래가 더욱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땅이나 다리는 그 이름이 명명됨으로써 존재가 인정되고, 공공의 기억과 상징을 통해 사람들에게 각인되기 때문이다. 무등산 첫 들머리 중 한 곳인 ‘배고픈 다리’에 대한 유래는 대략 세 가지 유형으로 전해지고 있다.

첫 번째는 ‘소나기’나 ‘행주치마’처럼 사람들 사이에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는 민간어원설이다. 무등산에 땔나무를 하러 다니던 시절, 멀리 양동 발산에서 새벽밥을 먹고 십여 리쯤 걸어오다 보면 무등산 초입인 이곳에 이르러 벌써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와 더불어 무등산에서 땔나무를 한 짐 해가지고 내려오다 보면 이곳에서 잠시 짐을 풀고 쉬었던 곳으로, 이때쯤이면 허기진 나무꾼들이 먹을 것이 없어 계곡물로 배를 채웠다고 하여 ‘배고픈 다리’로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또 하나는 처음 이 다리를 놓을 때 그 설치비용이 105푼이 들어 ‘백오푼 다리’라 했다는 이야기와 더불어 수량이 적은 현재와는 달리 예전에는 수량이 풍부하여 영산강을 거슬러 광주천까지 배가 들어오던 시절, 이곳까지 배가 들어오게 되어 밧줄로 배의 고물(船尾)을 매거나 풀었다는 뜻으로 ‘배 고를 푼 다리’, 즉 ‘배고푼 다리’라 했다는 설이다.

두 번째는 형태설로 지금의 현대식 다리가 설치되기 전, 하천 범람 시 물 밑에 잠기기 때문에 하천수가 교량을 씻어 넘어 지나간다는 세월교(洗越矯) 모양으로서 다리 가운데가 움푹 내려가 배가 고픈 형태를 지녀 그 모습 그대로 ‘배고픈 다리’라 했다는 다리의 형태에 따른 설이다.

세 번째는 무등산 증심사 오백전 건립과 관련된 연기설화다. 전해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세종 22년(1440년)에 광주 목사 김방(金倣)이 경양방죽(옛 광주시청 자리)을 쌓을 당시 축조 현장에서 나온 개미집을 보고 불심(佛心) 깊은 김방이 무등산 장원봉 기슭으로 옮겨 새 집을 짓고 살도록 했더니 며칠 뒤 개미떼가 하얀 쌀을 물어와 창고에 쌓아두자 일꾼들의 양식이 해결되었다.

김방은 무사히 방죽 공사를 마치고 개미들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무등산 증심사에 나한전과 오백전을 건립하던 중 병을 얻게 되었다. 김방은 닭똥집을 먹어야한다는 희유한 처방에 마지못해 닭똥집을 약으로 삼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세종대왕의 꿈에 수백 마리의 닭들이 찾아와 김방을 하루빨리 처형하라고 간청을 하자 세종은 김방을 처형하라는 명을 내렸다. 그런데 며칠 후, 또 다시 왕의 꿈에 어린 사미승 수백 명이 나타나 김방은 나라의 충신이고 백성을 살리는 어진 이라며 살려줄 것을 요청했다. 세종이 다시 금부도사에게 돌아오도록 명하자, 먼저 떠난 말이 무등산 증심사 광주천 다리 근처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 뒤에 왕의 명을 받은 천리마가 달려오자 그때서야 움직이지 않던 말이 발을 떼며 반가워했다. 이 때 한양에서 쉬지 않고 달려온 금부도사와 관군들이 증심사 입구 다리에서 배고픔을 달래며 날을 세웠다고 하여 ‘배고픈 다리’로 불리고, 김방은 돈독한 불심으로 오백전 불사를 이루게 되었다는 증심사 오백전 연기설화다.

흥미 있는 이야기로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민간어원설이나 연기설화가 제 격인데 아무래도 두 번째 형태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현재에 위치한 ‘배고픈 다리’ 바로 위쪽에 ‘배부른 다리’가 있었다는 증언을 여러 사람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운림중학교 아래 ‘운림교’가 예전에는 가운데가 조금 불룩한 ‘배부른 다리’였다는 것으로 그 형태에 따라 ‘배고픈 다리’, ‘배부른 다리’로 불리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또 하나는 제주도 올레길 3코스에 해당하는 성산읍 신천리와 표선읍 하천리를 이어주는 다리를 ‘배고픈 다리’로 부르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평상시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에 교각을 세우지 않고 시멘트 포장을 한 형태로 다리라고 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지만 어쨌든 ‘배고픈 다리’로 불리고 있는데, 50여 년 전에 보았던 광주의 ‘배고픈 다리’와 그 형태가 너무 흡사하기 때문이다.

배고픈 다리를 지나 무등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떠올리고 싶을까? 사실보다 사람들의 가슴 속에 살아남는 이야기가 더 오래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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