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제없어?

나는 문제없어?

<나선희 스피치커뮤니케이션즈 대표>
 

“소통이 가장 어려운 대상은 누구인가?”라는 화두로 강의를 진행하곤 한다. 대부분은 가족을 꼽는다. 그 중에서도 단연 으뜸은 배우자다. 다음으로는 아버지가 어렵다, 자녀와 안 통한다, 시누이, 시어머니, 직장 상사, 이성 동료 등이 등장한다. 그런데 개중에는 그런 대상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꼭 있다. 누구하고든 잘 소통한다는 것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세상에 그런 일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사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문제 있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그렇다고 이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문제없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진짜 문제가 없다. 다만 상대에게 물어 볼 일이다. 상대는 ‘나’와의 관계에서 불편을 겪으면서도 ‘나’와 맞춰버리거나, 표현을 하지 않고 평화를 유지하는 쪽을 선택해 ‘나’는 모르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상대는 ‘나’ 때문에 속이 곪아터지는 데도 ‘나’는 그의 속사정을 모르니 소통 잘되는 걸로 착각하고 태평한 나날을 보내는 거다.

강의를 하다보면 청중의 태도에 따라 강의가 술술 잘 풀리기도, 꼬이기도 한다. 잘 들어주고, 호응을 잘하는 청중을 만나면 행운이다. 리액션 없기로 정평이 난 기관에서 강의할 때다. 온 몸을 날려 열강을 하니 얼음장 같던 강연장이 금세 화기애애해졌다. 하지만 유독 한 사람만이 시종일관 무표정인 거다. 다들 박장대소를 해대도 반응이 없다. 안 듣는 건지, 감정이 없는 건지 의아할 정도였다. 다른 때 같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지만 그날은 달랐다. 이후로도 네 번을 더 해야 하는 교육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표정 그를 방치하지 않기로 맘먹고는 청중을 향해 최대한 부드럽게 질문하는 방법을 썼다. “여러분들 중, 내 표정이 상대를 불편하게 할 거라고 여기는 분, 손들어 보세요.” 결과는 놀라웠다. 반드시 손들었어야 할 문제의 사람들, 그들만 제외하고 나머지가 다 ‘내가 문제’라며 손들었다. 난감한 상황이다. 나는 무표정, 그에게 다가가 되물었다. 사안이 민감한 만큼 아주 조심스럽게, 농담 반 진담 반 버전으로. “선생님은 어째서 손을 안 드신 걸까용?” 떨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엄청난 승부수를 던지듯 건넨 이 말로 이후 그는 커다란 변화를 갖게 되었다.

그는 ‘누구에게나 편안한 사람’으로 스스로를 평가하고 있었다. 하물며 자신은 잘 웃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여기 많은 청중들 중 가장 불편해보였다고 하자 믿기지 않는다며 당황해했다. 다행이도 자신이 문제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는 놀랍게 달라졌다. 환하게 웃으며 호응해주었고, 눈을 맞추고 경청하며 소통 잘하는 멋진 남자로 거듭나게 된 거다.

한 부인이 가족들과의 관계가 너무나 힘든 나머지 신께 빌었다. “가족들 때문에 죽을 것만 같습니다. 다들 자기밖에 모르고 밖으로만 나돕니다. 이렇게 사느니 저를 천국으로 데려가 주세요.” 간절한 기도에 신이 응답했다. “그래, 네 소원대로 해주마. 그런데 그 전에 할 일이 있다. 네가 죽으면 손님들이 찾아올 텐데, 집안 청소를 해 놓아라. 그리고 죽기 전, 남편과 아이들에게 마지막 사랑을 쏟아야지 않겠느냐. 미우나 고우나 네 남편, 네 자식이니까.” 부인은 열심히 집안을 쓸고 닦았다. 그리고 가족을 위해 정성껏 음식을 하고, 따뜻한 말과 미소로 안아주었다. 신의 주문대로 임무를 다한 부인이 또 무엇을 하면 되냐고 하자 사흘만 더 정성을 다하고 오라고 한다. 드디어 사흘 뒤. “약속을 잘 지켰으니 이제 천국으로 안내할 테니 가자.” 신의 말에 주저하던 부인은 “저, 나중에 천국 가면 안 될까요”라고 했단다. 예전과 달리 집안 분위기가 좋아졌으니 죽고 싶은 마음이 달아났기 때문이다.

인터넷 어디에선가 읽은 것 같은데 너무나 공감되는 이야기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내게 달려있다. 화근을 밖에서만 찾는 것이 문제다. 나를 먼저 살펴보고 상대를 보는 것이 순서다. “내가 문제”라며 손을 드는 사람들은 자꾸만 나를 돌아보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소통은 쌍방향(雙方向)이라지 않은가. 소통을 잘하려면 가장 먼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 상대가 원하는 것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유의할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도 알 것이라는 착각이다. 그러니 소통을 잘하려면 서로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더불어 그 것을 잘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는 “나는 문제없어”라고 ‘자뻑’할 우려가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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