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 복위 사건

단종 복위 사건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1456년 6월1일 단종 복위 거사는 실패로 끝났다. 성삼문·박팽년·이개·김문기 등은 명나라 사신 환송연에서 성승과 유응부·박쟁이 별운검(임금 호위 무신)이 된 것을 기회로 세조를 죽이기로 했다.

그런데 별운검이 취소되자 의견이 엇갈렸다. 유응부는 누설을 염려하여 그대로 진행하자고 했고, 성삼문과 박팽년은 ‘별운검을 세우지 않고 세자가 오지 않은 것은 하늘의 뜻이니 연기하자’고 했다. 결국 성삼문·박팽년의 의견대로 거사는 연기되었고 유응부의 우려대로 내부밀고자가 생겼다.

김질이 장인 정창손과 같이 세조에게 밀고한 것이다. 세조는 성삼문·박팽년 등을 사정전에서 심문하였고, 6월8일에 군기감(지금의 서울시청)앞에서 사지를 찢었다.

처형을 지켜본 생육신 김시습은 성삼문·박팽년·유응부·성승 등 다섯 시신을 수습해 노량진에 묻고 작은 돌을 묘표로 썼다.

그런데 사육신이 충절의 아이콘이 된 것은 생육신 남효온(1454∼1492)이 지은 ‘육신전(六臣傳)’에 기인한다. 그는 1489년에 고향 의령에서 박팽년·성삼문·하위지·이개·유성원·유응부의 충절을 기리는 ‘육신전’을 집필했는데, 1498년 무오사화의 희생자인 사관 김일손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1490년 가을에 남효온은 김일손과 함께 삼각산 중흥사에서 김시습을 만났다. 세 사람은 백운대에 올랐으며 닷새 동안 같이 지냈다. 단종과 육신에 대하여도 이야기 했으리라.

세조가 교서에서 ‘후세의 충신’이라고 한 사육신은 인종 원년(1545년)에 비로소 실록에 나타났다. 시강관 한주가 조강에서 ‘육신은 대죄를 입어 마땅하나 본심은 충의’라고 한 것이다. 1576년에는 박계현이 경연에서 선조에게 성삼문은 충신이라면서 ‘육신전’을 읽으라고 말했다. 책을 읽은 선조는 세조를 욕했으니 책을 모두 불태우라고 했는데 겨우 진정됐다. 이 와중에 백호 임제는 정치소설 ‘원생몽유록’을 지었다.

한편 숙종은 1681년에 노산군으로 강봉된 단종의 신원을 노산대군으로 추봉하였고, 영월 단종 묘에 치제하였다. 1685년에는 단종 묘 근처에 성삼문 등 육신을 기리는 육신사(六臣祠)가 세워졌다. 1691년에 숙종은 육신을 복작하고 노량진에 민절서원을 세웠다.

또한 숙종은 1703년에 육신사에 ‘창절(彰節)’을 사액하였다. 창절은 충신의 절개를 기린다는 의미이다. 창절사는 1788년에 서원으로 승격되었고, 1791년(정조 15)에는 김시습과 남효온이, 1828년(순조 28)에는 박심문(1408∼1456), 1833년에는 엄흥도가 추가로 배향되었다.

김시습과 남효온, 그리고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엄흥도가 창절서원에 배향된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런데 박심문은 왜 이곳에 배향되었을까?

박심문은 김종서의 종사관으로 육진개척을 한 사람으로 1453년 계유정난으로 김종서가 살해당하고 1455년에 세조가 즉위하자 성삼문·하위지 등과 왕래하면서 단종복위를 도모했다. 1456년에 그는 질정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오다가 의주에 이르러 성삼문 등 70여명이 처형당한 소식을 듣고 순절했다. 그는 병사(病死)로 위장하면서 자손들에게 피신하여 살도록 유언했다. 이리하여 박심문 자손들은 전라도 해남·진도에서 살았다.

1804년(순조 5년)에 순조는 박심문이 ‘곧은 충절은 사육신 못지않다(貞忠苦節 不下六臣)’하여 이조참판에 증직했다. 1871년(고종 8년)에는 충정(忠貞)시호를 받았다.

한편 70명 이상이 순절한 단종복위사건은 ‘사육신 사건’ 또는 ‘사육신의 단종복위운동’으로 각인되었다. 이러자 웃을 수 없는 일이 생겼다. 노량진 ‘사육신 공원’은 김문기가 추가되어 의절사 사당에 위패가 7개이고, 묘도 7개로 ‘사칠신 공원’이 된 것이다.

이는 1978년에 서울특별시가 사육신 묘역을 확장하면서 국사편찬위원회의 어정쩡한 결정 때문에 김문기가 합류되었기 때문이다. 원래 이조판서 김문기는 1791년에 정조가 장릉 배식단 정단에 모신 32명 중 3중신(三重臣)이었다. 정단 32명은 6종영, 4외척, 3상신, 양운검, 3중신, 사육신 그리고 허조·엄흥도 등이다.

요컨대 단종복위사건은 70여명이 관련되었다. 이제 사육신 못지않게 다른 이들도 현창되어야 한다. 사육신 공원에 ‘70인 단종 복위 충절비’를 세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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