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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125>-제8장 의주행재소, 회한의 땅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

충무공 정충신 장군<125>-제8장 의주행재소, 회한의 땅

이안사 함대가 동해바다를 거슬러 올라가는 도중 몇 군데 고을에 머물다가 이윽고 함경도 영흥에 당도했다. 영흥은 이안사와 친교를 맺고있던 원나라 장수가 점령하고 있었다. 원나라 영토가 된 영흥에서 이성계의 부친 이자춘이 고위 벼슬에 오르고, 이성계도 원나라 군인이 되었다. 얼마후 고려가 원을 몰아내고 함경도를 탈환하자 이성계는 고려 원적을 회복해 최영장군과 함께 오랑캐를 무찌르고, 왜구 토벌에 나섰다. 그러나 함경도 변방 출신이란 성분 때문에 최영보다 큰 전과를 세우고도 인사발령 때 보면 늘 최영의 밑에 깔렸다.

“못된 놈들, 사람을 가지고 놀아. 정지 도원수도 필시 나와 똑같은 신세가 되고 말 걸세. 관음포 전투에서 왜선 수십 척을 수장시킨 정 장군의 용맹을 세상은 알지. 순천 해남 흥양 영광 앞바다에서 왜선을 보는 족족 종이쪽지 구겨버리듯 하지 않았나. 그 무공으로 말하면 정 장군이 여기 위화도에 찌그러져 있어야 할 인물이 아니란 말일세. 먼 남쪽 사람이라고 홀대한 거야. 정 장수, 확 엎어버려야 하지 않가소?”

이성계의 술주정은 그렇다 하더라도 무서운 말을 대놓고 하는 것이 정지는 의아했다.

“이 우군도통사, 어째서 나한테 그런 말을 하시오. 내가 밀고라도 하면 어떡하실려고?”

“정 도원수는 본시 사려깊고 덕이 있는 사람 아닌가. 내가 사람을 볼 줄 알지. 생각해보란 말이다. 요동정벌을 한다고 하지만, 이 우중에 사지로 가란 뜻이 아닌가. 그런 가운데서도 공로가 나오면 최영이 가로채버린단 말일세. 우리는 껍데기일 뿐이야. 나는 그런 들러리는 더이상 서고 싶지 않아.”

“그러면 어떡하시게요?”

“확 엎어버리자니까!”

“사사로운 감정으로 사물을 보면 안되지요. 지금 명군이 침략해오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그들을 밀어붙인다고 해결되나? 대국인데. 대국은 대국으로 모셔야지. 그리고 지금 대홍수(1388년 음력 5월 중순)로 압록강의 물이 불어나 건너기가 어렵다. 병사들을 압록강에 수장시킬 일 있나? 그래서 조민수 좌군도통수와 상의하여 거사하기로 했다.”

“거사 명분이 뭔데요?”

“현실적인 문제부터 말하지. △작은 나라로 큰 나라를 거스르는 것은 옳지 않다(以小逆大) △여름철에 군사를 동원하는 것은 옳지 않다(夏月發兵) △온 나라의 병사를 동원해 원정을 하면 왜적이 그 허술한 틈을 타서 침범할 염려가 있다(擧國遠征, 倭乘其虛) △무덥고 비가 많이 오는 시기이므로 활의 아교가 풀어지고 병사들도 전염병에 시달릴 염려가 있다(時方暑雨, 弓弩膠解, 大軍疾疫)는 ‘4불가론’을 외치며 궁궐로 쳐들어가는 것이야.”

“비가 와서 안된다, 눈이 와서 안된다, 바람이 불어서 안된다, 몸이 아파서 안된다, 그러면 언제 출병하는 겁니까. 명분이 약합니다.”

“그 말 잘했다. 시방 개경의 부패와 무능과 음욕이 안보이는가. 지금 서경(평양)에 와있는 우왕과 최영은 계속 진군하라고 독려하는데, 현장 상황도 모르는 새끼들이 무얼 안다고 밀어붙이라는 거야? 지들은 배때지 따뜻하게 쳐먹고 자빠져 놀고 있으니까 현장도 따뜻하게 쳐먹고 지내는 줄 아는가 보지? 왕실의 무능과 음욕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되지. 까부숴야지.”

“우군도통수 취했습니까?”

“안취했으니까 하는 말일세. 내 목숨 아까운 건 나도 알아. 하지만 무인의 목숨은 초로(草露)와 같은 것, 유용하게 써먹고 사라지면 그것으로 족하지, 무슨 희원(希願)이 있겠는가. 인생은 나그네길이요, 또 굳이 말하면 복궐복 아닌가.”

“그래서 전라도 말로 뽀사부리자는 겁니까.”

“그렇지. 조민수 좌군도통수와 함께 말이다. 정 도원수도 합류하라.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그대는 이제 내 사람이야. 거역한다고 해도 모두들 나와 함께 의주로 나왔다고 소문이 났으니 내 사람으로 알 것이고, 나와 모의한 것으로 알 것이다. 아니라고 하면 배신자 말을 들을 것이고. 또 만약 거절할 적시면 누구 칼을 받을지 모르지.”

“겁박하는 겁니까?”

“내가 정 도원수를 사랑해서 하는 말이지. 정 도원수는 꿈에도 그리는 내 본향의 막내 아우뻘 아닌가. 조정은 썩지 않은 곳이 없으니 판을 갈아엎어버려야지. 바로잡지 않으면 적에게 잡아먹힐 거야. 그러기 전에 우리가 조국을 건져야지.”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경태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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