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

충무공 정충신 장군<134> 제8장 의주행재소, 회한의 땅

“상감마마, 권율장군과 홍의장군, 고경명 장군이 행한 유격전술은 조선의 지형지세에 딱 맞는 전법이옵니다. 단기필마로 적진에 돌진하거나 위장ㆍ매복전술 병법으로 적을 교란하는 것이옵니다. 병기와 훈련에서 열세일 수밖에 없었던 우리 병사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의 전술이었나이다. 이런 전법이 나날이 개발되고, 그 숫자도 불어나고 있나이다. 강을 건너지 않아도 마음을 놓으실 수 있나이다. 전하께옵서 조국산하에 계시기만 하다면 천수만수 수를 누리실 것이오며, 백성들은 용기백배할 것이옵니다.”

“너의 용맹이 어떤 장수보다 압도하도다. 왕세자 또한 그렇게 지혜롭고 총명하지.”

왕은 어느새 자기 아들과 정충신을 비교하고 있었다. 무엇이든지 비교하면서 왕은 자신이 우월하다는 점을 과시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쓸쓸해진 자기 위치를 위안삼는지 모르겠다. 왕이 물었다.

“조선의 지형지세는 산과 골짜기, 냇물이 격하고 험하지. 그런 땅을 우리가 더 잘 안다고 하렸다?”

“네이, 누천 년을 살아왔으니 당연히 그렇사옵니다. 지리(地利)를 얻었으면 백만 대군을 얻은 것이나 진 배 없나이다. 그리고 그에 합당한 진용을 짜는 것이 우리 특유의 필살법이 되는 것이옵니다.”

“거기에 적재적소에 군사를 투입하면 된다?”

“그렇사옵니다. 이순신 전라좌수사의 인력자원 배치가 그 대표적 사례이옵니다.”

이순신은 순천 낙양 흥양 보성 광양 사또들을 모아 병사를 모으고, 출전에 따르는 지휘자 배치를 촘촘하게 짰다. 중위장에 방답 첨사 이순신(동명이인), 좌부장에 낙안군수 신호, 전부장 흥양현감 배홍립, 중부장 광양현감 어영담, 유군장 발포만호 나대용, 우부장 보성군수 김득광, 후부장 녹도만호 정운, 좌 척후장 여도 권관 김인영, 우 척후장 사도 첨사 김완, 한후장 군관 최대성, 참퇴장 군관 배응록, 골격장 군관 이언량..., 이렇게 편성한 군 조직을 각자 적성에 맞게 임무를 부여했다. 즉, 물길에 밝은 전라도 해안을 섬 출신들로 진용을 짜니 바다는 마치 자기 집 안마당이 되는 것이다.

경상우수사 원균은 준비없는 안이한 대처로 방일(放逸)하다가 대규모 왜의 진격에 놀라 배를 가라앉히고 병기를 파괴한 뒤 부랴부랴 육지로 도주했다. 평소 군사 훈련과 운영 기초에 충실하지 않은 데서 자초한 화였다.

조선의 하삼도(下三道), 즉 경상·전라·충청도에는 경상좌·우수영, 전라좌·우수영, 충청수영 등 5개의 수영이 있는데, 이중 최대의 병력과 전력을 갖춘 수영이 바로 경상우수영이다. 5개 수영 중 제일 규모가 큰 전력을 갖춘 수장이 군졸에 대한 훈련 지휘 계획 없이 사람좋게 놀고만 있다가 졸지에 당해버린 것이다.

전투 한번 치르지 못하고 함대를 해산하고 도주해버렸으므로 경상우수영 관할 옥포만호 이운룡이 이순신에게 달려가 숨넘어가는 목소리로 외쳤다.

“장군! 우리는 다 죽었소이다. 어서 출병하여 나머지라도 살려주시옵소서!”

각 수영은 본래 관할구역을 벗어날 수 없도록 군율로써 규제되어 있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순신은 조정에 장계를 올림과 동시에 이억기 전라우수사와 연합전선을 펴기로 하고 먼저 옥포 앞바다로 출진했다. 이것도 추후 영을 거역하고 멋대로 출진했다고 해서 꼬투리를 잡히는 일이 되었으나 위기에 처했다는 현장판단으로 그는 일단 나간 것이다.

이순신은 이억기 전라우수영 수군이 일기불순으로 합류가 늦어지면서 녹도만호 정운과, 군관 송희립을 내세워 왜의 해상진출로를 막았다. 전라좌수영의 판옥선 20여척과, 경상우수영에서 깨지고 박살난 것을 제외한 판옥선 3척의 함대를 수습하여 5월7일 옥포해전을 시작으로 합포, 적진포에 나서 42척의 적선을 수장시켰다.

5월말-6월초 제2차 출진에서는 비장해두었던 귀선(龜船:거북선)을 내보내니 사천 앞바다가 귀선의 독무대가 되었다. 왜장 구루지마 미치유키가 이끄는 왜 함대 13척이 여지없이 박살이 났다. 귀선의 첫 출진과 첫 승전보는 모든 아군의 사기를 드높이는 기폭제였다.

“와-, 우리에게 저런 무서운 병선(兵船)이 있다!”

호랑이 상의 입주둥이에 감춰진 포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뿌연 연기와 뻥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포탄은 명중 여부에 상관없이 그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 아군은 사기충천했고, 적은 기가 죽어 무너져버렸다. 실제로 적선의 옆구리나 갑판에 포탄이 떨어져 적선은 개박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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