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휴가

최유정(동화작가)

몇 년 전부터일까? 방학이어도 각기 일정 때문에 한데 모이기 힘들었다. 한데 모이더라도 예전 같지 않게 데면데면한 분위기가 느껴지곤 했다. 스물넷과 스무 살의 아이들을 키우며 갖게 되는 소통의 부재! 나는 아이들과 공유하지 못하는 시간과 공간이 낯설고 싫었다. 지금 느끼는 아이들과의 거리감이 평생 관계의 부담감으로 작동될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역시 갖게 됐다. 어찌되었건 나는 올 여름, 우리 아이들과 더 가까워지고 더 친해지고 싶었다. 나는 아들과 딸 그리고 남편에게 휴가지를 선택할 권리를 내게 달라고 정중히 요청했다 다들 쾌히 승낙을 했다. 실은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있어서인지 모두 대충, 대강 승낙 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선택된 휴가지가 ‘수영장’이다. 식구 중 제대로 수영 할 줄 아는 이가 단 한 명도 없는데 굳이 ‘수영장’으로 여름 휴가지를 선택한 이유는 딱 하나였다. 한 공간에서 부대낄 수 있는 매우 적절한 장소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이 결정에는 아이들 어릴 적, 낄낄되며 함께 놀았던 추억이 한 몫을 했다. 딸아이는 50대 늙은 부모와 달걀 10개만 달랑 삶아 동네 수영장에 놀러 가는 것이 영 내키지 않는지 수영장 가는 차안에서 내내 툴툴거렸다. 왜 하필 수영장이냐며 몇 번을 물었다. 나는 툴툴거리는 딸에게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반복했다.

“아침부터 문 닫을 때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하루였다.

사실 내가 아이들과 하고 싶은 것은 ‘마주보기’였다. 내가 바로 옆에 있으며 그 누구보다도 저희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내 위치와 내 감정을 말이 아닌 몸으로 표현하는 것으로부터 나는 아이들과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그것이 아이들과 더 잘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소통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 이라 나와 있다. 굳이 사전에서 찾아보지 않더라도 소통이라는 행위가 쌍방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일방적이라는 단어와 소통이라는 단어는 절대 양립할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그러함에도 우리는 같은 공간 또는 같은 시간에서 호흡해야 가능한 소통을 너무 등한시 하고 있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을 배제한 가상의 공간, 이를테면 SNS 같은 기계를 사이에 두고 하는 관계에 너무 익숙해진 탓이다. 이런 간편한 의사표현 방법에만 집착하다 보니 전달하거나 지시하는 것 이상의 의사표현은 거의 불가능해지고 있다. 물론 언어 혹은 비언어적 표현을 통해 마음의 상태나 반응을 나타낼 수는 있겠지만 우리는 이것을 두고 진정한 소통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진정한 소통이란 소통을 마친 후, 서로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음은 말이나 행동이 주는 느낌, 표정, 체온등을 통해 드러난다. 다시 말해 우리는 말이나 행동, 표정, 체온등을 통해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가상의 시, 공간, 기계를 사이에 두고 이루어지는 관계에서는 사실 쌍방의 마음을 적극적,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힘들다. 상대의 체온을 느낄 수 없고 표정을 볼 수 없으며 말투나 행동이 주는 느낌을 통해 상대의 마음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감성소통의 괴리가 발생하게 되는데 감성소통을 전제로 하지 않는 소통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소통이 아니다. 마음이 통하는 관계가 진정한 관계이며 마음이 통하는 소통이 진정한 소통이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스물 넷, 스무 살이 된 아이들과 함께 보낸 이번 ‘하루휴가’ 는 무척 행복했다. 물어보지 않아 자신할 수는 없지만 아이들도 많이 행복해했다. 그중 딸이 제일 많이 행복해했다. 내 물 먹은 모습을 흉내 내며 딸이 제일 많이 깔깔거렸으니까 말이다. 물속이긴 하지만 나는 실로 몇 년 만에 딸의 다 큰 몸을 안아 보기도 했다. 이렇게 성장했구나, 싶은 마음에 나는 순간 울컥했다. 딸과 나는 서로를 껴안고 물속에서 팔딱팔딱, 껑충껑충 뛰었다. 아들과 아버지는 물속에서 달리기 시합을 했다. 내가 본 달리기 시합 중 가장 위대한 달리기 시합이었는데 혼자 보기 정말, 아까웠다.

이번 ‘마주보기’는 대체로 성공적이었다. 적어도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에서 몸으로 부대끼며 경험을 공유하고 함께 느꼈으니 말이다. 즐겁고 행복한 마음을 함께 나누고 확인했으니 말이다. 물론 이 단계에서 더 나아가야 하고 더 많이 서로를 공감하고 이해해야겠지만 다시 또 한 발을 떼었으니 앞으로의 소통에도 그리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꼰대가 아닌 저희들의 친구로 영원히 살고 싶은 제 엄마의 욕망 또한 아이들은 이번 기회에 어느 정도 이해했을 것이다. 정말, 정말 의미 있었던 여름휴가! 2018년 여름을 행복하게,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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