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단체장 칼럼

이웃이 있는 마을

<임택 광주 동구청장>

40도를 육박하는 날씨가 근 한 달째 이어지고 있다. 이 정도면 거의 재난 수준이다. 근년 들어 지구온난화에 따른 이상기후 징후가 잦아지는가 싶더니 올해를 기점으로 ‘폭염의 일상화’라 부를 만큼 심각한 지경이 됐다. 에어컨이 없어서는 안 될 생필품으로 자리 잡았다고 하니 부채와 선풍기로 버티던 여름은 벌써 고릿적 시절이 된 듯싶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경기침체에 비하면 무더위는 그나마 양반이다. 사상 최악의 청년실업과 자영업자 대량폐업이 겹치며 일자리가 말라붙었다. 경기가 회복될 조짐을 보이지 않으면서 민생경제는 아우성이다. 지속적인 경기침체는 그 회복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닥쳐올 미래가 더욱 불안하다.

필자는 요즘 무한경쟁시대의 ‘위험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무엇인지 답을 찾고 있다. 마을이라는 관계망이 있던 시절에는 공동체의 울타리 속에 서로가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었다. 지금 같은 여름이면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수박 몇 통 썰고 찐 감자와 옥수수를 나눠먹으며 서로의 안부를 챙겼다. 청년들이 개울에서 천렵이라도 해오는 날이면 텃밭에 있는 채소와 수제비를 듬뿍 넣고 한 솥 끓인 어죽으로 복달임을 하곤 했다. 가난한 사람도 몸이 아픈 사람도 호혜적인 마을의 보살핌 속에서 안온한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심화되면서 사람들은 전통적인 대가족사회에서 핵가족사회로 다시 1인가구로 분화되어 외톨이의 삶을 살게 됐다. 그 와중에 공동체 울타리는 급속한 해체를 맞았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듣는 고독사와 같은 우울한 소식과 여성·소수자 혐오 등의 극단적인 공격성이 모두 이 같은 사회흐름에서 파생된 산물이라고 한다.

최근에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의 ‘다시 마을이다’라는 책을 감명 깊게 읽었다. 조금 길지만 한 구절을 인용해 보겠다.

“후기 근대적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경비원이 있는 성벽을 두른 아파트가 아니라 마을이고, 소비를 과시하기 위한 이웃이 아니라 상호 호혜적 관계를 맺어가는 이웃의 형성이다. 노인들이 골목길 이곳저곳에 모여 아이들이 뛰노는 것을 보고 있고, 수시로 물물교환이 이루어지고, 서로가 잘 알기에 함께 있음으로 안전한 마을, 사람들이 자주 이사를 가지 않고 가게도 자주 망하지 않아 단골이 되는 그런 마을이 후기 근대적 주거의 핵심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갈수록 각박해져가는 세상에서 과연 이게 가능할까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웃이 있는 마을’로 회귀해야 한다는 주장은 우리 모두가 잊고 살았던 공동체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우리 동구는 다른 지자체에 비해 인구수도 적고 재정력도 약하다. 그렇지만 원형을 간직한 자연마을 주민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고, 이웃들이 정을 나누는 골목길 문화의 정취가 여전하다. 필자가 민선7기 동구 슬로건을 ‘이웃이 있는 마을’로 정한 이유도 다르지 않다. 도시열섬, 미세먼지, 주차교통난, 쓰레기투기…. 도시살이가 더 이상 숨 막히는 지옥이어서는 안 된다. 누구나 살고 싶고 지역민이 행복한 도시환경을 위해서는 이웃과 마을, 따뜻한 공동체정신을 서둘러 복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앞으로 동구는 주민들이 모이고 교류하는 작은도서관, 마을사랑방, 경로당, 커뮤니티센터 등의 공동공간이 주민들 손으로 꾸려질 수 있도록 물심양면 지원할 방침이다. 청년들이 구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청년재정할당제를 시행하고 골목상권에 힘이 되는 정책을 실행해나갈 계획이다. 마을마다 복지거점센터를 운영해 특성에 맞는 복지사업을 펼치고 청년과 어르신이 더불어 일하는 마을일자리 정책을 추진하고자 한다. 이 모두를 위해 과거의 권위적이고 수직적인 리더십을 내려놓고 공직자와 주민들의 잠재적인 역량을 발전 동력으로 이끌어내려고 한다. 주민들의 참여를 뒷받침하는 협치 기반을 만들어 주민중심 구정운영의 새 장을 열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사람들이 동구의 경쟁력은 무엇이냐고 물으면 필자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이웃과 이웃이 따뜻한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행복한 마을들이 바로 동구의 경쟁력입니다”라고 말이다. ‘이웃이 있는 마을’ 동구의 변화를 지역민들께서도 애정의 눈으로 지켜봐 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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