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당 텃세에 갈 곳 잃은 노인들

무더위쉼터 대부분 경로당 위주로 선정돼

회원제로 운영되는 탓에 비회원 이용 배제

노인 간 갈등 커·새 쉼터 지정 필요성 제기

연일 이어지는 폭염에 어르신과 취약계층을 위한 무더위 쉼터가 늘어나면서 각광을 받고 있다. 사진은 9일 오전 무더위 쉼터로 지정된 광주 동구노인종합복지관에서 어르신들이 무더위를 피해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
/정유진 기자 jin1@namdonews.com
9일 오전 광주 동구 동심경로당. 연일 계속되는 찜통더위를 피하기 위한 노인들이 경로당에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이들은 에어컨과 선풍기 바람을 쐬면서 티비를 보거나 이야기를 나누며 휴식을 취했다. 어르신들은 도보로 5분 이내 거리에 살고 있어서 아침 일찍 경로당을 찾았다가 해가 질 때까지 하루종일 쉬었다가 가는 경우가 많았다. 점심시간이 되자 상을 펴고 앉은 어르신들은 복지시설에서 제공되는 밥과 국을 서로에게 권하기도 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식사를 했다. 함종환(84) 할아버지는 “요즘 날씨가 부쩍 더워져서 집에 있으면 덥고, 할 일 없이 무료하게 보내는 경우가 많다”며 “경로당이 무더위 쉼터로 지정돼 시원한 에어컨 바람도 쐬면서 친구들과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무더위 쉼터로 지정된 동구노인종합복지관 역시 40여명이 넘는 어르신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숨 막힐 듯 후텁지근한 바깥과 달리 실내는 사방에서 나오는 시원한 에어컨과 선풍기 바람에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동구노인종합복지관 로비와 3층에 마련된 휴게실에는 점심식사를 마친 뒤 쉬고 있는 어르신들로 가득했다. 어르신들은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신문을 보거나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휴게실에 누워 낮잠을 자거나 화투를 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처럼 최근 무더위가 극성을 부리면서 노인들에게 ‘무더위 쉼터’는 새로운 활력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문제는 무더위 쉼터가 경로당 등 특정 장소에 치우치면서 일부 노인들이 소외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광주지역 무더위 쉼터 지정 장소 1천287곳 가운데 경로당이 차지하는 비율은 90%(1천166곳)에 달하는 실정이다. 지역 경로당 대부분은 유료 회원들만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로당을 운영하는데 비용이 들어가는 만큼 회비를 낸 노인들만 이용할 수 있도록 내부적으로 암묵적 합의가 이뤄진 탓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경제적으로 어려워 회비를 낼 수 없는 노인들은 사실상 경로당 이용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박경순(73·여) 할머니는 “집 근처 경로당이 있긴 하지만 복지관이 훨씬 시설이 좋고 쾌적해서 자주 찾고 있다”며 “경로당은 회원들 위주인 경우가 많아서 함께 어울리기도 불편하다”고 말했다.

이에 일각에선 새로운 쉼터 공간을 개발, 지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40여년 넘게 한 동네에서 살아온 어르신들이 낯선 사람들을 경계하고 어울리는 것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며 “쉼터로 지정된 곳 대부분이 기존에 이용하는 사람들만 이용하고 있는 현실이어서 경로당이 아닌 장소를 무더위 쉼터로 지정해 달라는 요청이 많다”고 밝혔다.


/정유진 기자 jin1@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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