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149> 9장 다시 광주

“절에 가면 다 머리 깎냐?”

“그것은 아니겄제만, 왜 하필이면 절이냐고요.”

“지금 의승군 밥해줄 것이다.”

“의승군들 밥해주는 디다 쳐박아두었다고라우?”

“신경 꺼부러. 그 여자는 복수 전사가 되었승개.”

“복수 전사가 뭐간디요?”

정충신은 갈수록 궁금했다.

“그 여자는 너도 알다시피 자기 시아버지, 남편이 왜군 놈들한티 칼맞아 죽었다. 곡식과 소도 빼앗기고 말이여. 그래서 원수를 갚는다고 절로 들어갔당개. 자기 몸을 유린한 놈은 반드시 찾아내서 배때지에 칼을 꽂고 눈을 감겠다고 했어. 그것이 복수 전사여. 그런 여자를 어떻게 욕심부리고 내 여자로 맹글겄냐. 지 갈 길 가도록 도와주는 것이 사나이 도리제. 그 여자, 조백이 있어. 그래서 조백이 엄니라고 하덩만. 그 아들 조백이도 난리통에 행불이 됐거나 죽었는개비여. 그렇게 가문이 무너져버린 것인디, 아무리 약한 여자라도 비민하겄냐(어련하겠냐)? 조백이 엄니가 가는 길이 옳은 길이니 인도해주고 왔던 것이여. 난리가 별놈의 집을 다 망쳐분디, 아낙인들 침묵하겠냐고! 그 아낙이 없어진 자기 아들 얘기 할 때는 눈이 하얗게 까뒤집히더라고. 그 꼴 못보주겠더랑개. 처지가 그란디 안됐대. 어떤 여잔들 그럴 때는 한 성질 안하겄냐. 그렁개 복수전사가 되겄다고 나섰던 것이제.”

“알겠습니다. 오죽했으면 그랬을랍디여. 불쌍하요야. 인연이 되면 언젠가는 만나지겄지요. 어쨌거나 성님 보니 무자게 반갑소야.”

“나도 그럼성 불러. 너하고는 언젠가는 만날 인연이라고 생각했제. 편안하게 우리 전라도 말로 회포를 풀 날이 올 것이라고 믿었당개. 한디 니가 한두 달 새 좀 사람이 무거워보인다? 그럴 듯 하당개. 철갑두른 무거운 전복 땀시 그런가? 권위가 있어분단 말이시.”

“좀 조신한 디 있었디말로 그렇게 된 것 같소. 저자거리의 언어하고 조신한 디 언어가 다르더란 말이요.”

“그럼 너 대궐에 갔다 온 거 아니여? 지금은 행궁이겠고만. 나가 눈치는 좀 있단 말이시. 안그냐.”

“난중에 이약 합시다.”

그는 사실대로 터놓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다 까발릴 수는 없는 것이 있었다. 내밀한 것은 끝까지 내밀해야 한다.

“하긴 너는 배포있는 소년잉개. 아매 왕 앞에서도 꿇릴 자가 아니었을 거여. 너는 상이 괜찮은 상이여. 애초에 물건이 될 것이라고 보았어. 야망이 있는 눈과 시원한 이마를 보면 나도 모르게 빨려드는 것 같았어.”

“고맙습니다. 성님 얘기 들읍시다. 성님은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소?”

“나는 짐승들과 더불어 지냈네.”

“나도 백두산 호랑이, 멧돼지를 봤지라우.”

“짐승이란 꼭 산짐승만 말하는 것이 아니여.”

“그럼 들짐승을 말하는 것이요?”세상천지에 널려있는 것이 짐승이여. 왜놈 짐승도 있고, 명군 짐승들도 있제마는, 조정의 대간들이라는 잡놈에 짐승들이 있제.“

“성님은 어째서 만나기만 하면 대간들 욕이요? 들킬깨미 나가 죽을 지경이요.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단 말이요. 조정신료들한티 걸리면 약도 없는디... 그들이 계집도 사내라고 우기면 사내가 된다고 안합디여.”

“좌우지간 고것들이 개새끼들이다. 송강이란 놈, 송익필이란 놈, 이런 놈을 때려잡아야 하는디 못했어. 이 새끼들의 음모로 대동계가 날조되었어. 처참한 옥사를 만들어냈당개. 스승님이 조직한 대동계가 비밀조직이 아니라 전주감영의 요청에 따라 왜구 토벌에도 나섰던 공조직이란 것 천하가 다 아는 일 아니냐. 그란디 쓸어버렸어. 벼모가지 자르듯 싸그리 잘라버렸어. 정권을 주도하고 있던 동인 세력이 스스로 모반을 할 이유도 없잖냐.”

그는 모르는 말을 분이 난 목소리로 읊조리고 막걸리를 바가지째 퍼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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