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150> 9장 다시 광주
길삼봉은 무슨 원한이 그렇게 많은지 관솔불빛에 어리는 눈빛이 복수심으로 이글거렸다. 정충신이 길삼봉을 보며 말했다.
"나는 그런 권력의 깊은 속은 모르요. 궁궐은 구중심처, 구곡간장이라고 안합디여."
그러자 길삼봉이 엉뚱한 얘기를 했다.
"나가 그놈들을 쌔려잡을라고 황해도를 주유했느니라."
"황해도 주유요? 쌔려잡을 놈들이 누구간디요?"
"그자들이 스승님을 고변했거든. 황해감사 한준, 안악군수 이축, 재령군수 박충간이 스승님이 반란을 꾀하고 있다고 임금님께 고자질했단 말이여. 스승님은 정쟁에 휘말리는 것에 환멸을 느끼고, 고향 전주로 내려가 진안 죽도에 서실을 짓고 강론을 하며 대동계를 조직했제. 젊은이들을 훈련시키며 호연지기를 길러주셨제. 그때 나는 교관이었어. 예전부터 세도와 쇠푼을 가진 자들은 자기 사저에 사병을 수십 명, 수백 명씩 두고 있었잖여. 그란디 우리만 모함으로 당해부렀제. 대동계원들은 전주부윤의 요청을 받아 전라도 해안에 침입한 왜구를 격퇴하기도 했어(1587년). 왜구를 섬멸한 애국적인 결사체랑개. 그란디 한준, 이축, 박충간이란 자들이 변란을 꾀한다고 고변했단 말이시."
"왜 하필이면 황해도 벼슬아치들이 전라도 결사체를 고변했을까요?"
"대동계에 인걸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었제. 스승님의 인격과 학문과 행동하는 양심이 출중항개 모여든 것이제. 그중 황해도 출신이 솔찬히 되얏어. 황해감사, 안악·재령군수의 횡포가 심항개 젊은이들이 들고 일어나자 이자들이 야들 뒤를 쫓응개 대동계로 숨어들었던 것이여. 스승님은 불의에 항거하는 젊은이들을 받아주었제. 황해도 수령들은 자기들 비행이 사방팔방에 알려질깨미 결사적으로 이들을 뒤쫓았고. 결국 대동계에 은신한 것을 알고 사람을 풀어서 체포해 국문한 뒤, 뽀사부린 것이제. 지네들 공명심 높이니라고 없는 죄상까지 만들어서 국가변란사범이라고 조정에 고변했던가비여. 왕은 스승님 체포령을 내리고 관군 수백 명을 보내서 죽도를 포위했는디, 그 과정에서 스승님이 죽었어. 스승님이 자결했다고 하지만 거짓말이여. 워낙에 몸이 좋은개로 수십 놈이 달려들어서 칼침을 놓아버린 것이제. 나는 자살을 안믿어. 대장부라 당당한 분이여."
"선생 죽음이 아리까리하요이?"
"그렁개 분하당개. 말 한마디 못하게 하고 조사부렀승개."
"무슨 일을 도모했길래 무참하게 죽였을까요잉."
길삼봉이 한숨을 쉰 다음 길게 얘기했다.
스승의 정치사상은 공화주의였다. 지역의 나뉨이 없고, 지위의 높고 낮음이 없이 더불어 살아간다는 대동사상은 얼핏 보면 왕권에 도전하는 정치이념으로 보일 수 있었다. "천하는 공공재니 특권자의 것이 아니라 만민의 것이다(天下公物說)는 이치와, 신분이 양반이건 상민이건 노비건, 남자건 여자건 어린아이건, 공히 평등하니 누구나 왕이 될 수 있고, 정승도 될 수 있다(何事非君論). 그런 철학을 담고 있으니 이상주의를 꿈꾸는 젊은이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틀린 말이 어느 한 구석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으나, 혈통에 근거한 왕위 계승의 절대성을 비판했으니 곧 반역이 되었다.
왕은 당색과 당쟁을 다스리는 기회로 대동계를 이용했다. 이들을 때려잡아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왕권을 과시했다. 무오·갑자·기묘·을사사화보다 더 많은 살육의 참화속으로 몰아넣으니 백성들은 겁먹고 숨죽일 수밖에 없었다. 
기축옥사는 송강 정철의 주도 아래 추국이 진행돼 이발 이길 백유양 백진민 조대중 유몽정 최여경 이황종 윤기신 이진길을 죽였다. 영의정 노수신과 좌의정 정언신 대제학 홍종록 등 동인의 핵심 인물들을 삭탈관직했다. 최영경을, 역모의 괴수로 몰린 길삼봉으로 몰아 죽였다. 
"그러니 나는 죽은 사람이여. 그렁개 활동하기가 좋단 말이시. 죽은 사람을 다시 찾을 일은 없승개."
정여립 사건과 관련된 체포작전은 3년간 계속되었는데, 이 기간동안 1,000여명이 죽거나 다쳤다. 호남의 인물 씨를 말렸고, 호남 출신의 관직 등용을 철저히 배제했다.
정철의 서인들은 이산해와 류성룡도 정여립 사건과 연루시켜 잡아들이려 했으나 서인 세력이 비대해지자 이번에는 선조가 정철을 건저(왕세자 책봉)사건에 연루시켜 숙청했다. 선조는  차도살인지계(借刀殺人之計)의 인사정책을 철저히 운용했다. 즉 남의 칼을 빌려 반대파를 제거하는 숙청기법을 썼다. 이렇게 몇차례 폭풍이 휩쓸자 나라의 기운은 병든 닭처럼 쇠해졌다. 온 나라가 집단 허무주의에 빠지니 새 떼가 쪼아도 나라가 넘어질 판이었다.
이때를 노려 왜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20만의 군대로 조선반도를 침공하니 불과 한달만에 삼천리 강토를 쓸어버렸다. 
"그자들이 고변하지 않았더라면 세상은 달라졌을까요?"
정충신이 묻자 길삼봉이 답했다.
"그것이 아니어도 망하게 되어있었지만 기축옥사가 불을 더 댕긴 것이제. 나라에 힘을 쏙 뽑아내버렸으니 어디서 용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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