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김성식(조선이공대학교 교수)

한 포털사이트 고민 게시판에 ‘결혼 전 아내의 동거’라는 글을 게시한 한 남자는 결혼정보 회사를 통해 결혼한 지 1년 된 아내가 결혼 전 전 남자친구와 무려 3년을 동거했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가치에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본인 스스로 ‘오픈 마인드’라 생각했지만 막상 이 사실을 알고 나니 아내의 과거가 용납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와 함께, 결혼 전 일을 가지고 너무 예민하게 군다고 오히려 화를 내는 아내와 갈등을 빚고 있다는 내용을 읽으며 뉴질랜드의 결혼문화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교환교수로 뉴질랜드에 머무르는 동안 우리와는 다른 그곳의 결혼문화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부부로 알고 있었는데 아내를 소개하며 자기 ‘파트너’라고 하였다. ‘와이프’라 소개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20년 넘게 살았지만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 않아 ‘파트너’로 부른다고 말했다. 뉴질랜드는 결혼한 관계에서는 ‘허즈밴드’나 ‘와이프’로 통칭하지만, ‘파트너’는 결혼 여부나 남녀, 동성커플에 상관없이 성중립적으로 사용하는 호칭이다.

뉴질랜드의 혼인은 대개 세 가지 형태의 파트너십 관계로 형성되어 있다. 여느 유럽국가와 마찬가지로 18살 이상이 되면 부모에게서 독립하여 남자와 여자친구 관계로 같이 사는 경우를 De fecto관계라 하며, 아직 결혼은 안 했지만 결혼한 것처럼 재산을 서로 같이 나누면서 사는 사이로 법적인 보장을 받는 사이가 Civil Union이며, 이렇게 살다 정식으로 결혼을 하면 법적 부부가 된다. 물론 정식으로 결혼한 사이가 아닐지라도 3년 이상 동거를 하게 되면 완벽한 법적 보호를 받게 되어 있다. 이러한 결혼제도는 세계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가진 나라답게 여성들이 더 적극적으로 원하고 있으며, 결혼 전 평균 세 사람 정도 만나 생활해 보고 결혼을 결정한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이성, 혹은 동성 커플이 계약을 통해 배우자 관계를 법적으로 인정받는 대안 결혼 제도인 팍스(PACS)가 있는데, 팍스 커플은 결혼한 부부와 동등한 수준의 사회 보장 제도와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굳이 팍스를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시민연대계약’이라 할 수 있는데 결혼보다 간소한 결합방식을 원하는 이성들에게 인기가 높은 편이다. 팍스로 파트너가 되면 배우자로서 법적 권리를 가지며 세금 공제나 건강보험료 등의 혜택을 누릴 수도 있지만, 결혼과 달리 간단한 서류 제출로 관계를 맺을 수도 끊을 수도 있다. 한 사람이 파기를 원할 땐 바로 효력이 상실되는 간편한 제도이다. 흥미로운 건 결혼한 부부의 3분의 1일 이혼을 하지만 팍스를 해지하는 비율은 10분의 1에 불과하고, 2017년 프랑스 전체 출생아 중 팍스나 동거 커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출생아의 59%나 된다고 한다. 프랑스 팍스는 결혼은 두 성인의 평등한 계약인 만큼 결합의 형태보다 상대의 진심이 더 중요한 본질이라고 믿는다.

우리나라도 많은 젊은 미혼남녀가 뉴질랜드의 Civil Union이나 프랑스의 PACS와 같은 ‘사실혼(동거)’을 보편적인 미래 결혼 형태로 생각하고 있다는 통계가 발표되었듯이 점차 전통적 결혼관에 대한 가치가 서구적인 형태로 변화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젊은 남녀들이 기존 혼인제도 외 필요한 제도로 ‘사실혼(동거) 등록제’(47%)와 ‘혼전 계약서 법적 효력 인정’(45.5%) 등을 원하고 있어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새로운 결혼 형태가 자리 잡아 갈 것으로 본다.

그러나 기성세대는 아직까지 그러한 변화에 대하여 터부시하고, 결혼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형편이다. ‘결혼 전 아내의 동거’에 대해서도 네티즌들은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연애 3년 하는 것과 동거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의견과 “3년 동거는 사실혼 관계나 마찬가지다. 사기결혼과 같다”는 의견으로 양분돼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제 중요한 것은 결혼제도의 변화가 아니라 변화하는 제도에 적응하고 이해하는 시각의 변화가 더 필요한 것 같다. 앞으로도 시대는 계속 변화되어질 텐데 기존의 가치에 얽매여 새로운 패러다임을 수용하지 못하게 되면 비혼자가 더 늘게 되고 출산율 또한 지금보다 더 낮아질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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