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175>제10장 의주로 가는 야망

이항복은 일견 정충신을 떠보고 있는 중이었다. 생각이 바르지 않으면 애초에 싹을 자르리라.

“대감마님, 난리를 겪으니 어디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 막상 모르겠나이다.”

“그렇지. 그러니 이럴 때는 사물을 단순하게 보아라. 진실은 복잡하지 않다. 간단명료한 것이다. 위선과 허위가 더 복잡하다. 알겠느냐?”

“알겠사옵니다.”

“상념이 복잡해지면 길을 찾기가 힘들다. 다시 말하거니와 진리는 간단명료한 데 있나니 복잡하게 생각할 것이 없다. 왜 왜란이 났는지를 간명하게 살펴보기 바란다.” 그리고 대답을 듣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이 대감이 화제를 돌려서 물었다. “너는 윤교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대감마님의 사위이시옵니다.”

“그렇지. 그렇게 보면 알게 되는 게 있느니라. 나의 사위라면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저의 자형이 되옵지요.”

“그렇다. 그렇게 간단히 생각하면, 우정이 어떻고 의리가 어떻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허나 내 너를 일찍 만났더라면...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이미 늦구나...”

이항복이 아쉽다는 듯 혼잣소리로 말하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먼 훗날의 어느 기록에는 정충신이 이항복의 사위라는 일부 구절이 있다. 이항복 대감이 그를 친 자식처럼 아끼고, 또 평소 사위로 두지 못한 아쉬운 감정 표현이 알게 모르게 그렇게 전래된 탓일 것이다.

정충신이 방으로 돌아와 이불을 펴고 누워서 이 대감과 나눈 대화를 되새기며 상념에 젖어 있는데 방문이 와락 열렸다.

“일어나!”

윤인옥 교리였다. 잘린 상투를 감출 요량으로 갓을 쓰긴 했는데, 두루마기까지 입은 차림으로 보아 외출할 행색이었다.

“나 인자 안싸울라요.”

“누가 싸우재? 일단 따라와.”

정충신이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었다.

“니가 내 목숨 살려줘서 한잔 사는 거다.”

윤인옥이 앞서고 정충신이 뒤따르는데 다다른 곳이 압록강변 주막이었다. 압록강은 벌써 강변이 얼기 시작했고, 강심은 으스스할만큼 물이 시퍼런데 파고마저 높았다. 강심으로부터 삭풍이 몰아쳐서 뺨이 얼얼했다.

“이런 때 압록강 메기매운탕이 속을 화끈하게 데운단 말이다.”

주막에는 명군(明軍) 졸개들이 방마다 꽉 들어차서 질퍽하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방이 넘치는지 차가운 마루에도 퍼져 앉아서 바가지째 술을 퍼마시고 있었다.

윤인옥이 뜰로 들어서자 작부가 뽀르르 나와 반색을 했다. 십대 말쯤 되는 여자였다.

“어머나, 서방님 오셨세요?”

남색 치마에 노랑색 저고리를 입은 품이 자태가 우아하고, 볼우물이 깊게 패인 것으로 보아 색주가에서 색깨나 쓰는 작부 같았다.

“왜 이렇게 복닥거리나?”

대답 대신 어린 작부가 술청 안으로 그들을 이끌었다. 술청의 한 곳에 자리가 하나 비어있었다.

“내 동생을 데리고 왔다. 앞으로 잘 모시기 바란다.”

윤인옥 곁에 붙어앉은 색시를 향해 윤인옥이 정충신을 눈으로 가리켰다.

“반가워요. 소청이에요.”

색시가 고개를 까딱해보였다.

“독한 밀주로다 반 말 가져와라. 술안주는 메기탕에 전에 먹던 것으루다 가져오고...”

윤인옥은 색주가에 익숙해보였고, 그래서 한량기가 넘쳐나 보였다.

소청이 나간 잠시 후 술과 함께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주먹만한 만두와 삶은 말고기가 먼저 들어왔다. 싸웠던 것을 까맣게 잊은 듯 윤인옥이 술동이에서 밀주를 가득 사발에 떠서 정충신 앞에 내밀었다.

“이거 두 잔이면 알딸딸하니 가버릴 걸?”

“또 술 가지고 내기하자고요?”

“하하하 두렵나?”

“인자 안할라요.”

그때 밖에서 에그머니나, 하고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어보니 명군 졸개 두 명이 소청의 옷소매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왜 나가 해? 다른 남자 만나면 나빠 해.”

어찌나 거칠게 다루는지 소청의 저고리 고름이 튿어져나갔다. 그래도 반항하자 한 놈이 더 거칠게 소매를 잡아챘다. 저고리가 반쯤 벗겨지고. 풍만한 그녀 유방이 드러났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명군 졸개들이 와크르 그릇 깨지는 소리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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