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화 광주대 교수의 남도일보 월요아침
듀나의 추억

듀나는 벼락처럼 왔다가 벼락처럼 갔다. 듀나가 우리와 함께 했던 시간은 겨우 일주일 남짓이었다. 같이 있던 시간은 짧았지만 추억은 오래 남아서 듀나의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추억이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려는 듯, 듀나의 잔상이 너무 강해서 오히려 고통스러웠다.

듀나는 우리 가족이 십 여년 만에 입양한 어린 아이다. 엄마 젖을 뗀지 겨우 두 달밖에 되지 않아서 모든 것이 여리고 사랑스러웠다. 연한 미색의 포멜라이언 암컷으로 외모에서 행동하나 하나까지 가족의 관심사였고 대화의 주제였다. 먹이를 먹는 모습에서 하품하는 모습까지 귀엽지 않은 것이 없어서 생명의 경이를 다시 보는 것 같았다.

집으로 데려오고 며칠이 지났을 때 저녁때 찬바람이 불었다. 갑자기 내려간 기온으로 거실에 냉기가 돌았지만 창문을 닫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하고 있던 일 때문에 일어나서 거실창문을 닫는 일이 번거로왔다.

“저렇게 털이 많은데 추위를 타겠어?”

듀나가 생후 2개월의 어린 아이라는 생각보다는, 털이 많은 강아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이틀인가 지나기 시작했을 때 듀나가 목에 무엇이 걸린 듯 캑캑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엇을 잘못 먹었다고 생각하고 등을 두드리기고 하고 가슴을 쓰다듬어주기도 했지만 차도가 없자 병원에 데리고 갔다.

“이맘때 흔히 있는 감기예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쉽게 나을 겁니다”

하지만 의사말대로 듀나의 감기는 쉽게 낫지 않았고, 병원에 다녀온 다음 다음날 오후 동물병원에 입원 시켰다. 그리고 그 다음날 새벽 듀나가 세상을 떠났다는 문자를 받았다. 아침에 듀나를 면회하려던 계획은 졸지에 듀나와의 마지막 이별로 바뀌었고, 병원에 도착해서 상자에 담겨 나온 듀나를 안으면서 아내는 눈물을 흘렸다.

“이게 뭐야. 예쁘게 하고 있어야지 이게 뭐야.”

깔끔한 성격의 아내는 듀나의 털을 예쁘게 쓰다듬어 주면서 오랫동안 눈물을 흘렸다.

듀나 생각이 날 때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던 저녁, 듀나가 털이 많은 아이니까 괜찮으리라는 내 편의적 생각이 한 생명을 떠나보냈다는 자책을 한다. 털이 많은 동물이 아니라 생후 두 달밖에 되지 않은 아이였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면, 듀나가 그렇게 허망하게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사태를 자의적으로 해석한다. ‘금방 일을 마치고 돌아오겠다’는 생각으로 2차선 사거리에 길을 막으면서 주차를 하고, ‘다들 그러는데’ 라는 합리화로 길게 늘어선 차들 사이로 새치기를 한다. 우리가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은 ‘그래도 괜찮을 것’이라는 무신경 때문이리라.

엘리베이터는 타는 순간 남들과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 공간에서 자신의 행동은 타인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큰소리로 얘기하거나, 전화를 하는 행동은 자제해야한다. 또 바쁘고 중요한 일이라고 해도 KTX 안에의 통화는 조용한 실내의 분위기를 망치는 일이니 객실 밖 통화가 상식이다. 괜찮겠지라는 편의적 생각이 주변을 힘들게 하는 일들이다.

괜찮을 것이라는 편의적 생각에 한 생명을 보낸 후, 이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들르게 되면 얼마 전부터 유독 강아지소리가 잘 들린다. 몇 번이고 뒤를 돌아다보면서 부러운 듯이 강아지들을 보고 있노라면, 강아지들을 안고 있는 주인들에게 맹렬한 분노와 질투를 느낀다. 아마 그 분노와 질투는 실은 나에게 대한 것이겠지만, 이러한 감정은 한동안 지속될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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