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194>
12장 지체와 문벌을 밟고 서다

“병판 대감 마님이 명군 접반사로 명받으셨다고요?”

정충신이 물었다.

“그렇다. 낙상지 장수가 이여송 제독에게 건의해서 접반사로 나를 초청하고, 나를 수행할 자로 너를 추천한 것이다.”“대감 마님, 이여송 제독을 잘 아십니까.”

“그의 조상이 우리 조선 출신 아니냐. 그는 성주 이씨로서 고려대의 문벌이로다. 그래서 우리를 도우러 명군을 이끌고 오신 것 아니냐. 고마운 분이다.”

“그것이 아닐 틴디요?”

이여송 조상이 조선 출신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러니 조선에 호의적일 것으로 조정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 가대의 신분을 감추고 있었다. 오로지 조선에 파병된 명나라 방해어왜총병관으로서 군림하였다.

이여송의 가대를 보면, 그는 고려 전객부령(고려시대 典客寺의 정4품 벼슬) 출신인 이천년의 7대손이다, 이천년의 동생 이조년은 고려 원종~충혜왕 때의 문신이었다. 권신 이인임도 그의 조상이다. 이여송의 6대조 이승경은 고려가 원나라로 병탄되었을 때 요양성 참정을 지냈고, 고려로 복귀해서는 문하시랑 평장사를 지냈다. 5대조인 이영이 모반사건에 연루돼 압록강을 건너 요동에 정착하여 이성량~이여송으로 이어진다. 이여송 아버지인 이성량은 명나라 요동총병으로서 큰 전공을 세워서 요동의 왕으로까지 불리었다. 이성량에게는 이여송 뿐 아니라 임진왜란과 사르후 전투에 참가한 이여백, 이여매 등 9명의 자식이 있었는데, 요동 사람들은 그들 일가를 이가구호장(李家九虎將, 이씨네 용맹한 아홉 장군)이라 불렀다(위키백과 등 자료 인용).

이여송 역시 가대에 힘입어 중국땅에서 승승장구했는데, 그는 이미 뼛속까지 중국인이었다. 그의 군사들도 일본군 못지 않게 조선 백성을 괴롭혔는데, 그는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방관했다. 4,3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원군으로 왔으면 보급계획을 수립해야 했는데, 전투식량을 모조리 조선에 맡기고 있었다. 전쟁으로 인해 농사를 짓지 못한 데다 흉년이 들이 기아와 질병으로 조선땅은 문자 그대로 피골이 상접해 있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명군마저 먹여살려야 하니 조선은 쓰러질 판이었다.

“전투식량을 조선 조정에 맡기면 그것이 용병이지, 뭡니까요.”

정충신이 불만을 터뜨렸다.

“그런 소리 할 때가 아니다.”

이항복이 나무랐다. 이여송이 압록강을 건넌 장면을 떠올리면 마음이 쓰라렸다. 애가 탄 왕은 이여송이 압록강을 건너자마자 개선장군처럼 가슴을 쩍 벌리고 행재소(이동 궁궐)에 들어올 때, 버선발로 뛰쳐나가 그를 마중했다. 그만큼 절박했으니 왕이 그런 행동을 보였겠지만, 이를 지켜본 이항복은 가슴이 미어졌다. 그러는 가운데 그도 머리를 조아렸다.

“조선을 구해주십시오.”

그러나 이여송은 미적거렸다. 왕은 그가 대병력을 이끌고 조선으로 온 이상, 단숨에 왜군을 쓸어버릴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공세를 취하지 않고 전세를 관망하며 비르적대고만 있는 것이다.

1차 평양성 전투에서 대패한 조승훈 군의 패잔병까지 천지사방에 흩어져 민폐를 끼치니 조선은 말 그대로 꼴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항복이 접반사로 나서 그에게 공격을 종용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총병관에게 무슨 선물을 줄 것인지 심히 걱정이로다.”

아헝복은 은을 줄까, 백미를 줄까. 압록강의 물고기를 줄까, 멧돼지나 호랑이를 잡아줄까, 아니면 수청들 여자를 떼거리로 줄까. 감이 안잡혔다.

“대감 마님, 그것은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정충신이 이 대감의 고민을 덜어줄 요량으로 말했다.

“어떻게?”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이여송을 만나러 가는 날, 정충신이 두루마리 종이를 이항복 대감에게 전달했다.

“이것이 무엇이냐. 땅 문서냐? 아니면 벼슬자리를 줄 명세서냐?”

“아니옵니다. 이것을 선물로 드리면서 이여송 총병관께 무엇이라고 설명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예의가 아니지. 선물을 주면서 말을 않다니...”

“그렇다면 이렇게만 말씀하십시오. ‘총병관 각하, 저희의 소중한 재산이옵니다’라고만 하십시오.”

이항복이 궁금증을 참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두루마리 종이를 두루마기 소매 속에 넣었다. 그도 달리 방법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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