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213>

“적이 우리의 전쟁준비 상황을 거울 속 들여다보듯이 꿰고 있습니다.”

정충신이 병조에 이르러 이항복 병판에게 아뢰었다. 병조 집무실에는 장수들이 부산나게 움직이고 있었고, 군마를 타고 온 전령들이 수시로 첩서를 주번사령에게 올리고 있었다. 아연 긴장된 분위기였다. 전쟁이 가까웠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저 자들이 우리의 군사기밀을 알아냈다고?” 이항복 병판이 물었다.

“네. 명군이 평양성에 도달하지 않았는데도 아군 전투전개 상황을 저 자들이 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왜의 정탐장 와타나베를 심문한 결과를 보고했다. 정충신의 말을 다 듣고 난 이항복 병판이 비상군사회의를 소집했다. 그러자 정충신이 재삘리 나섰다.

“병판 대감 나리, 비상군사회의를 소집한다고 하면 자칫 회의 내용이 누설될 수 있나이다. 적에게 흘러들어갈 수 있습니다. 핵심 참모와 비밀회의를 갖고 서찰은 남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의심해서 되겠는가.”

“아니옵니다. 지금은 첩보전입니다. 군왕의 침소에도 밀대가 들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허허, 세상이 그렇게 되었군. 하여간에 못된 놈들이로구나.”

그러나 경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대비책을 강구해 이번에야말로 적을 완전 쓸어버려야 한다. 세 차례나 패했다면 할 말 다한 것이고, 이번마저 진다면 나라는 변명의 여지없이 멸망하게 된다.

“낙상지 장군이 출동준비를 하고 있으니 가서 상의해보거라. 너를 기다리고 있다.”

정충신은 서둘러 명군 진중으로 달려갔다. 명군도 긴장한 가운데 출정 준비에 바빴다. 진중 막사로 들어오는 정충신을 낙상지가 반겼다.

“저번 선물로 준 지도를 펼쳐보니 전술을 짜는 데 큰 도움이 되었소. 참으로 유용한 선물이었소이다.”

“하지만 기존의 전략을 수정해야 합니다. 명나라 좌군, 중군, 우군이 대동강과 보통문, 칠성문, 함구문으로 침투한다는 기밀을 적들이 알아버렸소이다. 저들이 알아낸 이상 역으로 치고 나가야 합니다.”

“하하하, 좋은 정보를 가져왔소. 그것 참 기발한 발상을 하도록 하는군. 그러면 이렇게 합시다. 왜군이 우리의 군사정보를 탐지한 것인즉, 조명 연합군은 그것과 반대로 치고 나갈 것이다. 지금 그렇게 새롭게 진용을 짜고 있다고 역정보를 제공하는 것이오.”

정충신이 재빨리 눈치를 알아채고 말했다.

“그렇게 해놓고 본래의 진격로로 침투해 들어간다 이 말이지요?”

“두 말하면 헛소리요, 하하하.”

“그렇다면 이 전략도 누구에게든 발설하지 말아야 합니다. 출격 당일 행동으로 옮기는 것으로 군졸들이 알게 해야 합니다. 그들은 시키는대로만 따르도록 하면 됩니다.”

“왜 그렇소. 서로 전략을 공유해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 아닌가.”

“고니시 왜군부대는 지금 지쳐있습니다. 군졸들도 전쟁 피로증에 쌓여 있습니다. 그래서 정규전보다 소규모 유격전, 정탐전으로 전환했습니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첩자와 간자들을 내세워 간파해 대처하는 즉, 우리도 저놈들을 역으로 이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낙 장군께서 왕성탄, 보통강, 용악산 방향으로 진격한다고 정보를 흘려놓고 본래의 진격로로 침투하는 것입니다. 적들의 군사배치를 흩뜨려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내 전략이라니까. 역시 정 파총은 눈치가 빠르고, 머리가 잘 돌아가는군.”

“다만 왜의 응원부대를 차단해야 합니다. 구로다의 응원군이 달려오거나. 가토 군이 오는 것을 차단해야 합니다.”

“저놈들은 화평회담에 느긋해 있지 않소? 잔칫상만 받을 생각이라는데...”

“아닙니다. 저놈들이 느긋하게 있다는 전제 아래 우리가 무방비면 곤욕을 치를 수 있습니다. 이럴수록 황해도에서 오는 구로다 군대, 강계 덕천을 거쳐서 오는 가토 군대를 차단해야 합니다.”

“차단할 군대가 있소?”

“의병들이 나서도록 독겨할 것입니다. 황해도쪽 승군은 오백이 넘는다고 합니다. 구월산의 도적떼도 일어나도록 해야지요. 파발을 띄울 것입니다.”

“하하하, 도적떼도 나라를 위해 봉기한다? 조선이란 나라는 참으로 독특한 나라요. 진작에 이렇게 뭉쳤으면 난리를 겪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말이오. 백성들은 선한데 벼슬아치들이 개판 아니오? 하하하, 이건 농담이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