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굴 존경하느냐고 묻거든
문상화(광주대학교 교수)

엊그제 수능이 끝났다. 수능 1교시에는 비행기도 뜨지 못하고 행여 시험장에 늦을까 발을 동동 구르는 수험생에게는 경찰의 초특급배달 서비스가 당연한, ‘온 국민의 시험’이 지난주에 끝났다. 그리고 이제 수험생들이 최종 합격의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면접시험이라는 또 다른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면접고사에서 시험관이 수험생에게 묻는 가장 일반적인 질문은 ‘누구를 가장 존경 하는가’이다. 물론 이 질문에 대한 배점은 굉장히 낮아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당락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이런 질문으로 시작하는 것은 수험생의 사고의 폭과 범위를 측정하려는 시도 때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대답은 ‘우리 부모님입니다’이고 ‘그 이유는?’에 대한 대답은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시는 모습을 볼 때 존경심이 우러나기 때문입니다’가 일반적인 대답이다.

물론 수험생의 이러한 대답은 진심일 가능성이 높다. 세상에 어느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살지 않으며, 그 모습을 보는 자식이 어떻게 존경의 염을 가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런 대답에는 결코 높은 점수가 주어지지 않는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다른 수험생과의 차별성을 부여받지 못하기 때문에 이어지는 질문에 인상적인 답을 하지 못하는 한, 그 수험생은 면접고사에서 높은 점수를 얻을 기회를 잃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특별하기 때문에 서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없다. 더구나 자식의 눈에 비친 부모의 모습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다양한 각도로 평가할 수 있지도 않다. 부하에게 혹독하게 행동하는 부모도 아이들에게는 너그러울 수 있다. 비리를 행하는 부모를 자식들은 알아낼 수 없다. 내가 공금을 횡령했다고 어떻게 아이들에게 말할 수 있겠는가. 자식들은 단지 우리 부모가 능력이 있어서 돈을 잘 번다고 생각할 것이다. 요즘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숙명여고의 쌍둥이 학생도 아버지가 우리를 위해서 그렇게 행동하실 수밖에 없었다고 말할 것이다.

‘누구를 존경 하는냐’는 질문에는 ‘가족을 제외하고’라는 전제가 숨어있다. 객관적인 판단이 불가능하다면 ‘객관적으로 판단이 가능한 인물 중에서 누가 롤모델이 되는가’라는 질문이고, 이때 시험관이 측정하고 싶은 것은 수험생의 직간접 경험의 양과 생각의 깊이다. 만약 수험생이 우리가 익히 아는 인물이라도 자신의 기준과 판단에 따라 존경의 이유를 말할 수 있다면 그는 면접에서 좋은 인상으로 출발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소설가 멜빌(Melville)이 쓴 ‘모비 딕’(Moby Dick)은 포경선의 선장이 자기를 불구로 만든 고래를 쫓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고래와 선장의 추격전은 이스마엘이라는 선원을 통해서 전달된다. 이스마엘이 누구인가? 성경에 따르면 아브라함에게서 쫓겨나 오랜 시간을 황야에서 지내야 했던 인물이다. 따라서 그가 얼마나 많은 것을 경험하고 생존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참아야 했는가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경험을 통해 얻은 넓은 시야와 깊은 사고를 가진 그가 보기에 선장과 고래와의 싸움은 선악의 싸움이 아니라, 단순히 인간과 고래의 추격전이다. 선악은 오로지 에이홉 선장 자신의 편견일 뿐이다.

아이들이 아직 어렸을 때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하는 것과, 성장했을 때 올바른 가치를 상속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부모의 의무이다. 자신의 가치관에 갇히게 하는 대신 넓은 세상을 만나게 하고, 자식에게 편협한 가치 대신 보편타당한 가치를 상속할 수 있을 때 부모의 의무를 다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것과 존경하는 것은 다르다. 부모를 존경한다고 말했을 때 기분 나쁜 부모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식이 부모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과 존경하는 것은 별개다. 사랑은 감성의 영역이지만 존경은 이성의 영역에 속한다. 따라서 누굴 존경하느냐는 물음에 부모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이 언급된다면 아쉬움보다는 뿌듯함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자식이 그만큼 성장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런 가정교육을 통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편가르기와 진영논리의 색깔이 조금씩이나마 희석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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