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2부 제1장 무장의 길 <218>

그러나 사실대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장부답지 못하다.

“아니옵니다. 혹 그런 일이 있더라도 저는 연연하지 않사옵니다. 제 임무만 성실히 수행할 것이옵니다.”

정충신이 아랫배에 힘을 주어 당당하게 말했다.

“못된 것들, 오늘 이후로 지벌(地閥)을 따지는 자는 당장에 파직시킬 것이다. 지놈들 이익을 챙기고자 지벌 따지고, 문벌 따지고, 학맥 따지면서 사람들 제한시키는데 그것이 분열의 핵심이다.”

이런 현명한 임금이 왜 왜란을 자초했을까. 젊은 장교 정충신은 두고두고 가슴이 아팠다. 나에게 좋으면 아무리 난군이고 폭군이라도 좋은 임금이다. 그것이 인지상정이다. 정충신은 선조에게 충성을 다하리라 마음 속으로 다졌다.

정충신이 어전을 물러나와 선전관청으로 갔다. 미리 정충신이 들어올 것을 알았던지 행수 선전관이 아랫목에 앉고, 오십 여 선전관들이 양쪽으로 갈라 앉아 정충신을 맞았다.

선전관은 오늘날의 청와대 경호처와 같은 직무를 수행하는 관청이다. 왕의 호위·전령(傳令)·부신(符信)의 출납과 사정 권한까지 갖고 있어 사졸(士卒)의 진퇴를 결정할 수 있는 무서운 곳이었다. 조선의 정치구조는 문신 중심이지만 무관직책인 선전관을 역임하면 문반의 품계를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선전관은 당상관에 오르는 길목이었고, 이로인해 무관의 꽃으로 불리며, 문관의 승지와 비견되어 무관의 승지로 불렸다.

구성원이 대부분 왕의 척신들인지라 자부심 또한 강했다. 선전관청엔 최고 직급인 당상관(행수 선전관)이 있고 참상관 7명, 참하관 14명, 당하관 13명, 선전관 20여 명으로 구성되었다. 이런 자리에 문벌도 학맥도 없는 정충신이 임명되었으니 선전관들의 텃세는 신분 차별이 심한 당시 어쩌면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이들이 시위하듯 자리를 지키는 모습은 완연히 촌놈 겁을 주겠다는 수작이었다. 행수 선전관이 정충신을 보더니 물었다.

“시방 어디서 오는겨?”

“육조의 대신들을 뵙고 신임인사를 드리고, 어전에 가서 상감마마께 사은숙배하고 오는 길이오이다.”

“예의가 바르군. 그러면 우리한테도 예의를 차려야지.”

“그래서 이렇게 다시 찾았습니다.”

“우리의 예의는 허참(許參)이라는 것이네. 허참의 예를 아는가?”

“몰겄는디요?”

“몰겄는디요라니?”

“모르겠다는 전라도 말이오이다.”

“모르는 것이 자랑이 되는가. 정충신 참상관, 참상급 벼슬이라면 선전관청의 예의법도부터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무엇인지 모르겠으니 가르쳐 주십시오.”

뒤쪽에서 누군가 씨발새끼, 하고 욕을 퍼부었다. 그쪽에서 웃음소리가 와크르 터져나왔다. 정충신은 꾹 참았다.

“허참이란 말일세, 예로부터 선전관청에 내려온 관습이지. 새로 선전관 발령을 받으면 선임 선전관들이 신임 선전관을 통과의례 시키느라고 갖은 장난과 희롱을 하는데, 이 통과의례가 끝나면 신임 선전관은 술과 안주를 차려서 고참 선전관들을 후히 대접하는 행사지. 이 자리가 어떤 자린데 그냥 털도 안뽑고 먹겠는가. 어떤 사람은 소도 잡았다네.”

“그것이 국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지금 잔치 벌일 일이 있습니까?”

정충신이 힘주어 물었다. 이 난세에 맹랑한 짓도 다 있다는 생각이었다.

“야 이 사람아, 그건 우애와 단합을 하는 절차야. 그것이 국사를 잘 하는 첩경이지. 일을 하려면 모두 결속하고 단결해야잖아. 하라면 해야지, 무슨 잔 말이 많은가!”

이번에는 나이든 참상관이었다. 그도 새파란 젊은 친구가 참상관 자리에 오른 것이 기분 나쁜 것이었다. 수십년 차곡차곡 곡식더미를 쌓듯이 절차를 밟아 오른 참상관인데, 새파란 촌놈의 새끼가 하루아침에 자기와 동급동렬의 위치에 있으니 불괘한 것이다.

“나는 그렇게는 못하겠소이다.”

정충신이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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