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2부 제1장 무장의 길 <221>

활시위를 당겼다가 한 순간에 탁 놓자 황소만한 호랑이가 길길이 허공으로 날뛰었다. 화살이 정통으로 호랑에 눈에 꽂힌 것이다. 이때 호랑이에 물린 선전관이 구르듯이 옆으로 몸을 피하자 정충신이 조총을 들어 호랑이 옆구리를 겨냥해 쏘았다. 어흐흥, 호랑이가 골짜기를 쩌렁 울리게 포효하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호랑이가 숨통이 끊어져 늘어지고, 옆구리와 눈에서 흘러나온 핏물이 눈밭을 붉게 물들였다.

“몰이꾼들 다 나오시오!”

골짜기 이곳저곳에 매복했던 선전관들이 나왔다. 그들이 정충신을 바라보며 눈이 휘둥그래졌다. 단숨에 보는 눈이 달라졌다.

“와! 두 마리를 한꺼번에 뗘려잡다니, 대단하오.”

“신기(神技)요, 신기!”

정충신이 침착하게 말했다.

“호랑이에 물린 선전관을 집으로 옮기시오.”

그들이 부상당한 선전관을 부축해 집안으로 들어가 삼베로 물린 자국을 칭칭 동여맸다.

“누가 물 좀 데우쇼.”

뜨거운 물로 호랑이 이빨 독을 씻어내야 하는 것이었다. 선전관들이 부산나케 움직이는데 그때까지도 집안에선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쥐죽은 듯이 고요적막했다.

“아무도 없소?”

정충신이 안방 문을 와락 열어제치는데, 다락방에 사람 셋이 숨죽이고 엎드린 채로 눈을 말똥거리며 이쪽을 살피고 있었다.

“당신들 살았소. 무사하니 이제 모두 내려오시오.”

가족들이 부스스한 몸으로 다락방에서 내려왔다. 이들이 모두 무사하다면, 눈밭의 피는 누구 것이지? 정충신이 가족을 향해 물었다.

“눈밭에 피가 있는데 혹시 바깥분이 당한 것 아니오?”

“호랑이가 외양간의 소를 잡어먹은 거랍니다. 외양간에 묶어둔 소를 물어서 고기를 내어 먹는데, 그 사이 식구들이 고방으로 들어와 숨었답니다. 우리 소가 우리를 살린 것이지요.”

“바깥 분은 어디 계시오?”

“몰이꾼을 데리고 온다고 마을로 내려갔다우.”

정충신 일행은 산골 집 울타리를 고쳐주고, 호랑이와 부상자를 메고 하산했다.

“호랑이 한 마리가 멧돼지 열 마리 값을 하니까 이것으로 허참의 예를 다하게 되었소.”

한 선전관이 말했다. 다른 선전관이 응수했다.

“전라도는 평야가 많은 곳이라는데, 정 참사관이 이렇게 사냥을 잘하는 것 보니 그곳도 깊은 산이 있는 모양이지요?”

“좋은 산이 많지요. 무등산 금성산 추월산 지리산 백운산...”

선전관들이 호랑이를 메고 가니 흡사 적을 격파하고 개선한 장군들과 같았다. 선전관청에 당도하자 정충신이 말했다.

“호피를 잘 내시오. 살과 가죽을 잘 발라야 합니다. 진상품이오.”

이때 병조의 당직 사령이 급히 달려왔다.

“정충신 참상관은 지금 당장 병조판서 집무실로 올라가시오.”

병조 사무실에는 판서, 참판, 당상관, 참의, 참지와 무선사(武選司)·승여사(乘輿司)·무비사(武備司)의 정랑과 좌랑 등 10여명의 관원들이 모여서 회의를 열고 있었다.

“정충신 참상관은 지금 곧바로 의주를 떠나야겠다.”

이항복 정충신에게 지시했다.

“네? 무슨 일이관대요?”

참의라는 관원이 대신 받았다.

“병판대감께옵서 접반사로 임명돼 평양에 입성하는 명군을 접대하게 되었는데, 군량과 식품이 모자라 이여송 제독이 머리끝까지 화가 나있소. 군사를 먹이지 못하면 싸워본대야 죽는 일밖에 없으니 이럴 바엔 철수하겠다는 것이오. 박천, 안주, 숙천까지 내려가있던 명군이 지금 멈춰 서있소. 우리가 식량이 넉넉한 것도 아닌데, 수만 명의 식량을 마련하려니 죽을 지경이오이다. 이 제독 심기를 거스리면 우리는 살았다 할 것이 없소. 남의 손을 빌려서 나라를 건지겠다는 것이 이렇게 고독한 일이오. 지금 이 제독 성질 누구려뜨리는 일이 제일 긴요한 문제요.”

“걱정할 일 없습니다.”

정충신이 간단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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