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2부 제1장 무장의 길 <224>

“아니, 저 사람이 누구요?”

이여송 제독이 단 아래를 내려다보며 놀라고 있었다. 우마차 행렬 선두에서 이항복 대감이 말을 타고 들어오고 있었다. 들어오는 이항복을 본 이덕형 형조판서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니 저 자가...”

자신을 역원에 집어넣고 개선장군처럼 들어오는 것이 괘씸하기보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넋을 잃었다.

“조선국 병조판서 이항복 아뢰오.”

이항복이 마상에서 이여송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그의 바로 뒤에는 정충신이 따르고, 그 뒤쪽에는 양식을 가득 실은 우마차가 차례대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게 어인 일이오?”

이여송이 물었다.

“호궤를 지대로 이행하지 못한 것을 양해 바랍니다. 양곡을 거두어 오느라고 지체되었습니다. 좀 늦었으나 군사들이 배불리 먹을 만큼은 되었소이다.”

그러자 이여송이 호방하게 웃었다.

“하하하, 못말리는 대감이군. 그러면 이 사람은 누구요?”

이여송이 턱짓으로 이덕형을 가리켰다.

“이덕형 형조판서 올시다. 예판을 지낸 명신으로서 예의가 자별한 즉, 내가 전투식량과 호궤를 차릴 식재료를 구해오는 동안 역원에 나가서 임시 접반사로서 명의 장수들을 접대하라고 요청했나이다. 혹시 결례라도 했소이까?”

-저런 쳐죽일 인간...

이덕형은 이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내부자끼리 다툰다는 것이 우습기도 해서 꾹 참았다.

“그건 우리가 결례한 것이오. 압송대장이 이항복 병판대감이 온 줄 알고 잡아들인 것이오이다. 사전에 초상화라도 있었다면 대조해서 데려오는 것인데, 워낙에 다급한 진중 사정인지라 확인도 못하고 압송해온 우리가 결례했소이다.”

“아니올시다. 임시 접반사가 제대로 응대하지 못한 것이 결례겠지요.”

-저런 쳐죽일 놈. 결례라도 저지를 시간이 주어졌다면 변명도 못하겠지만, 그런데도 저 자는 한수 더 뜨는군.

이덕형이 속으로 부글부글 끓는데 이항복은 시치미를 뚝 따고 태연하게 이덕형을 바라보며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여송이 긴 우마차 행렬 후미를 보고 물었다.

“그런데 저 우마차 꽁무니에 따라오는 말들은 무엇이오?”

“폐마들입니다. 명군이 진격하면서 버린 말과, 우리가 기르던 것들 중 쓸모없는 것들을 거두어 왔습니다. 저것들을 끌고 오느라 시간이 더 지체되었군요. 한나절 후에 또 올 것입니다.”

“저런 말들을 어디에 쓴단 말이오?”

이여송의 눈썹이 여덟 팔자로 일그러졌다. 이여송 부대의 기마부대 말들은 하나같이 준마였다. 마부대장 진충평이 데려온 말들은 기름기가 자르르 도는 간쑤성의 호마(胡馬)들이었다. 가난뱅이는 염소, 양, 당나귀가 화폐 단위지만, 부자들은 준마가 화폐가 될 정도로 값나가는 동물인데, 이것들을 천여 필 징발해온 것이다. 간쑤성 초원에서 자란 말들은 높이가 아홉자나 되고, 덩치가 집채만한 것들이어서 전쟁터에 나갔다 하면 단번에 적진을 쓸어버렸다. 맑은 눈과 늠름한 생김새, 비호보다 빠른 달리기, 힘찬 추진력의 호마는 가위 명군이 자랑하는 동력이었다. 이런 말들을 끌고 왔는데 이항복은 하나같이 비르적거리는 말들을 거두어오고, 그것도 한두 마리도 아니고, 수십 마리 끌고 왔다. 이건 이여송 자신을 엿먹이는 수작이라고 여겨져 화가 치밀었다. 그는 한심해서 못볼 것을 본다는 마음으로 물었다.

“저것들을 어쩌자고 가져온 것이오? 도대체 몇 마리요?

“지금 오십 마리가 나와 함께 당도하였소이다. 한두 식경 후에는 또 오십 마리가 더 올 것입니다.”

“도대체 뭐하자는 수작이요? 다리를 저는 놈, 한쪽 눈이 없는 놈, 수레용으로도 쓰지 못할 느린 놈, 반대로 피골이 상접한 놈, 이런 병신들을 가지고 어떻게 평양성을 공략한단 말이오? 웃자고 전쟁터에 나온 것은 아니겠지요?”

“물론이지요. 모아온 말이 모두 1백필이 되는 것인 바, 하루에 열 마리씩 잡아먹어도 열흘 분은 넉히 될 것이오이다. 저것들을 고기를 내어 먹이면 군사들 힘이 용솟음칠 것이외다. 사기가 오를 것이오이다.”

이를 지켜본 명군 병사들이 와-, 하고 함성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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