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2부 제1장 무장의 길 <231>

정충신의 군사가 일시에 왜군 진지를 기습하자 왜병은 내부 반란이 일어난 줄 알고 갈팡질팡했다. 외부의 적을 만나면 금방 단결해 대적하는 것이 왜군인데 내부의 반란이니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 허둥대었다.

“바가야로! 니 새끼들 미쳤어? 아군끼리 붙자는 거야?”

군율과 군기 하나는 딱 부러진 왜군이었지만 내부 반란에 대응하는 지침서가 없으니 그들끼리치고 박고 대혼란이 일어났다. 왜군 복장으로 위장한 것은 이렇게 효과를 발휘했다. 왜군 진지는 졸지에 무너졌다. 정충신이 마지막으로 적장의 배를 장검으로 쑤셔박고 명령했다.

“전령은 명군 본진으로 들어가 평양성을 공격하도록 전하라. 아군 본부는 내가 직접 찾아가 보고하겠다. 모두 왜 복장을 벗어라.”

후방 지역의 유격전은 조명 연합군의 평양성 일원 공격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후방을 교란하니 왜군 전력은 분산되고, 그만큼 조명 연합군의 공격은 수월했다.

“변복 전술이 일품이군, 하하하.”

정충신의 보고를 받고 김명원 도원수가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나 오인 사격을 받았습니다. 아군이 적병인 줄 알고 우리를 공격해왔습니다.”

“그러니 수신호를 철저히 숙지해야 한다. 변복 전술일수록 사전에 통신이 잘 이루어져야 하느니라.”

“알겠습니다. 조명군이 연합해서 왜병들을 왕성탄 방향으로 몰아내야 합니다.”

“왕성탄?”

왕성탄은 김명원 도원수가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지난 6월 왜적들에게 쫓겨 군사들이 왕성탄을 건너 되돌아왔는데 왜적은 그곳의 수심이 얕은 것을 알고 배 없이 건너서 일시에 평양성을 점령해버렸다.

“왜 하필이면 왕성탄인가.”

“지난 가을부터 비가 내려서 지금은 수심이 깊습니다. 왜적들이 수심이 얕은 줄 알고 그곳으로 빠져나가려 할 것인즉, 그곳으로 몰아서 수장시켜버리는 것이 피를 묻히지 않고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내가 왕성탄 패배 이후 세 가지 군사 교훈을 얻었다. 첫째는 지형의 중요성이다. 왕성탄은 우리만이 아는 중요한 지형지물이었는데 적에게 노출돼 역공 통로를 제공해버렸다. 둘째는 병사 훈련의 중요성이다. 야간 기습공격을 야간에 시작하고 야간에 완료해야 하는데, 동이 틀 때 비로소 공격했다. 세 번째는 시를 잘 택해야 한다. 그건 과학이다. 왜 그러는 줄 아는가?”

“군사들이 훈련이 제대로 안돼있으니 기습 준비와 이동시간이 지체돼 제 시간 공격이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우왕좌왕하며 군사 배치하고, 이동시간이 지체되다 보니 동이 틀 때 작전을 개시했다. 이러니 적에게 쉽게 노출되었다. 열심히 노력은 했으나 병사들이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데다 피로가 누적되니 노력이 허사가 되었다. 잠도 못자고 지쳐서 아침에 싸우니 능력이 오를 수 있나. 우리 병력만 고스란히 노출되고 말았다. 뼈아픈 대목이다. 정충신 군관이 지형지물의 중요성과 훈련의 중요성, 시의 중요성을 알고 있으니 기대하는 바 크다. 잘 알다시피 조선의 지형은 험준한 산악지대가 많다. 이것을 이용해 숨었다가 공격하는 것이 좋은 공격술이다.”

“그대로 시행하고 있사옵니다.”

1593년 1월 중순(음력) 조명 연합군은 평양성 서쪽 외성에서 공격을 시작하여 모란봉, 칠성문, 보통문을 공격하고 이일과 김응서 군은 남쪽 방향 함구문을 공격했다.

명나라의 부총병 오유충과 조선의 승병 부대가 구원병으로 뒤이어 나타나고, 정충신 척후 병력이 유인전술을 펴자 왜군은 대동강으로 밀려났다. 이때 함구문에 포진한 조선군 8천이 맞아 싸우니 조선군의 손실도 있었으나 왜군의 전력 또한 크게 약화되었다.

이때 낙상지의 마부대가 들이닥쳤다. 군마부대가 거칠 것없이 몰아붙이자 왜 병력이 밀리더니 왕성탄으로 후퇴했다. 정충신이 원하던 퇴로 방향이었다. 적병들은 남으로 패주하기 위해 차가운 대동강물로 뛰어들었는데 수심이 깊은지라 물속에서 허우적거렸다. 강물에서 허우적거리는 놈들을 향해 활을 쏘고, 창을 던지고, 노획한 조총을 격발하니 대동강물이 어느새 핏물로 물들었다. 그래서 왕성탄은 한때 피강으로 불렸다.

와! 마침내 대동강의 양안에서 조선군과 명군이 무기를 높이 들고 함성을 질렀다. 조명 연합군은 완전한 일체가 되었다. 그러나 정충신의 생각은 달랐다. 저들 또한 언제 적이 될지 모른다. 외군이 순수한 마음으로 원군으로 나설 리는 만무하다. 대가를 바라지 않은 출병은 없다.오늘의 우방은 내일의 적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세계 질서가 가르치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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