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와 산업재해
형광석(목포과학대학교 교수)

올해 크리스마스는 유독 흥이 나지 않는다. 예수님의 성스러운 탄생을 기뻐하면서도 기쁨을 드러내기가 영 마음에 걸린다. 이는 크리스마스를 조용하게 보내면서 성탄의 뜻을 되새김해보고자 하는 의지의 발현이라기보다는 청년들에 대한 죄책감이 큰 탓이다.

어제 아침 신문에서 ‘태안·제주 두 어머니의 눈물’을 봤다.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24)의 어머니 김미숙 씨와 지난해 제주도에서 취업 실습 중에 사망한 이민호 군의 어머니 박정숙 씨가 22일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린 김용균 범국민추모제에 참석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용균 씨는 지난 11일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일하다 컨베이어벨트 사고로 숨진 청년이다. 이민호 군은 지난해 11월 9일 제주도 음료 공장에서 현장실습 중 사고 당시 혼자 방치됐었다가 그달 19일에 숨진 특성화고생이다. 김용균 씨 산업재해는 이민호군 산업재해가 발생한 지 1년이 되는 시점에 발생했다.

최근 3년간 매년 꽃다운 청춘이 위험한 작업장에서 홀로 일하다가 이 세상소풍을 마쳤다. 이른바 ‘죽음의 외주화’는 불과 2년 전에도 쟁점이었다. 2016년 5월 28일 하청업체 비정규직 김 아무개(당시 19살) 군이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혼자 수리하다가 사고로 숨졌다. 2016년 5월 김 아무개 군의 사망 사고 뒤 ‘위험의 외주화’를 막는 법안들이 발의됐으나 국회에서 심사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국회의 무책임이다. 적지 않은 국회의원의 몰염치와 천박함이다. 한편 정부는 지난달 1일에야 원청의 안전보건 조처 책임을 늘리고,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주 처벌을 강화하며, 유해·위험 작업의 도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게 바로 국회와 정부의 민낯이다.

일부에서는 “과잉 입법, 엉터리 법안”, “사업주를 범법자로 양산할 우려” 등을 내세우며 반발한다는 언론 보도이다. 김용균 씨의 안타까운 죽음을 계기로 사회적 쟁점이 된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의 통과가 일부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합동작전으로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그 권력집단에는 그리스도인(christian)이 아무도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이 크리스마스 시기라서 그와 같은 엉뚱한 의구심이 일어난다.

‘인간은 하느님 모상(模像)으로 창조됐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도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말이다. 바이블(Bible)의 <창세기>는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말한다. 어떤 그리스도인이 이 말씀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려는 의지와 능력이 미약하다면, 그의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일까?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에 반대하는 일부 국회의원과 재계 지도자들은 아마도 그리스도인은 아닐 거다. 위험한 작업장에서 홀로 일하다가 사고로 숨진 2016년 5월의 김 군, 2017년 11월의 이민호 군, 올해 12월의 김용균 씨 등은 그리스도인의 눈에는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사람으로 비쳐야 한다. 바이블의 가르침대로 해석하면, 세 청년이 각각 일한 사업장의 원청업체와 하청업체의 책임자는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과장하면, 그 책임자는 세 청년이 가슴에 간직한 하느님을 죽인 거다. 어떤 국회의원이 그리스도인인데도 그 법의 통과를 반대한다면, 그는 사망사고가 난 사업체의 책임자와 똑같은 짓을 저지르는 정치인이다.

성탄절을 맞이하여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는 국회의원, 재계 지도자, 사업체 책임자에게 촉구한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말씀을 각자 현장에서 실천하십시오.

크리스마스에 당신의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못에 박힌 채 돌아가시는 참담함을 인내하는 성모 마리아의 얼굴을 그려본다. 동시에 노동 현장에서 사고로 자식을 앞세운 청년들 어머니의 한없는 눈물을 생각한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어머니들이 더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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