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김세종 민화컬렉션-판타지아 조선
이름없는 천재화가들이 담아낸 새로운 세상
독특한 기법으로 봉건왕조 해체 민초들 열망 반영
누가·왜·어디에 상상력 발휘하면 ‘위대함’ 더 발견

‘김세종민화컬렉션-판타지아 조선’ 개관때 김세종씨가 책가도를 설명하고 있는 모습./ /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m
제주지역 문자도.

국립국아시아문화전당 개관 3주년과 광주은행 창립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김세종민화컬렉션-판타지아 조선 >이 지난달부터 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에서 열리고 있다. 평창아트 갤러리 대표이자 수집가인 김세종씨는 20여년 간 모은 고사도(故事圖), 책가도(冊架圖)·책거리(冊巨里)·문자도(文字圖),화조도(花鳥圖), 산수도(山水圖), 까치호랑이 등 70여 점의 민화를 분류별로 엄선해 공개했다. 아직도 민화의 정체가 미답의 경지로 남아있는 상황에서 의미있는 시도다.

고사도는 중국이나 조선의 고사 속의 인물이나 장소 등을 담은 그림이다. 이번 전시에는 현실과 꿈을 넘나들며 인생이 일장춘몽임을 노래한 ‘구운몽’이나 영웅담을 그린 ‘삼국지’를 8폭 병풍으로 만날 수 있다. 구운몽에 등장한 8선녀들의 얼굴이 찡그리거나 화난 표정들이어서 ‘왜’라는 의문이 절로 생긴다. 삼국지도에선 코믹과 해학이 엿보인다. 산은 말발굽아래 놓이고 한 걸음에 산을 뛰어 다니는 영웅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장비와 관운장의 얼굴은 만화처럼 익살스럽다. 그럼에도 힘과 담력을 놓치지 않는다.

책가도와 문자도는 민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책가도는 책만 집중하는 것이 아닌, 가구가 중심이고 문방사우와 그 외 기물들의 조화가 아늑하다. 책상과 책장, 꽃신과 수박, 칼, 벼루, 유리컵 등이 재미나게 나와 있어 그림들을 보는 내내 심심하지 않다. 화가의 섬세함과 위트 등이 느껴지기도 한다.

문자도는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禮義廉恥)’라는 유교의 이념이 글씨와 그림 한 몸으로 조합된 8폭의 병풍이다. 보통 문자도는 한자에 각각 맞는 고사에서 유래한 이미지가 합치된 켈리그라피 같은 느낌이지만, 어떤 문자도는 모란, 연꽃, 국화, 매화, 해당화 등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꽃으로 장식성을 더했다. 문자도는 지역적 특색도 잘 표현하고 있다. 문자도의 전형인 3단 구성이 아닌 글씨안에 물고기나 새, 바위 등을 넣고, 효(孝)보다 제(悌)자가 먼저 나오는 문자도를 볼 수 있다. 부모에 대한 효보다 형제의 우애를 더 중요시한 이유가 뭘까라는 궁금증이 든다. 김세종씨는 제주지역 특색을 나타낸 이 문자도에 감탄해 민화 수집을 본격화했다고 한다.

화조도는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꽃, 군자의 미덕을 강조하는 연꽃이 화면 가득하다. 그야말로 형형색색의 만화방창(萬化方暢)이다. 19세기 전후 조선사회에서 민초들의 봉건왕조 해체 열망을 만발한 꽃으로 반영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재미있는 건 화조도 아래쪽에 등장하는 각양각색 바위와 괴석이다. 화조와 어울리지 않는 묘사고 조합이다. 당시 조선 사람들의 시각언어가 전통조형을 새롭게 뒤집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치 수백년간 이어진 유교적 사회질서가 더 이상 백성의 염원을 담아주지 못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듯 하다.

이같은 묘사는 산수도에서도 잘 나타난다. 산수도는 산세의 구도가 전통적인 삼원법을 완전히 파괴하고 있다. 더욱이 수묵에 채색을 더하여 붉은 산, 파란 산이 공존한다. 집과, 탑, 그리고 산봉우리 사이에도 원근의 거리감을 찾아 볼 수 없다. 나무마저 필법의 원리는 모조리 무시된다. 20세기 초 현대미술에서 볼 수 있었던 원근을 무시하는 역원근법, 디테일의 과감한 생략 · 추상 등의 기법이 19세기 조선민화에서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임금의 상징인 호랑이가 까치의 친구로 전락하고, 그믐달이 걸린 소나무아래 해학적으로 그려져 있는 것도 무관치 않다. 백성으로 대변되는 까치와 임금인 호랑이가 친구로 지내는 세상을 염원했다고 볼 수 있다. 19세기 조선 민화가 이루어낸 새로운 내면공간인 셈이다. 민화라 하면 언제나 ‘이름없는’ 환쟁이가 그렸다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여기에는 ‘저급하다’‘변두리 예술’이란 인식이 자리한다. 하지만 ‘판타지아 조선’에선 그동안 민화에 대한 선입관이 깨진다. 오히려 ‘이름없는 천재 화가들’이 그린 ‘예술의 중심’이란 생각이 든다.

작품을 감상할 때 누가 그렸을까, 왜 그렸을까, 어디에 놓았을까라는 상상력을 발휘하면 민화의 위대함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전시장 입구 벽에 적힌 “조선민화는 현대미학이론으로 해석이 불가능한 불가사의한 미의 세계가 있다. 하늘에서 떨어진 그림같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미지의 미의 세계가 있다. 이 그림이 세계에 알려지는 날이 왜면 세상은 큰 충격에 빠질 것이다”라고 한 일본 미술학자 야나기 무네요시의 평이 단순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전시는 다음달 20일까지 이어진다.
/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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