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2부 제2장 선사포 첨사 <254>

병선을 헤아려보니 숫자는 대저 맞지만 선미와 선수가 깨져서 오도가도 못하는 것, 선복(船腹)이 구멍이 뚫려서 물이 들어와 꼼짝 못하는 것, 노가 없거나 닻과 노좆, 노좆에 끼워넣는 노씹이 사라진 것, 걸레처럼 찢어져 헤진 돛폭 등 쓸 만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병선들은 하나같이 폐선이었고, 그 자체로서 선사포진의 기강의 정도를 헤아릴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이니 해적들더러 어서 와서 재산을 약탈해가라고 권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래저래 피해를 입거나 곤욕을 당하는 사람들은 애꿎은 백성들이었다.

“개새끼들, 이래 놓고도 군관이라고 할 수 있어? 그러면서 애꿎은 백성들 박박 긁어대며 소 끌어가고 돼지 잡아먹었겠지. 이런 자들이 나라를 지킨다고 했으니 누군들 나라에 애정을 갖겠나.”

구월산, 묘향산에 산적이 우굴거리는 이유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은 타락하고 부패하고 무능한 관아와 군사가 이런 산적을 배양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정충신은 부임 다음날부터 군사들을 배불리 먹인 다음 폐선 수리에 나섰다. 해안가에서 배를 만지던 수병들이 모처럼 게트림을 하면서 허튼 소리를 했다.

“야, 모처럼 시원하게 방귀도 뀐다야. 역시 먹어놓으니 속에서도 뭔가 답신이 있구만 그랴.”

“젊은 첨사라 다르긴 다르군. 병사를 먹이고 일을 시키겠다는 것, 헌데 전의 지휘관들은 떠날 생각만 하고 자기들 뱃속만 챙기지, 군사들 코딱지로나 알았나? 한마디로 개좆으로 보았어.”

“하지만 그도 별 수 없을 거야. 한두 해 지나면 언제 그랬더냐 싶게 초심 내버리고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니까. 그 놈이 그 놈이야.”

“그럴까? 정 첨사는 저기 전라도 촌구석에 왔다는데, 그런 처지에 조정의 신진사대부에 끼었다던데? 얕잡아보면 큰 코 다칠 기라.”

“맞아. 다들 사고치고 쫓겨온 곳이 선사포인데, 정 첨사는 자원해서 왔다는 거 아닌가. 뭔가 생각이 있는 지휘관이야. 여차하면 골로 가니까 우리 조심들 하자구.”

이렇게 씨부렁거리는 가운데 중맹선 두 척이 완성되었다. 정충신이 병력을 집합시켰다. 860명의 병력을 1진, 2진, 3진...10진으로 편성해 대오를 갖추어 바닷가 모래사장에 집합시켰다..

“1진과 10진은 모두 수리한 중맹선을 타라.”

정충신은 두 중맹선을 이끌고 선사포와 탄도 중간 지점에 이르렀다. 탄도까지 오리, 육지부까지도 오리쯤 떨어진 물길이었다.

“1진 2진 모두 물로 뛰어들어 선사포까지 헤엄쳐가라. 물에 빠진 자는 구출하지 않는다.”

모두들 헤엄을 치는데 물가에서 놀았던지 하나같이 헤엄을 잘 쳤다. 다음에는 2진과 9진이 뛰도록 했다.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우수한 자질을 갖고 있는데 활용할 줄 몰랐다.

“다음에는 물속 십리를 가는 훈련이다. 물속을 가는 데는 호흡이 중요한 법이니, 호흡 기량부터 다져라.”

어떤 병사는 맥박이 이백 번을 뛸 때까지 물 속에 잠겨있는 자가 있었다. 적선 밑을 다섯 번도 왕복할 잠수 실력이었다.

정충신은 속으로 옳다구나, 하고 쾌재를 불렀다.

다음날은 가까운 운암산 등정에 나섰다. 약 3백 고지의 운암산은 동서남 쪽으로 입봉·어랑산·연대산·고가산·배산 연봉으로 이어진 초입이었다. 이곳에도 명군 잔병들과 오랑캐 무리들이 진을 치고 노략질을 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산세를 파악하고, 산악지형을 탐색해야 했다. 그에 대비하기 위해 군사들에게 산악 조련을 해야 하는 것은 필수였다.

정충신은 그들을 먼저 올려보내 놓고 뒤따라 다른 길을 택해 산을 올랐다.

“아니, 정 첨사 나리, 선사포에 계시지 않았습니까?”

병사들이 한결같이 놀랐다.

“분명 나 역시 산을 타고 왔다. 하지만 이건 산이 아니지. 고작 3백 고지의 산을 산이라고 하면 백두산 칠보산 등 2천5백 고지가 넘는 개마고원은 어떻게 간다는 것이야?”

“우리는 축지법을 쓴 줄 알았습니다.”

“무등산을 아는가?”

“압지요. 전라도 명산 아닙니까요?”

“그럼 무등산 호랑이는?”

“무등산에 호랑이가 살고 있습니까?”

“살고 있지. 바로 내가 무등산 호랑이야. 그 실력으로 전라도 이치·웅치전투에서 승전보를 울린 것이야. 이 승전보로 호남을 지키고, 우리의 식량기지가 확보되고, 그 힘으로 왜적을 물리친 동력을 얻은 것이야.”

일시에 군사들이 와-, 하고 함성을 질렀다.

“내일부터 인근 산의 산적들을 소탕할 것이다. 산악지형을 잘 살피기 바란다.”

“아닙니다. 가도 쪽이 더 급합니다. 그곳 해적들이 주민을 괴롭힙니다. 조공선을 약탈했습니다.” 한 중군장이 앞으로 나서서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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