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2부 제2장 선사포 첨사 <256>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정충신이 포승줄로 꽁꽁 묶여서 나온 해적의 두목을 향해 물었다.

“내 이름은 본시 없고, 산뚱성 니구산이라고 한다. 니구산이라고 불러라.”

그러자 정충신 곁에 서있던 부장의 주먹이 당장에 날아갔다.

“에라이 씨발놈, 여기가 어디라고 막말을 하냐. 너 디져봐라.”

부장이 거듭 그를 걷어차면서 떡실신이 되도록 두둘겨 팼다.

“니구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정충신이 부장을 제지하고 물었다. 문자를 아는 우군장이 해석했다.

“산뚱성 곡부의 공자가 태어난 곳 니구산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도적이 좋은 것은 다 골라 쓰고 있습니다.”

다시 부장이 니구산을 패기 시작했다. 섬 주민들이 환호했다.

“공자의 후예답게 품격있게 살아야지 해적 따위가 뭐냐.”

“당장 쳐죽여도 시원찮을 놈이요. 목을 따십시오.”

섬 주민들이 외쳤다. 그러나 두목을 분풀이로 처단한다고 해서 근본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정충신은 주민들의 복수심을 풀어주는 것으로 소탕전을 마무리하고 싶지 않았다.

“보다시피 가도 해안선 길이는 백리나 되는 큰 섬이다. 해안선이 길게 뻗어있으니 누구나 들어오고, 또 큰 배들이 정박하기 좋은 지형이다. 그래서 큰 배를 노리고 해적과 산적의 근거지가 되었다. 한 놈을 처단한다고 해서 해적·산적들이 끊기는 것이 아니니 일단 이놈을 생포해 선사포로 끌고 갈 것이다.”

정충신은 니구산을 유용하게 써먹을 묘안을 찾기로 하고, 일단 선사포 옥에 가둬둘 생각이었다. 문초하면 신분이 드러날 것이고, 그에따라 협상용이든 거래용이든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사려깊은 생각이시옵니다. 그러나 귀로 중 잃지는 말아주십시오. 워낙에 쥐새끼 같은 자이옵니다.”

섬마을 족장이 당부했다. 주민들이 일제히 허리를 굽혀 예를 취했다. 가도는 신미도·대화도·신도 등과 함께 서한다도해(西韓多島海)를 이루는 중심 섬인지라 이곳을 평정하는 것이 서한다도해를 안정시키는 힘이 되었다. 그런데도 군사 주둔군이 없었으니 조선, 명나라 할 것없이 해적들이 이웃집 드나들 듯 습격해 주민을 괴롭혔다.

정충신은 수병 100명을 잔류시키고, 나머지 군사를 이끌고 선사포로 귀항했다. 진에 당도하자마자 니구산을 옥에 가뒀는데, 평안 감영의 비관(?官) 전령이 헐레벌떡 말을 타고 달려왔다.

“정 첨사 나리, 평안감사 서신을 가져왔나이다.”

전령이 품에서 서찰을 끄집어내 정충신에게 올렸다. 서찰은 ‘시급한 군무가 생겼으나 해결할 길이 난망하니 정충신 첨사가 일각을 지체 말고 서찰을 받은 즉시 평안감영으로 대령할 사(事)’라고 적혀 있었다. 밑도 끝도 없이 평양성으로 달려오라는 것이 이상하고, 또 불쾌했지만 시급한 일이라고 한지라 곧 군마를 대령하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소녀 관비(官婢)가 급히 달려오더니 말했다.

“첨사 나리, 내아(內衙)에서 진지를 드시고 가시랍니다.”

“지금 바쁜 일이 있다고 하지 않더냐. 보통 때에도 안에서 잘 먹지 않는데 들어오라니, 무슨 심뽀인가.”

그는 소실을 조금은 미워하는 편이었다. 남자같이 크고, 성격도 괄괄하고 무뚝뚝해서 정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내아로 들어가 식사할 일도 일부러 식사를 내오도록 해서 집무실에서 해결했다.

“아무리 바쁘셔도 마님께서 꼭 할 말이 있다고 하옵니다.”

“귀찮게시리 무슨 말?”

“저는 모릅지요. 꼭 들어와서 진지 드시고 가시랍니다.”

정충신이 내아로 들어가자 문 밖에서 기다리던 소실 하양 허씨가 그를 맞았다. 방으로 들어서자 곧바로 식사가 나왔다. 소실이 곁에 앉으며 말했다.

“영감이 난시(亂時)를 당하여 한시도 걱정하지 않은 때가 없었습니다. 가도대첩은 영감의 용맹으로 거둔 성과지만 평양 가는 길은 용맹만으로 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럼 무어가 있단 말이오?”

“평안감사가 부른다고 무슨 일인지 궁리도 안하고 가시려고 합니까?”

“급하다고 하니 달려갈 밖에요.”

정충신은 소실이 뭔가 한 겹 짚고 나온 것이 기이했다.

“아무리 군무(軍務)라고 하지만 봉화가 없으니 필시 다른 사단이 났을 것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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