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2부 제2장 선사포 첨사 <260>

‘풍신수길과 함께 화친해 조선의 병화를 덜어주겠다’와 ‘풍신수길을 힘께 쳐서 조선의 병화를 덜어주겠다’는 것은 천양지차의 문장이다. 이 점을 이덕형이 노리고 글자 하나를 살짝 바꿔치기해서 명을 놀라게 했고, 결국 명은 부랴부랴 조선에 구원병을 파병했다. 이덕형은 또 조건없이 돕겠다는 누루하치를 지렛대 삼아 명의 원병은 군량과 피복을 자국의 병참선으로 해결하도록 협상했다. 그런데 평양성을 탈환한 뒤 명은 태도를 바꿔 파병의 대가로 은 만냥(사실은 팔천냥)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이다. 사신이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갸 조선 왕실에서는 융숭히 대접을 받았소. 상감마마께옵서 버선발로 달려와서 나를 맞이하시면서 명이 아니었으면 나라를 구하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눈물까지 비치셨소. 상감마마께옵서는 대명의 황제를 위해 천세만세를 외치셨소. 그리고 무엇이든 원하는대로 요구를 들어주라고 엄명을 내리셨소. 그런데 평양에 와서 대접은커녕 내 다리 몽댕이가 분질러질 뻔했소.”

“기왕 그렇게 된 일, 제가 성의껏 돕겠습니다. 육로를 가시려면 다친 다리가 온전해야 합니다. 몇 삭 요양해야 나을 것 같습니다. 의녀들이 간호하면서 몸으로도 위로해드릴 것이오.”

“아니오. 배를 타고 빨리 건너가려고 하오. 선사포에서 병선을 타고 갈 생각이오. 선사포 앞바다 가도에는 내 조카가 진을 치고 있소.”

“가도에 조카가 있습니까?”

“거기서 두령으로 있소이다. 산뚱성 니구산이라고, 본명은 등삼초요. 나의 셋째 동생이고, 나는 그의 맏형 등일초 올시다.”

순간 정충신의 뇌리에 번쩍 번개같이 스치는 것이 있었다. 이것들 완전 날강도 새끼들이고만? 좋다. 이것으로 쇼부를 치자. 니들은 딱 걸렸어....

“니구산, 아니 등삼초는 국법 위반으로 체포되었소. 내가 체포한 것이오.”

등일초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체포되었다니, 그거 무슨 말이오? 그곳을 지배한 자인데...”

“그 자는 신미도·대화도·신도 등 서한다도해를 무대로 해적질로 주민을 괴롭히고 살인을 저지른 자요. 내가 선사포 첨사로 부임한 첫 작업으로 서한다도해 해적을 섬멸하였소.”

“해적질?”

“그렇소이다. 지금까지 양민 열다섯을 죽이고, 조선 수군의 수급을 둘이나 베었소. 그래서 현상금 은 팔천 냥을 걸고 수배중이었소이다. 날마다 서한다도해를 분탕질하는 이 자를 체포하지 않으면 민심이 흉흉해서 섬 관리가 안되는 상황이었소이다. 그래서 잡아 즉결처분하려다 명과의 선린도 있고 하여 명나라로 보내서 죄상을 샅샅이 고변할 생각이었소이다.”

“그것은 안되오. 그 자가 명으로 송환되면 우리 가족이 멸문하게 됩니다.”

등일초가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왜 그렇소.”

등일초가 쿵 무너지듯 벽에 등을 기대더니 하소연했다.

“반란을 모의하다 쫓기고, 내가 그나마 충직한 문관으로서 상소문을 올려서 추방되었소. 해적질로 송환되면 그놈의 죄상이 더 드러나게 되고, 나의 거짓도 판명되는 것인즉 우리 가문은 살았다 할 것이 없소.”

“나는 국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영토를 지키는 조선의 충성스런 군관이올시다. 원칙대로 국법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군관의 의무이자 책임입니다.”

“아이쿠 정 첨사, 제발 고정하시오. 그 자의 송환만은 막아주시오.”

“그러면 조선의 국법에 따라 처단하겠소.”

“제 앞에서 그런 말씀하시면 형인 제가 뭐가 되겠소이까. 대신 팔천냥을 포기하겠소. 양 총병에게 조선 전란의 참상을 고변하고, 조선이 복구될 때까지 원병 보상금은 미루자고 하겠소.”

미루자고 하겠다는 말은 사실상 포기한다는 뜻이었다. 자기 동생과 팔천냥을 맞바꾸자는 계산인 것이다.

“젊은 정 첨사는 앞길이 구만리 같은 지체 아니오. 이런 때 덕을 베풀면 훗날 무슨 복이 돌아올지 모르오. 일찍이 중국 속담에 큰 덕을 베푼 자에게는 마누라까지 넣어주라는 말이 있소이다. 은혜를 베풀어주시면 그 은혜를 뼈를 갈아서라도 갚겠소이다. 등삼초 요놈은 눈알을 뽑아서 두 번 다시 못된 짓 못하도록 하되, 수는 누리도록 할 작정이오. 그것이 형의 도리요.”

정충신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등일초가 연신 머리를 주억거리며 예를 취했다. 이렇게 하여 두가지 난제를 해결하니 평안감사가 감격했다. 그는 정충신을 불러 크게 잔치를 베풀었다.

“정충신의 지혜는 귀신도 넘어갈 일이로다. 명민한 머리로써 두가지 난제를 한번에 풀어버리니 내 뱃속이 시원하다. 일전쌍조(一箭雙?)가 정충신의 전략이로다!”

화살 하나로 날아가는 꿩 두 마리를 꿴다는 말이다. 그러나 정충신의 지혜는 소실 하양 허씨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래서 어서 빨리 선사포로 귀환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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