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행옥 변호사의 호남정맥 종주기
(4)‘사구리재-신광치’ 구간 종주기(2018년 5월 5일)
선각산 고개고개 넘으니 덕태산이 한 눈에
팔공산도 두 팔 벌린채 우뚝…등산로 주변 곳곳 봄꽃 향연
바위들 시루떡 쪄놓은 모양 시루봉 하루에 두번이나 올라
방향감각 잃어 5㎞ ‘알바’…수분령 약수에 고통이 환희로

호남정맥에 위치한 선각산 정상인 삿갓봉을 오르는 길에 만난 나무들. 연노란 새싹들이 제법 자라 등산길 피곤함을 씻어준다.
선각산 삿갓봉 등산로 주변 얼레지 군락지.
오계치에 세워진 이정표.
벗꽃처럼 피어난 산철쭉 꽃을 배경으로 기념촬영 한 컷. 이 철쭉은 잎사귀가 전혀없고 색깔도 옥색에 가까워 신로움을 준다.

2주일 전 사구리재(사구이치)에서 종주를 그만두는 통에 땜방 산행 겸해서 중학 동창인 이겸신 친구와 같이 종주 산행에 나섰다. 7시 반에 문예회관 후문에서 친구를 태우고 출발하여 8시 40분경 사구리재 밑의 등산로 초입에 도착했다. 호남정맥을 넘는 사구리재는 해발 800m는 족히 넘어 보인다.

산길을 100m 정도를 올라 정맥 길에 접어드는데 마침 왼쪽으로는 선각산(1,141m)으로 통하는 등산로가 뚜렷히 나 있는데, 정맥은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방향상은 북동쪽으로 진행한다. 산야초에 밝은 친구는 다래순과 개미취 등을 연신 채취하여 배낭에 넣어 주고, 나도 덩달아 뒤늦은 봄비에 머리를 내민 고사리를 뜯어 가면서 게으름뱅이 산행을 즐겼다.

960고지를 넘어서니 북동쪽으로 능선이 이어지며 980고지 두 봉우리가 이어진다.

지난주에 지나 온 팔공산은 여유롭게 두 팔을 벌린 채 우뚝 서 있다. 그만 그만한 봉우리를 세 개쯤 넘으니 왼쪽으로 ‘데미샘’푯말이 보이는데 거리가 0.62㎞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데미샘을 보는 것을 포기하고 계속 정맥 길로 걷는다. 이 지점이 ‘천상데미’로 불리는 봉우리이나 정맥능선에서는 특별히 구분이 되지 않는 평범한 산이다. 데미샘은 섬진강의 발원지로 알려진 샘으로 천상데미가 하늘마을이란 뜻이니 하늘마을 샘이라고 해석하면 되겠다.

삿갓봉으로 가는 길목에는 흰 철쭉이 마치 커다란 벚꽃처럼 피어 있다. 보통 철쭉은 잎사귀와 같이 피는데, 이 철쭉은 잎사귀가 전혀 없고 색깔도 옥색에 가까워 신기하기만 하다. 신무산과 팔공산 능선을 뒤덮으며 묘한 향기를 풍겼던 ‘엘레지’ 꽃이 이곳에서도 군락을 이루어 피어 있다. 세무직 공무원으로 35년 근무해 온 겸신 친구는 나무와 풀이름을 줄줄 꿰고 있다. 덕분에 엘레지도 배우고 개미취와 참취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1060봉과 1070봉에는 팔각정이 근사하게 지어져 있다. 이곳에서는 지나 온 팔공산 뿐만 아니라 선각산, 시루봉, 덕태산 등이 한 눈에 보인다. 1070봉에서는 오른쪽으로 이어진 경사면으로 올라가야 한다. 정맥 바로 옆에 선각산으로 통하는 등산로가 있는데, 그쪽이 리본도 많고 길이 뚜렷해 길을 잘못 가기 쉬운 지점이다.

오계재는 와룡산 자연휴양림으로 통하는 오솔길이 나 있으나, 중간에 끊어가기에는 적당한 지점이 아니다. 차라리 사구이치에서 끊어서 신광재까지 가는 편이 더 나을 성 싶다. 오계재에서 바로 보이는 1,114봉은 오늘의 등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다. 정상에 오르니 삿갓봉이란 이름과 함께 봉우리 명칭의 유래가 쓰여진 팻말이 서 있다. 이곳에서 1060봉과 930봉을 지나 홍두깨재까지는 약 2.18㎞다. 별로 힘들지 않는 내리막이 계속되는 구간으로서 힘을 비축하면서 산보식으로 종주가 가능하다. 홍두깨재에서 시루봉까지는 또한번 땀을 빼는 오르막이다.

1시쯤 시루봉에 오르니 연봉들을 사진 찍어 설명을 해 놓은 큰 표지판이 서 있다. 친구가 다리에 쥐가 날 것 같다고 해서 점심을 신광치에서 먹고 산행을 끝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자신 있게 안내표지판을 지나 하산로로 접어드는데 왠 걸 가도 가도 봉우리가 계속된다. 무명 봉우리 서너 개를 넘다가 지쳐서 멋진 소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기로 했다. 알뜰한 친구는 닭발무침에 계란말이까지 풍성한 반찬을 내놓는다. 맨날 고추장에 마른멸치를 싸오던 노총각 낙수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점심을 잘 먹고 10여분을 힘내서 걸었는데 신광재는 나오지 않고 갑자기 트랭글이 울린다. 무려 1.3㎞ 이상을 알바해서 덕태산(1,113m)에 닿은 것이다. 이곳에서 백운계곡 쪽으로 하산하자는 친구를 설득해 다시 시루봉으로 향했다. 대간이나 정맥꾼들은 길을 잃으면 다시 원점으로 복귀하는 것이 철칙임을 친구는 잘 모를 거다. 거의 30분만에 다시 시루봉에 닿았는데, 시루봉은 반대편에서 보니 바위들이 꼭 떡시루에 시루떡을 쪄놓은 모양으로 켜켜히 둥그렇게 엉켜 있다.

시루봉에서 오른쪽을 보니 내가 놓친 리본들이 많이도 달려 있다. 신광재로 내려가는 정맥 길은 상당히 경사가 심하다. 30분 정도를 내려가니 온통 개간된 밭 때문에 정맥 길이 없어지고 만다. 그냥 밭가로 난 농로를 타고 신광재에 이르러 장수개인택시 기사님께 전화를 했더니 버스 타는 곳까지 내려오라고 하신다.

2.6㎞ 알바로 체력이 방전되어 갑자기 방향감각을 잃고 상미치 쪽으로 난 꼬불꼬불한 길을 1㎞나 내려갔다. 그런데 기사님은 장수 쪽에서 비포장도로를 거슬러 오고 있다며 다시 신광재로 오라고 하신다. 거꾸로 신광재를 오르자니 힘이 들어 생굴을 뚫어 S자가 계속되는 길을 직선으로 올랐더니 10여분만에 다시 신광재에 도착했다. 그제서야 반대편에서 택시가 나타난다. 사실 어차피 택시는 반대로 돌아갈 수 없으니 택시가 신광재에서 상미치로 내려오는 게 정상인데, 왜 기사님은 다시 신광재로 올라오라고 하셨을까. 결국 또 2㎞ 정도를 알바를 했으니 성수산으로 올라가 그냥 정맥을 계속 타는 편이 나았겠다. 게다가 택시비까지 5만원을 달라니 오늘은 이래저래 망한 날이다.

사구리재에 이르러 내 차를 찾아서 수분령 쪽으로 넘어오다가 기사분이 알려준 대로 수분령 약수를 찾았다. 위 약수터는 정상 오른쪽에 있는 가든 쪽으로 50여m 가서 산 바로 아래 바위 벼랑 밑에 있다. 수분령 약수 물맛이 너무 좋아 배불리 마시고 물통에도 가득 담았다. 알바를 5㎞ 이상 했지만, 마지막에 수분령 약수를 마시는 순간 하루의 고통들이 전부 환희로 변하였다. 다만 다음번에 신광재에서 다시 산행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조금 답답해진다./글·사진=강행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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