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2부 3장 행주대첩과 전라도 병사들<265>

행주산성의 본래 이름은 덕양산이다. 해발 125m로 낮은 산이나 벌판에 우뚝 솟아있어 높아 보이며 황해도 해주, 강화도, 제물포, 김포만 등 서쪽에서 한양으로 들어오는 목에 위치해 있어 삼국시대부터 군사·교통요충지로서 이 지역을 서로 차지하려고 뺏고 빼앗기는 처절한 역사의 현장이다. 지형은 동남쪽으로 한강을 끼고 가파른 절벽을 이루고, 서북 방향으로 낮게 지형이 뻗어내려 능곡평야에 맞닿아 있다. 산 아래 한강은 서해안으로 흘러 이곳을 잃으면 마포로 들어오는 한양 뱃길이 묶이게 되어 세곡선, 소금배, 어선의 발길이 차단된다.

그런데 한양을 수복하고자 들어오는 조선군을 왜 병단이 행주산성으로 밀어붙여 고립시킨 뒤 섬멸작전을 준비중이었다. 산성 아래 평야에는 적병들이 새카맣게 진을 치고 있었다. 우키타 히데이에 왜군 한양점령군사령관을 비롯해 고니시 유키나가 1군대장, 이시다 미츠나리 2군대장, 구로다 나가마사 3군대장, 모리 히데모토 4군대장, 깃카와 히로이에 5군대장, 고바아캬와 다카카게 6군대장과 호소카와 타다오키, 가토 미츠야스, 나카야 센시로, 아카시 요에몬, 도자키 히코에몬노조 등 조선에 진출한 왜군 장수들이 휘하 3만 병졸을 이끌고 들어와 있었다. 가토 기요마사 군대만 빼고 왜군 주력이 행주산성에 총집결한 양상이었다.

조선군은 전라도순찰사 권율, 전라도 병사(兵使) 선거이, 나주의병장 김천일, 전라도 조방장 조경, 승병장 처영, 충청감사 허욱 등 장수들이 권율 장군을 따라 행주산성에 들어와 있었다. 군졸은 관·의병 모두 합해 4천이었다. 이중 9할이 전라도 병사들이었다.

권율은 북상길에 오르면서 응원부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해 전라도 병사 선거이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벽제관 전투에서 명군을 패퇴시킨 왜군이 한양 수복을 위해 들어가는 조선군을 밀어붙이고 있다. 김명원 군대는 벽제관 전투에서 무력해졌으니 맞상대할 군대는 우리 군사 뿐이다.”

선거이는 한산도 해전에서 전라좌수사 이순신을 도와 왜적을 무찌른 뒤, 권율의 명을 받고 그를 따라 독산성 전투에 참전하고 금천(현 시흥)에서 김천일, 조경, 허욱, 처영 의·승군부대와 합류해 행주산성으로 들어왔다. 선거이는 산성에 도달해 산의 지형을 살피다가 허점을 보고 장졸들을 호출했다.

“덕양산은 벌판에 홀로 외롭게 맨 얼굴을 드러낸 형세다. 이리 되면 모든 것이 노출되어서 아군이 절대 불리하다. 모두 나서서 산성을 수축하고 목책을 만들어 방비토록 하라.”

이를 지켜본 권율이 수정 제안했다.

“목책을 이중으로 세우라. 제1목책과 제2목책 사이를 지형에 따라 삼십보, 오십보씩 간격을 두라.”

선거이가 의아해서 물었다.

“아니, 이중목책을 삼십보, 오십보씩 이격들 주어 세울 필요가 있습니까.”

“그럴 일이 있소.”

그는 신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장성의 변이중이 개발한 화차였다. 그런데 한강 도강이 쉽지 않았다. 적병의 감시와 병선이 부족해 건너지 못하고 있었다. 이중목책 사이에 화차를 배치해 놓고 왜 진지를 향해 화포를 퍼부으면 전쟁은 금방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정충신이 권율 장군 앞에 당도했다.

“장군! 선사포 첨사 정충신, 인사 드리옵니다.”

정충신이 장검을 한 손에 쥔 채 그의 앞에 고개를 숙이고 예를 취했다.

“아니, 네가 어떻게 여기에?”

권율이 감격한 표정으로 정충신을 바라보았다. 그의 수염이 파리하게 떨리고 있었다. 반가움의 격정이 그의 얼굴에 가득 퍼졌다. 어엿한 군관의 모습을 보니 더욱 감개무량했다.

“장군께서 어려움에 처했다는 첩보를 받고 불원천리하고 달려왔나이다.”

권율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잘 왔다. 군사 전통(傳通)을 통해 네가 선사포 첨사로서 진을 수습하고, 평양성에서 앙탈부리는 명의 사신을 탈없이 쫓아냈다는 소식을 알고 있었다. 큰 일 했다.”

“장군께서 염려해주신 덕분으로 대과없이 직무를 수행하고 있나이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하교해주십시오.”

“저 멀리 도성 쪽을 보아라. 마포를 거쳐 인왕산 삼각산 넘어 도성이 한 눈에 보이는데 왜군이 가로막고 있구나. 빨리 수복해 왕을 다시 궁에 모셔야 하는데 불한당 놈들이 길을 막고 있구나. 저들을 격퇴하는 화차가 절실한데 아직 못들어오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화차가 못들어오다니요?”

“소모어사(召募御使) 변이중이 발명한 화차 말이다. 그 비밀병기만 들어오면 왜군단은 가루가 되어버릴 것인데, 지금 강 건너편 양천의 궁산성에 머물러 있다. 적병들의 감시 때문에 40량의 화차가 강을 건너지 못하고 있단 말이다.”

권율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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