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행옥 변호사의 호남정맥 종주기

<5>‘활인동 고개-신광재’ 구간 (2018. 5. 22)
봉주봉 오르니 선경이 따로없어…희열감에 전율
사방 수십 ㎞가 일망무제…마이산 자락도 한눈에
암마이산은 통행금지…인증샷으로 아쉬움 달래
성수산 오르는 길 벌채로 산 나신이 드러나 흉측

‘활인동치에서 마이산까지 3.8㎞’ 팻말을 따라 걷다가 야산 잡목지대를 벗어나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마이산이 우뚝 솟아있다.
봉주봉 정상에서 바라본 마이산 자락. 미세먼지가 전혀 없어 수십 ㎞가 일망무제다.
마이산 돌탑 입구에 선 필자.
성수산과 옥산봉 이정표.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침을 지어 먹고 6시 40분쯤 차를 운전하여 활인동 고개를 목적지로 출발했다. 이번에는 활인동 고개에서 마이산을 거쳐 옥산동 고개까지 간 다음, 지난 번에 못다 한 성수산 구간을 마무리할 작정이다. 이번에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거꾸로 가는 셈이다.

우연히 큰딸이 4년 전 진안 안천중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할 때 데려다 준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형국이 되어 ‘88고속도로’와 ‘전주-순천고속도로’를 거쳐 임실 IC에서 국도를 타고 진안읍에 닿았다. 그곳에서 3∼4분 거리인 활인동 마을에 도착했다.

마침 주유소에서 일하는 젊은이에게 활인동 고개를 물으니 막 차로 넘어 온 고개를 가리킨다. 8시 30분경 차를 유턴하여 등산로 초입에 주차한 다음 리본을 따라서 단독 종주를 시작했다. 팻말에는 활인동치에서 마이산까지 3.8㎞라고 쓰여 있는데, 별로 사람이 다니지 않아서인지 정맥 길에 잡목이 무성하다. 10여분을 걸어서 야산 잡목지대를 벗어나니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마이산이 우뚝 솟아있다. 하늘에는 흰 구름이 솜뭉치처럼 떠 있고 마이산 우측에 봉주봉이 솟아 있어 언뜻 보기에 봉주봉이 암마이산처럼 보인다. 개활지의 임도를 따라 10여분을 걷는데 왼쪽 방향에는 전원주택들이 예쁘게 들어서 있다.

420봉을 지나 520봉에 이르니 눈사람처럼 생긴 바위가 숲속으로 보인다. 마이산 자락에 들어오니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봉우리들이 많이 보이나 보다. 1시간 후에 봉주봉(540m)에 이르러 벤치 의자에 앉으니 선경이 따로 없다. 멀리 암봉 위에는 중국의 절같이 생긴 모양의 팔각정이 보이고 그 왼쪽 아래에는 금색 지붕의 절이 암릉 위에 얹혀 있다. 미세먼지가 전혀 없어서 사방으로 수십 ㎞가 일망무제로 보이는데, 이 순간 여기 내가 혼자 존재한다는 희열감에 전율이 흐른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아기 석가가 말했다든가. 홀로 왔다가 홀로 가는데 인생이거늘, 지금 있는 자리가 선경이면 되었지 또 무엇을 바랄 것인가.

한참을 경치에 취해 땀이 식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깎아지른 암봉 옆으로 조심스럽게 능선을 타기 시작한다. 이쪽의 암봉들은 대개 왼쪽으로 우회로가 있어서 그쪽을 타야 안전하고, 암봉을 그대로 넘는 것은 위험천만해 보인다. 봉두봉을 내려오니 등산로 표지판이 서 있고 나는 암마이산 방향으로 방향을 잡았다. 암마이산 발치에 다다르니 통행금지 팻말과 함께 등산로에 금줄이 처져 있다. 너무나 아쉬워 잠시 줄을 넘어가 암마이산 암벽에 붙어 보았으나 추락위험이 있어 보여서 등반을 포기하고 인증샷만 남긴 채 마이산 돌탑 방향으로 하산한다.

마이산 돌탑에 이르니 가족 단위로 삼삼오오 짝을 지어 행락객들이 많기도 하다. 근처에 절이 많아서인지 불공드리는 소리도 들린다. 사람들 덕분에 돌탑 앞에서 사진도 찍고 식수도 보충한 다음, 등산로를 찾는데 아는 이가 없다. 여기에서는 정맥 길을 타려면 은수사를 목표로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은수사는 암마이봉과 숫마이봉 사이에 있는데, 은수사의 대적광전 제일 우측으로 난 산길이 정맥 길로 이어진다. 다만 ‘공사중 출입금지’란 팻말과 금줄이 있으니 알아서 무시하고 넘어야 한다. 5분쯤 산길을 오르면 하늘금이 나오는데 무심코 오른쪽으로 가기 쉽상이나 여기에서는 왼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정맥 길이다. 숫마이봉을 동그랗게 돌아서 정맥 길은 30번 국도가 있는 반월제 고개 쪽으로 이어진다. 이쪽은 비교적 등산로가 뚜렷하여 길을 잃어버릴 염려는 없다. 반월고개에서 410봉과 440봉은 비교적 넘기가 수월하나 길은 갈수록 희미해진다.

460봉에서 가름내재에 이르니 맞은편이 완전히 절개지로 되어 있어서 정맥을 찾기가 쉽지 않다. 가름내재 왼쪽에는 큼지막한 농원이 있는데 주위에 취나물이 지천이라 취나물을 뜯느라 한참을 지체하였다. 농원 쪽에서도 정맥 길이 없어서 무조건 잡목 숲으로 생굴을 뚫었더니 희미한 등산로가 나온다. 천신만고 끝에 500봉까지는 무사히 올랐으나 여기에서 왼쪽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종주기를 잘못 읽고 계속 오른쪽으로만 진행하였더니 갈수록 등산로가 없어진다.

결국 1시가 넘어 산 밑으로 내려오니 농로 근처에 이앙기로 모내기를 하는 농부가 나를 어이없다는 듯 쳐다본다. 온통 땀범벅이 된 사람이 잡목 숲에서 갑자기 나타나니 그럴 만도 하다. 결국 산길을 놓치고 농로를 걸어서 조금 가니 선인동 마을이 보이고, 조금 더 위로 올라가니 사인동 마을이 나타난다. 사인동 마을 노인정 정자에서 점심을 홀로 먹고 마침 진안군수 무소속 후보 유세차가 지나 가길래 성수산 가는 등산로를 물었더니 아래쪽 저수지 쪽으로 가라고 젊은 운동원이 안내한다. 그 말을 믿은 내가 잘못이다. 사인동 마을 위에 옥산동 고개가 있다고 종주기에 써 있었는데, 복사해 간 종주기는 읽지도 않고 청년의 안내대로 다시 선인동 마을로 내려와 저수지가로 갔는데 아무리 보아도 정맥 길이 아니다.

결국 산행을 포기하기로 하고 진안읍 개인택시를 불렀다. 선인동 마을 경로당에서 개인택시를 다고 가다가 기사님과 얘기를 해보니 사인동 마을 위가 옥산동 고개라는 것이다. 결국 택시를 다시 돌려 옥산동 고개 바로 아래의 마을길에서 내렸다. 마침 밭에 농약을 하던 농부아저씨에게 옥산동 고개를 물었더니 바로 밭 아래로 난 비포장도로를 가리킨다.

100여미터를 걸었더니 ‘성수산 7.8㎞’란 팻말과 함께 옥산동 고개가 나타난다. 길을 놓치는 통에 300미터를 오려고 15,000원 택시비를 지출한 꼴이 되었다. 애당초 사인동 마을에서 올려다 보이는 산자락이 정맥 길이 틀림없어 보여서 그쪽으로 가던 중이었는데, 마을사람에게 옥산동고개가 어디냐고 물어야 하는 것을 ‘성수산이 어디요’라고 물었으니 알 리가 있는가. 산길로 7.8㎞는 면 하나는 지나는 거리이니 사인동 마을의 할머니들이 알 리가 없지 않는가.

비싼 수업료를 내고 능선에 오르니 왼쪽에 멋진 저수지가 내려 보인다. 옥산동 고개에서 급하게 오르는 봉우리가 590봉인데 이쪽에는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다만 590봉 우측을 벌채를 해버려 온통 산의 나신이 드러나 있는 것이 흉측하다. 얼마 전 비에 가리왕산의 스키장에서 산사태가 났다는데, 진재영 노무사가 스키장 건설 전 가리왕산에서 “동계올림픽 스키장 건설 반대”란 수건을 펼치고 1인 시위를 하던 장면이 눈에 선하다. 자연 중에서도 절대 손을 대서는 안되는 것이 산과 강이란 가르침이 뼈저리게 다가온다. 통일이 되면 모든 학생들은 고교 졸업 전에 백두대간 종주를 하도록 권장했으면 한다. 나라사랑을 가르치지 않아도 조상들이 만년동안 지켜 온 우리 산줄기를 걷다보면 능선이 내 핏줄이고 나무 하나하나가 내 숨결임을 저절로 알게 될 거다.

지도에 780봉으로 써진 봉우리에 닿으니 4시가 넘었다. 리본 사이에 ‘금·호남정맥 708.4. 준.희’란 흰 표지판이 나무에 매달려 있다. 대간 길과 정맥 길에서 정상석이 없는 무명 봉우리마다 표지판을 매단 ‘준.희’는 참 친절한 사람이다. 890봉과 990봉을 연달아 오르는데 오전에 길을 잃고 헤매서인지 체력이 급속도로 저하되어 온다. 가름내재 둔덕에서 욕심껏 꺾은 취나물도 배낭 안에 가득 차 그렇지 않아도 힘든 오르막을 더욱 힘들게 한다. 가까스로 오늘의 주봉인 성수산(1,0599m)에 오르니 벌써 5시 20분이 되었다. 다행히 여기에서 신광치까지는 2.2㎞가 남아 있다고 쓰여 있다. 날은 서서히 어두워지면서 하늘에 검은 구름이 보이기 시작한다. 전국적으로 내린다는 비가 내릴 조짐이 보인다.

성수산에서 남은 식수를 한방울까지 다 마셔버리고 급히 하산을 시작하였다. 1㎞쯤을 정신없이 내려오니 광활한 목초지가 펼쳐지고 중간에 헬기장이 보인다. 헬기장 근처에 주인 없는 지프차가 한 대 주차되어 있다. 운전자만 보이면 딱 그 차를 얻어 타고 하산하고 싶은데 차 주인은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다. 으슥한 곳에서 번개탄 피우고 자살하는 사람에 대한 뉴스가 생각나 순간 섬뜩한 느낌이 들어 마구 발걸음을 옮긴다.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인 910봉이 앞을 가로막는데 실 높이는 목초지에서 50m 정도로 보이는데, 걸음이 떨어지질 않으면서 허벅지에 경련이 인다. 할 수 없이 5분 정도를 풀숲에 벌러덩 누워서 쉬는데 한방울 두방울 찬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급히 배낭커버를 꺼내 배낭을 감싸고 우의를 입었더니 몸이 따뜻해지면서 기운이 난다. 910고지를 넘으니 ‘신광치 0.7㎞’란 표지판이 보인다.

급히 휴대전화를 꺼내서 진안 개인택시 기사님께 전화를 드렸다. 깎아지른 벼랑 같은 신광치 고개에 내려서니 6시 10분이 되었고, 비탈진 밭에는 비닐 멀칭 작업이 한창이다. 한참을 신광재 옆의 정자에 누워서 나무관처럼 생긴 지붕을 올려다보고 있자니, 편안하면서도 쓸쓸한 느낌이 든다. 나중에 죽어서 관안에 누워 있으면 어떤 기분일까.

6시 20분에 기사님을 만나 활인동 고개까지 갔는데 물한병 마시고 잡담하다 보니 금방 도착한다. 돌아오는 길에는 임실역 맞은편 “옛날 짜장” 집에서 삼선짜장을 한그릇 사 먹었다. 3∼4년만에 왔는데 여전히 이곳의 짜장면은 참으로 맛나다. 흡사 걸신들린 거지처럼 짜장 국물 한방울까지 깨끗이 비웠더니 주인이 음미할 시간도 주지 않고 그릇을 치워 버린다. 나는 밥 먹고 5분 정도는 포만감이 올 때까지 멍 때리는 것을 즐기는데, 그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그놈의 짜장면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맛있다. 빗속을 뚫고 1시간 이상을 운전해 집에 닿으니 9시가 넘었다. 부처님 오신날 너무 아름다운 날에 20㎞가 넘는 호남정맥을 나 혼자서 음미한 즐거운 하루 산행이었다. 글·사진/강행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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