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2부 4장 환도(還都)<287>

정탐장은 남녘의 전황들을 재차 보고했다.

“육병들은 권율 장군 지휘 아래 맹수같이 싸우고, 수병들은 이순신 전라좌수사, 이억기 전라우수사 소속이 되어서 가는 곳마다 연전연승입니다. 이제는 나라를 안심해도 될 것이옵니다.”

“연전연승이라니, 신출귀몰의 축지법이라도 쓴다는 말이냐?”

“구덩이를 파서 들어가 위장하거나 숲 뒤에 매복해 있거나 또는 바위 틈에 숨었다가 갑자기 튀어나오니 신출귀몰이라고 부르는 것입지요. 인간 세상에서 실제로 신촐귀몰은 없습니다.”

정탁이 공감하는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탐장이 말을 계속했다.

“전라도 군사들은 하나같이 왕조를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나뉨이 없이 움직이고 있나이다. 군사 조직은 점과 점, 선과 선, 마침내는 이것이 한 덩어리의 유기체가 되어서 움직이는데, 그것이 크고 작은 작전을 수행하는 기준이 되고 있나이다. 산악과 강을 이용해 관·의병이 합동작전도 펴는 바, 이는 장수들의 협업 체제가 잘 유지되었기 때문이지요. 전술은 지형에 따라 유격전과 지구전을 안배해 펼치고 있나이다.”

“지구전을 펼 적시면 성질 급한 일본놈들이 지루해서 못견디겠지, 하하하.”

“그렇습니다. 메뚜기처럼 날뛰니 숨어서 일격에 멱을 따는 데는 그만입니다.”

“이순신 장수의 수군이 어촌 출신들이라고 했겄다?”

“그렇습니다.”

“그들이 받는 녹봉과 먹는 것은 제대로 지급되고 있느냐?”

“영진군(營鎭軍:영과 진을 지키는 정규군)과 속오군(束伍軍:유사시 동원되는 지방군)에게 지급되는 양식의 양이 균일합니다. 포상제도까지 두어서 전투능력이 뛰어난 병사에게는 미곡과 포(布), 말린 해물을 지급합니다.”

다음날 이덕형이 정충신과 정탐장을 불러들였다. 그는 두 사람을 대동하고 어전에 나아갔다.

“전하, 정탐장이 삼남지방을 살피고 왔은즉 설명할 것이옵니다.”

이덕형이 그에게 보고하도록 눈짓을 했다.

“전하, 말씀 올리겠나이다. 왜놈들이 영남 지방을 분탕질하고 있습니다. 시간만 나면 미친 개가 되어서 약탈과 살인을 밥먹듯이 하고 있습니다. 아녀자들 정조가 온전한 자가 없습니다. 왜놈 씨앗을 가진 여자들이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사례도 빈발하고 있사옵니다. 원하지 않는 수임을 한 아녀자들이 고통을 못이기고 그런 행동을 하고 있사옵니다. 일부는 숨기고 사는데, 그러다 보니 종이 바뀌지 않을까 심히 우려되옵니다.”

이덕형이 정탐장의 말을 받았다.

“당장 수습해야 하옵니다. 그곳의 질서를 바로잡아야 하옵니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도원수를 현지에 파견해 민심과 군 기강을 일신해야 하옵니다.”

“나이 드신 도원수가 가려고 하는가.”

“교체해야 하옵니다. 야전에 능한 장수가 적임입니다.”

그러나 도원수를 교체하기가 난망했다. 도원수 김명원의 가대는 선대 왕들과 인연이 깊다. 직제학 벼슬을 한 그의 할아버지(김천령), 대사헌을 지낸 아버지(김만균)가 선왕의 충복이었고, 대대로 사대부의 중심에 있는 신분들이었다. 이런 그를 하루 아참에 날려버린다는 것이 인간적으로도 난감하였다.

그러나 교체해야 한다. 가문의 위세를 믿고 피흘리는 현장에 머물러있지 않으려 한다. 왕의 주위를 맴돌며 수도권만을 사수하려고 한다. 그렇다고 전과를 올리는 것도 아니다. 한강전투, 임진강전투, 평양성전투, 벽제관전투에서 연장으로 깨지니 ‘패주장수’라는 악명까지 얻었다.

“김명원은 뼈대있는 가문인지라 학문이 깊고, 인품도 괜찮다.”

“맞습니다. 성질이 온후하고 품성이 착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한계이옵니다. 전략이 안이하고 빈약합니다. 벽제관 전투 상황과 명과 왜의 강화교섭 사태에 대하여 조정의 입장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 것으로도 입증됩니다.”

“그점 나도 괘씸하게 여긴다.”

김명원이라면 사실 학을 떼고 있다. 그의 잘못된 상소로 애꿎은 장수 하나를 참수해버린 것이다. 한강전투에서 패배한 도원수 김명원과 부원수 신각은 밀려오는 왜군을 막지 못하고 도망가면서 각기 흩어졌다. 이때 신각은 유도대장 이양원이 있는 양주골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전열을 재정비해 해유령 전투에 나가 왜군을 격파했다. 김명원은 신각이 자기 휘하를 벗어나 이양원 군대에 합류했다는 보고를 받고 군영지를 탈영했다고 분개하며 상소문을 올렸다.

명색이 부원수가 남의 장수 밑에 가있다는 것이 군율상 맞느냐는 비난에 선조는 이런 괘씸한 놈은 빨리 처단하라고 참수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해유령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는 장계를 받자 부랴부랴 선전관을 보내 형 집행을 중단할 것을 명령했으나 신각은 벌써 형이 집행되어 양주골 군 진영 마당에 세워진 수자기(帥字旗) 꼭대기에 효수가 대롱거리고 있었다. 이걸 생각하면 속이 뒤집어졌다. 거기에 벽제관 전투에서 조명 연합군이 합세했는데도 왜군에게 발렸으니 그 책임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함부로 자르면 후환이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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