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2부 4장 환도(還都)<288>

“너의 뜻이 무엇인 줄 알겠다만 세상 이치가 그렇게 뜻대로 되는 것이 있더냐?”

왕의 우유부단함을 보고 정충신이 나섰다.

“상감마마, 제가 한 말씀 올릴까요?”

“그래 말해 보렸다.”

“성질이 온후하고 품성이 착하고 학문이 깊으면 그에 걸맞는 자리를 주시면 될 것이옵니다.”

“장수에게 그런 자리가 있다더냐?”

“일찍이 전라도 군사는 적재적소에 역할과 임무를 주니 능률이 배가되고, 전과를 크게 올리고 있습니다. 이치는 그와 같은 것이옵니다. 자리는 찾아보면 있사옵니다.”

“그럴 듯하구나. 그래서?”

“영직으로 승진시키시면 불만이 없을 듯하옵니다.”

당사자가 인사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영직(榮職)을 주는 데야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이덕형도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역시 정충신은 한 몫 거드는 지혜가 있었다.

“모시는 분이라고 애를 쓰는 것이 아니냐?”

왕이 의심스런 눈빛을 하자 이덕형이 대신 나섰다.

“마마, 아니옵니다. 지혜롭고 정의롭습니다. 그래서 데리고 왔나이다.”

며칠 후 인사가 났다. 왕이 “권율을 도원수로, 김명원을 호조판서로 임명한다”는 어명이 내려졌다. 권율의 출세는 꽤 늦은 편이었다. 선조 15년(1582년)에 45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했다. 당시 문과 급제의 평균 나이가 28세 전후라는 통계에 비추어 보면 상당히 늦은 출발이었다. 그러나 똑똑한 부하를 두니 입관(入官) 10년만에 군의 최고통수권자가 된 것이다.

이 소식을 듣고 이항복이 정충신을 불렀다.

“조정의 어지러운 풍토에서 너의 행실은 연꽃과 같은 아름다움 그 자체다. 하지만 곧바로 임지로 부임하거라. 남의 눈이 있다. 정당해도 오해를 살 수 있느니라.”

권율이 도원수 직함을 받고 경상도로 내려간 것은 임금이 평안도 영유에 머문 1593년 6월 하순이었다. 이때 정충신도 선사포 임지로 떠났다.

선조의 환도는 도대체 늦기만 했다. 왜군이 떴다 하면 숨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동 행궁의 광에 숨거나 대숲으로또 숨어들었다. 왜 이리 겁이 많은지 알 수 없었다.

이 통에 고생하는 사람은 아랫것들이었다. 돌림병마저 돌자 행여나 병에 벌릴까, 내시 마부 의관 별좌(임시직 별관) 사알(내시부의 잡직)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왕의 침소에서 대기했다. 숲에 숨으면 옷을 가져다 대령하고, 냉수를 떠다 바쳤다. 때로는 미치광이처럼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고함을 지르고 식은 땀을 흘리며 대소변을 지릴 때, 이를 받아내고, 기침 끝에 콧물을 흘리면 대신 빨아먹기도 했다. 처자식 바라보고, 또는 정규직 변신과 승진 하나를 바라보고 모시는 모습들이 가여웠지만, 그 지극정성 하나만은 눈물겨웠다. 선조도 감동해 이들을 격려했다.

“어떤 신료들은 가솔을 이끌고 도망가기 바쁜데 천한 것들이 진정으로 왕을 모시는구나. 너희가 충신이지, 충신이 따로 있냐. 세상 별게 아니다.”

조정 신료들은 허접한 것들이 해야 하는 일을 마땅히 하는 것인데, 왕이 지나치게 편애한다며 불만을 가졌다.

“저런 것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서 호종공신록에 오를까 두렵고만...”

“아, 천한 것들하고 공신회맹연에 참석하고, 충성을 다짐하는 소반의 피를 마시고 맹서할 것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치는군. 비웃음을 살 일이야...”(선조실록).

이런 가운데 왕은 평안도 강서로 내려와 두달 머물렀다. 이여송 도독이 황주에 머물러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부랴부랴 남행길에 오르니 추석 무렵이었다. 그곳에서 본국으로 귀환하는 이여송을 만나 추석상을 함께 받았다.

“전하의 두 왕자 임해군과 순화군이 북상 중이오. 내가 그렇게 석방하도록 조치했소이다.”

이여송이 선물 보따리를 풀어놓듯 말하자 왕이 감격한 나머지 무릎을 꿇고 예를 취했다.

“감사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오이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소.”

머리를 조아리니 주군의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

“저 또한 미안한 일이 있소이다. 우리 부하들이 내놓고 고을을 돌아다니며 약탈을 일삼고, 양민을 살해하고, 부녀자를 겁탈했으니 미안한 일이오이다.”

“그런 말씀을 다하다니요. 우리가 제대로 대접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요. 그런 불미스러운 일은 자초한 면이 있지요. 고을사람들이 제대로 대접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니 괘념치 마시오.”

가토 기요마사에게 인질로 잡혔던 임해군과 순화군 일행이 아비를 만나러 북상중이라는 말을 듣고 선조는 곧바로 봉산으로 내달렸다. 임해군과 순화군이 풀려난 것은 조명 강화회의 결정에 따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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