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학교에서 학교를 배우며
김홍식<광주 일동중학교 교장/문학박사>

교육청에서 교육장이라는 소임을 마치고 이번 3월에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비록 학교 현장을 떠나긴 했어도 학교교육과 직결된 교육행정을 했으니 학교를 완전히 떠났다는 말은 다소 어폐가 있을지 모르나 신분부터 국가공무원에서 지방공무원으로, 교원에서 교육전문직으로 바뀌고 보면 학교를 떠났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이제 다시 지방공무원에서 국가공무원으로, 교육전문직에서 교원으로 되돌아왔다. 이른바 전직이다. 물론 교육청의 일 자체가 단 한 가지도 교육과 무관한 일은 없다.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 현장을 살피고 지원하기 위해 정책을 계발하고 실행하며 현장을 누비느라 실로 숨 가쁜 시간의 연속이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학생들과 직접 대면하며 교육이 이루어지는 곳은 엄연히 학교라는 현장이고 교육청의 존재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다.

그간 교육청에서 학교를 지켜보다가 이제 학교에서 교육청을 바라보게 되었으니 분명히 그 방향이 달라졌다. 여기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같은 길도 방향을 달리 해서 걸을 때 보이는 풍경이 사뭇 달라지듯이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생각과 입장이 조금씩 바뀐다. 이는 소신이나 철학의 문제가 아니다. 분명한 것은 교육청이 학교에 요구하고 기대하는 것과 학교가 교육청에 기대하고 요구하는 것 사이에 일정한 시각차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교육청에 근무했던 사람으로서 이 간극을 메우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교육청도 학교 현장에서 오해하거나 부담스러워하지 않게 학교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고 함께 하려는 과정의 친절함과 섬세함이 더욱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일도 공감과 설득이 부족한 상태에서는 내실 있는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형식적인 소통이 아니라 면밀한 스쿨마킹(schoolmarking)이 있어야 만족스러운 지원행정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몇 년 전, 교육청에서 근무를 처음 시작할 때의 낯설음이 지금도 생생하다. 다시 학교로 돌아와 보니 그 정도는 아니어도 비슷하다. 낯선 곳에 여행을 갔다가 오랜만에 집에 돌아와 보니 그렇게도 익숙했던 공간이 생경하게 다가오는 느낌이랄까. 이래저래 챙겨야 할 일들이 수북한 것 같아 저절로 생각이 많아진다. 서로가 같은 방향만 바라보며 간다고 해서 동행이 아니다. 진정한 동행은 구성원들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 동시에 우리 아이들을 위해 정성스러운 한마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리라.

‘산에서 산을 배우고/나무에게서 나무를 배운다’라는 시구가 있다. 막연히 교육을 배운다는 추상적인 말 대신에 다시 학교에서 학교를 배우고 학생들에게서 학생을 배우며, 선생님들에게서 선생님을 배워야겠다. 지금까지 줄곧 교육을 한다고 해 왔지만 솔직히 아직도 모르는 게 많고 정답은 더더욱 오리무중인 게 태반이다.

우리 사회에 교육적 담론이 넘쳐나고 교육의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많아도 정작 속 시원한 답을 내놓을 수 없는 영역이 교육 분야이기는 하다. 그래서 현장에 답이 있다고 했던가.
“심겨진 곳에서 활짝 꽃을 피우라(Bloom where you are planted)”는 말이 새롭게 다가온다. 현장에서 한껏 부대끼며 해결해야 할 고민이 많고 깊을수록 꽃은 더욱 찬란하게 아름다우리라.

만나는 사람마다 학교가 날로 어려워진다는 말을 무성하게 쏟아낸다. 이는 역설적으로 학교와 학생과 교육을 더 많이 배우고 더 깊이 있게 채워야 할 일들이 많다는 말과 다름 아니다. 무엇보다도 학생들과 학부모, 선생님들의 작은 소리까지도 ‘가슴으로 듣고 마음으로 보려는 노력’을 절실하게 기울일 것이다.

지금 산에서는 나무들이 심호흡하면서 마른 줄기에 물을 빨아올려 이파리와 예쁜 꽃을 피우려는 준비가 한창일 것이다. ‘꽃 피기 전 봄 산처럼/꽃 핀 봄 산처럼/누군가의 가슴 한번 울렁여 보았으면’ 하는 함민복 시인의 소망처럼 우리 학생들로 하여금 행복한 학교생활로 가슴 벅차게 할 수 있다면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시간을 부여받은 셈이다.

아침 등교 시간에 교문에서 만난 우리 학생들의 해맑은 모습을 보며 새로운 용기와 힘을 얻는다. 이 아이들의 밝고 건강한 학교생활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도와야 하는가. 답답하게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려도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키우며 느티나무 같은 눈부신 성장을 돕는 교육만큼은 결코 방향을 잃거나 흐릿해서는 안 된다. 사람을 키우는 일, 그 자체가 희망이고 우리들의 내일을 가꾸라는 엄숙한 정언명령(定言命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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